시사인에서 박근혜씨의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다.라는 언급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자유게시판 예수님의 게시물 퍼옵니다.

"시스템의 최종 책임자’에서 ‘구름 위의 심판자’로 자신을 옮겨놓았다.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최종 책임자는 자신의 책임을 말하는 대신 '책임질 사람에 대한 색출 의지'를 과시하는 단죄자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차지했다. 침몰하는 시스템에서 대통령은 그렇게 가장 먼저 탈출했다."


기막힌 관점의 전환입니다. 다만 구름위의 심판자, 단죄자의 자리로 도망간게 아니라 그 정도도 안되는 그냥 야비한 위치이동입니다.
지금 피해자가족의 상대는 정부기관입니다.
대통령이란 위치가 행정부의 수장도 될수 있고, 국민의 대표도 될 수 있다는것을 감안할 때,
박근혜씨는 양 집단사이에 걸쳐있습니다.
어느 집단에 설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편에 섰습니다.
그렇게  행정부를 단죄하겠다는 것이지요.
얼핏들으면 아주 훌륭한 결단 같습니다.
하지만 아실겁니다. 이건 아주 더럽고도 야비한 기회주의라는 것을.
책임을 져도되고 지지 않아도 되는 것 같으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 동양적인 규범이 말하는 이른바 직업윤리입니다.
아무리 작은 집단의 수장이라도 피할 수 있으면 책임을 피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임자를 색출하겠다 운운은 국민에게 할 말이 아닙니다.
지하벙커에 앉아서 저들끼리 협박을 하든지 회유를 하든지 할 때 하는 말입니다.
국민에게는 모든 책임을 제가 지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어야 합니다.
책임자 색출같은 말을 질질 흘리고 다닌다는 것은 야비한 기회주의 이외에 무엇도 아닙니다.
비유를 하자면, 내 자식이 잘못했다면 찾아가서, 죄송합니다. 자식 잘못키운 죄입니다. 피해를 보셨다면 할 수있는 일은 다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잘못한 자식을 데려가서, 난 그렇게 안 키웠는데 이 자식이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이참에 아주 죽여버릴라고요.
이런 행동을 보고 그 상대방이 아! 아주 훌륭한 부모다 라고 할까요. 아니면 그 자식이 우리 아버지 최고! 라고 할까요.

도덕을 공동체의 규범이라고 본다면 도덕률은 시공뿐만 아니라, 집단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말과 행동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런 말을 누구에게, 어디에서 했느냐는 더 결정적일 수 있습니다.
박근혜씨의 순간이동과 선장의 유령이동, 앞으로 있게될 세모대표의 병원이동, 모두 야비함, 야비함의 극치입니다.
공자는 왕은 왕답게, 신은 신답게 애비는 애비답게로 정치를 말했습니다.
맹자는 한발 더 나가 왕이 왕답지 않으면 갈아엎을것을 말합니다.
박근혜씨의 언급에서 왕은 왕답게를 생각한 사람이 아크로에서 저밖에 없을까요.
이천년도 더 전에 살았던 정치낭인이 우리사회전체의 의식을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습니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