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에 대하여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오류

이덕하님께서 성경에 나타나는 모순이나 의문점들을 가지고 계속 글을 쓰고 그 글에서 지적하는 것에 대하여 몇몇 기독교인들이 이런 저런 설명을 시도하면서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방어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방어라기 보다는 근본주의에 뿌리박힌 성경무오설이나 문자적 해석 그리고 구약의 역사성에 대한 방어라고 보아야겠지요. 그리고 성경의 권위라는 것도 원래 성경에 쓰여진 것에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인간이 더한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순환논리를 무시해버린채 말이죠. )


하지만 성경 해석에 대하여 아주 기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는 상태에서는 이런 작업은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을 몇 가지 사실을 통하여 지적하고 싶습니다.

1. 우리는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원본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약이든 구약이든 사본만 가지고 있습니다. 원본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본들 간에도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죠. 사본학자들 간에 원본의 내용이 무엇인지 추측을 통해 의견이 모아진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자들 간의 의견이 통일이 되었든 아니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이처럼 학자들의 연구가 진행되기 한참 전에 만들어진 성경에 근거했기 때문에 오류, 수정, 삽입, 삭제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어떤 방법이 정답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해석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마치 어떤 원리가 철칙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같은 문장과 사건을 가지고 신학교에서 동문수학한 목사들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다만 이런 다양한 해석도 교단에서 수용하는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내려지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단과 교파의 범위를 넘어서면 이런 다양한 해석은 이단논쟁으로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작은 부분에 있어서는 해석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지만 결론부분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보수교단이 우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을 포함해 일반인의 경우에도 미국의 복음주의 계열의 학자들이 주도하는 해석방법에 따라 해석된 내용에 익숙할 뿐입니다.

2. 번역상 오역
아시다시피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구약은 다시 그리스어로 70인역으로 번역이 되어서 예수 당시에 사용되었고 다시 라틴어로 번역이 되고 나서 이것이 또 영어 성경이 되었습니다. 한글 성경은 한참 뒤에 선교사가 중국에서 몰락한 양반출신의 장사꾼의 도움을 얻어 처음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처럼 원본에서 사본으로 또 원래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옮겨져 내려오는 가운데 원본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조금도 상실하지 않고 번역된 성경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원본의 의미를 보존하고 있는지 조차 검증할 수도 없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영문으로 번역된 King James 버전도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King James 번역본이 만들어질 당시에도 오류가 계속해서 발견되어 번역 작업을 지시한 왕이 번역을 맡은 사람들에게 벌금을 과할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죠. 게다가 영어 성경의 경우에 NIV나 NASB를 보면 King James와는 또 다릅니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영어에 맞게 또 다시 의역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영어와 현대의 영어는 같ㅇ은 단어라고 해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let 이라는 단어는 현대에는 make와 유사한 의미로 '~을 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이지만 오래 전에는 '~을 금한다'는 의미로 prohibit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언어의 변천에 대하여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번역된 것이 성경이 아닙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번역된 성경은 정통기독교의 교리가 이미 세워진 뒤에 번역이 된 것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해석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잘못된 번역의 예를 하나 들자면 구약에서 노아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창세기 5장 32절을 보면 한글 성경에는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사본을 직역하면 "노아가 오백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라고 해야 합니다. '~된 후에'라고 번역할 수 있는 표현이 없지만 한글성경에서는 그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오역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오역이 누적되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노아의 경우에 아들이 태어난 순서가 셈, 함, 야벳이라고 보통 말하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고 성경을 보면 꼭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전통적으로 알려진 세 아들의 서열은 근거없는 설일 뿐이라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정확한 근거도 없이 번역의 오류나 근거없는 유추를 통해 속설이 정설로 바뀐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예로 구약에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타나는데 많은 경우에 사람이라고 번역해서는 안됩니다. 원래의 의미는 mortals,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 단어를 단지 men으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본래의 의미는 상실되었습니다.

