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이라는 게 참 중요하다.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고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한다. 소속 = 정치적 동물.

정치적이란 무리를 짓는다는 의미. 동물은 생명체라는 의미. 생명을 유지하고자 무리를 짓는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번역사'라는 직업은 없다. 어느 번역회사에 매여서 번역 업무를 전담하는 직장인을 제외하면 번역사라는 사람들은 모두 자유소득업자(국세청 코드 9000번대)이고 오월달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낸다. 세제 면에서 달리 혜택이란 없다 :) 수익 노출도 사회 일반에 비하면 꽤 투명한 편이다. '번역하는 사람'이 적확한 표현이다. 나는 예를 들어 1년 소득이 7,8천만원이라면 그거 고스란히 노출된다. 국내 번역은 90% 이상 원천징수 대상에 속하고. 외국업체와 거래하는 경우라면 세법을 들여다보긴 해야겠지만 원천징수의 대상이 아니니 종합소득세에 포함되지 않을 것 같다. 특례 조항도 있고. 소득을 숨기는? 방법이야 많다. paypal 등등을 이용해도 되고. 


외국회사와 거래하면 외환통장으로 돈을 받는데 이 과정에도 좀 재미난 일이 있는 것 같고. 들여다 보면 별 것도 아닌 절차이지만 그래도 개인 자격으로 꼬박꼬박 6000-8000 달러 송금을 받으니 외국환 관리법상 기록에 오르고 따라서 탈세할 일이란 없다. 과세 방식에 따라 소득세 내면 될 일. 귀찮을 것도 없고 증빙 역시 단순하다. 은행에 연락하면 땡. 


이번에 8300달러인데 받은 지 사흘 만에 6000달러 써버렸다. 내가 쓴 게 70만원, 나머지는 모두 어디론가 갔다. 수중이 돈이 많으면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드라. 그럴 땐 마구 줘버리면 된다. 돌려받지 않아도 좋으니 준 거 쓸 곳에 제대로만 쓴다면야. 형편 핀 사람들이 쌈지돈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저거다. 내놓으면 제대로 쓰일까?


그라저나 그래서 재미난 일이 뭐냐면 번역사들 사이에 딱히 번역사라는 집단으로서 정체성이 없다보니 번역사 누구 누가 뭐 어째서 욕 먹었다, 오역했다, 누군가가 번역사를 비하했다 이런 말이 들린다 해서 번역계가 나서서 '감히 우리를 욕해, 우리를 무시해, 우리에게 손해를 끼쳐' 이런 식으로 보복 같은 거 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 바쁜데. 이건 물론 처한 꼬라지(실존)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 딱히 무리를 지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을 엄두를 못내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다 다툼을 둘러보면 아주 사소한 다툼으로도 교사, 경찰, 검찰, 운수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식당 아줌마, 교수, 언론 기자, 공무원, 고위 공직자 할 것 없이 자기가 어디에 속했다는 것 하나가 뭉칠 수 있고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빌미가 된다. 보고 있자니 무척 재미있다. 물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대단치 않은 일을 대단한 일로 만들어버리는 지점까지 가버리면 그건 문제다.


아. 뭐라 제대로 좀 써보려고 했는데 dazzling 님한테 얻어터지고 나니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