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사이코패스라하면 반사회적인격장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것은 쉽게 눈에 띄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주로 약자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폭행과 살인 혹은 댓글?을 통해 그 양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반해 소시오패스라는 엇비슷한 범주의 유형은 겉으로는 사회성을 갖추었지만
사이코패스처럼 공감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면을 쓴 이 소시오패스들이 자본주의적 성공에 더욱 적합한
인간유형이라는 점입니다. 포브스가 자신의 아들에게 말한 " 지금 세상의 99%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 가능하다."
는 말처럼 감정조절에 앞서 감정자체가 생략된 인간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본축적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구 짜~응과 같은 세간의 트랜드는 "나쁜남자 신드룸"이 이미 자본만능의 사회가 
도래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승만이라는 天下의 소시오패스부터 시작된 전통은 박정희, 전두환 계보를 따라 지금 까지 살아남아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번져있어 치유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 입니다.

소위 태안기름유출 사고로 명명된 삼성1-스피릿호 사건은 겉으로는 잘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삼성 사외 직원이었던 행정부와 공영방송의 비호아래 각종기부와 백만인의 온정의 손길을 비추는 것으로 
자위하며 빈틈없는 메뉴얼 마련으로 포장된 사건입니다. 그 후과로 당시 공영방송 사장 정연주씨의
유학생 아들은 삼성 입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IMF를 통해 은행이 세계화된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면서 정부는 자본통제가 한정된 범위로 묶이게 되고 
암약하던 소시오패스적 인간유형의 스위치가 켜지면서 규제는 허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착한 혹은 진정한 기업이라는 레토릭을 믿지 않습니다. 기업의 telos는 이윤창출이기 때문이죠.
형이상학적인 형체없는 국가의 존재이유도 법을 통한 규제의 정당성도 국家라는 집안에 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집이 우선이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우선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작금의 정부는 규제완화?라는 레토릭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 下한선 마져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그결과 이번 세월호참사에 보듯 행정부-기업-학교관계자의 유착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특히 교감선생님의 안타까운 자살마져도 의심히 가는 부분이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비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유족들을 비난하기도 하더군요. 또 어떤이는 살기좋아져 수학여행이란 걸 가서 그렇답니다.
무슨이유인지 그들은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보호하려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사회의 보수를 이루는 
층위는 그들의 화려한 스펙으로 입성하기가 꾀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없는 넘들이 가방모찌라도 하려면
실적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서승만씨와 같은 부류나 일베라는 비공식 산하기관처럼 말입니다.

아무튼 이와중에도 원전마피아들의 밥줄인 30년된 원전1호기는 재가동 되어 돌아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無人國의 난파선의 선장은 민중들에게 기다리라는 말만을 남긴채 홀연히 뛰쳐나와 신사임당 할머니를 
데우고 있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