3. 신학적 우세를 따를 것이냐? 정확한 해석을 추구할 것이냐?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경의 해석을 기독교와 분리해서 해석을 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기독교의 교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해석을 할 것이냐? 이것이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독교는 배타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종교입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 교파가 2만개에서 3만개로 추정이 되고 한국에만도 엄청난 군소교단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사실은 여실히 입증이 됩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보면 결국은 이런 수 많은 교파의 존재는 성경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을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분열입니다. 배타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이라는 거죠. 물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주된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정치적인 이해관계도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의 뒷받침을 성경의 핵석을 가지고 주장되기 때문에 결국은 성경의 해석이 가장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성경의 해석이란 합의된 어떤 특정한 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숫적 우세를 차지하는 주류 기독교의 해석이 학문적인 우세를 차지하게 되어 마치 그것이 학문적으로 인정된 연구결과처럼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거시적인 측면에서 기본적인 원리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세워질 수 있습니다. 고대문헌이 쓰여진 배경과 문화, 역사, 정치적 상황등을 고려하고 문맥들을 따져야 하는 기본적 원리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 원리에 아무리 충실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내용이 성경에 존재하는데 그것을 보통 성경의 난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난제들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하려고 많은 시도를 했죠. 그런데 여기에 많은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난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목적 자체가 교리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성경을 상식을 가지고 읽어보면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와 모순되는 여러 내용이 있기 때문에 회의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런 회의론은 결국 전통적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런 태도를 지니게 되면 기독교에서 이탈하기 쉽습니다. 계몽주의시대 이후에 이런 현상이 유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죠.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이런 회의론을 불러일으킬만한 성경의 내용을 기존 기독교 교리에 맞추어서 해석하려는 시도를 한 것입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신학자요 성경 학자라고 해도 성경을 읽으면 난해한 내용이 많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아무리 고대 언어와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고고학에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자라고 해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그냥 난제라고 놓아두지 않은 채 종교적인 측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설명을 시도하게 되면서부터 성경의 해석은 뒤틀려지는 것이죠. 앞에서 말한 원문의 부재와 번역의 오류가 가지는 문제점에 더 큰 문제를 더하는 셈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신학교에서는 성경 전체를 모두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주석을 가지고 혼자서 공부합니다. 그런데 주석에서도 난제라고 규정해버린 구절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난제만 따로 다루고 있는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죠. 성경의 난제만을 따로 골라서 설명을 하는 책들이 몇몇이 있는데 그 중에 보편적으로 널리 잘 알려져 있는 책이 Gleason Archer 가 쓴 Em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입니다. 많은 목사나 신학자들이 이 책을 인용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성경의 난테를 대하는 여덟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Recommended Procedures in Dealing With Bible Difficulties 
 
 In dealing with Bible problems of any kind, whether in factual or in doctrinal matters, it is well to follow appropriate guidelines in determining the solution. This is most easily done by those who have carefully and prayerfully studied the Bible over a number of years and have consistently and faithfully memorized Scripture. Some guidelines are as follows: 

1. Be fully persuaded in your own mind that an adequate explanation exists, even though you have not yet found it. The aerodynamic engineer may not understand how a bumble bee can fly; yet he trusts that there must be an adequate explanation for its fine performance since, as a matter of fact, it does fly! Even so we may have complete confidence that the divine Author preserved the human author of each book of the Bible from error or mistake as he wrote down the original manuscript of the sacred text. 

2. Avoid the fallacy of shifting from one a priori to its opposite every time an apparent problem arises. The Bible is either the inerrant Word of God or else it is an imperfect record by fallible men. Once we have come into agreement with Jesus that the Scripture is completely trustworthy and authoritative, then it is out of the question for us to shift over to the opposite assumption, that the Bible is only the errant record of fallible men as they wrote about God. If the Bible is truly the Word of God, as Jesus said, then it must be treated with respect, trust, and complete obedience. Unlike all other books known to man, the Scriptures come to us from God; and in them we confront the ever-living, ever-present God (2 Tim. 3:16-17). When we are unable to understand God's ways or are unable to comprehend His words, we must bow before Him in humility and patiently wait for Him to clear up the difficulty or to deliver us from our trials as He sees fit. There is very little that God will long withhold from the surrendered heart and mind of a true believer. 

3. Carefully study the context and framework of the verse in which the problem arises until you gain some idea of what the verse is intended to mean within its own setting. It may be necessary to study the entire book in which the verse occurs, carefully noting how each key term is used in other passages. Compare Scripture with Scripture, especially all those passages in other parts of the Bible that deal with the same subject or doctrine. 

4. Remember, no interpretation of Scripture is valid that is not based on careful exegesis, that is, on wholehearted commitment to determining what the ancient author meant by the words he used. This is accomplished by a painstaking study of the key words, as defined in the dictionaries (Hebrew and Greek) and as used in parallel passages. Research also the specific meaning of these words in idiomatic phrases as observed in other parts of the Bible. Consider how confused a foreigner must be when he reads in a daily American  4newspaper: "The prospectors made a strike yesterday up in the mountains." "The union went on strike this morning." "The batter made his third strike and was called out by the umpire." "Strike up with the Star Spangled Banner." "The fisherman got a good strike in the middle of the lake." Presumably each of these completely different uses of the same word go back to the same parent and have the same etymology. But complete confusion may result from misunderstanding how the speaker meant the word to be used. Bear in mind that inerrancy involves acceptance of and belief in whatever the biblical author meant by the words he used. If he meant what he said in a literal way, it is wrong to take it figuratively; but if he meant what he said in a figurative way, it is wrong to take it literally. So we must engage in careful exegesis in order to find out what he meant in the light of contemporary conditions and usage. That takes hard work. Intuition or snap judgment may catch one up in a web of fallacy and subjective bias. This often results in heresy that hinders the cause of the Lord one professes to serve. 
 
5. In the case of parallel passages, the only method that can be justified is harmonization. That is to say, all the testimonies of the various witnesses are to be taken as trustworthy reports of what was said and done in their presence, even though they may have viewed the transaction from a slightly different perspective. When we sort them out, line them up, and put them together, we gain a fuller understanding of the event than we would obtain from any one testimony taken individually. But as with any properly conducted inquiry in a court of law, the judge and jury are expected to receive each witness's testimony as true when viewed from his own perspective--unless, of course, he is exposed as an untrustworthy liar. Only injustice would be served by any other assumption--as, for example, that each witness is assumed to be untruthful unless his testimony is corroborated from outside sources. (This, of course, is the assumption made by opponents of the inerrancy of Scripture, and it leads them to totally false results.) 
 
6. Consult the best commentaries available, especially those written by Evangelical scholars who believe in the integrity of Scripture. A good 90 percent of the problems will be dealt with in good commentaries (see Bibliography). Good Bible dictionaries and encyclopedias may clear up many perplexities. An analytical concordance will help establish word usage (e.g., Strong's, Young's). 
 
7. Many Bible difficulties result from a minor error on the part of a copyist in the transmission of the text. In the Old Testament such transmissional errors may have resulted from a poor reading of the vowels; Hebrew was originally written in consonants only, and the vowel signs were not added until a thousand years after the completion of the Old Testament canon. But there are also some consonants that are easily confused because they look so much alike (e.g., d, daleth and r, resh or y, yod and w, waw). Besides that, some words are preserved in a very old spelling susceptible of misunderstanding by later Hebrew copyists. In other words, only a resort to textual criticism and its analysis of the most frequent types of confusion and mistake can clear up the difficulty (for bibliography on this, cf.  5Introduction). This takes in confusion of numerals also, where statistical errors are found in our present text of Scripture (e.g., 2 Kings 18:13). 
 
8. Whenever historical accounts of the Bible are called in question on the basis of alleged disagreement with the findings of archaeology or the testimony of ancient non-Hebrew documents, always remember that the Bible is itself an archaeological document of the highest caliber. It is simply crass bias for critics to hold that whenever a pagan record disagrees with the biblical account, it must be the Hebrew author that was in error. Pagan kings practiced self-laudatory propaganda, just as their modern counterparts do; and it is incredibly naive to suppose that simply because a statement was written in Assyrian cuneiform or Egyptian hieroglyphics it was more trustworthy and factual than the Word of God composed in Hebrew. No other ancient document in the B.C. period affords so many clear proofs of accuracy and integrity as does the Old Testament; so it is a violation of the rules of evidence to assume that the Bible statement is wrong every time it disagrees with a secular inscription or manuscript of some sort. Of all the documents known to man, only the Hebrew-Greek Scriptures have certified their accuracy and divine authority by a pattern of prediction and fulfillment completely beyond the capabilities of man and possible only for God. 


위의 여덟가지 기준을 자세히 보면 그 기준을 수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부분들이 나타납니다.

한글로 대충 중요한 내용을 번역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죠.

1.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적절한 설명이 반드시 있다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이해시켜라. (Be fully persuaded in your own mind that an adequate explanation exists, even 
though you have not yet found it.)

이미 시작부터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분석적인 태도를 버리라는 말과도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성경을 보는 사람은 성경에 대하여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는데 그런 태도를 가지고 보면 안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교회에서 따지지 말고 그냥 믿으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2. 문제로 보이는 것들이 발생할 때마다 선재하는 것을 버리고 반대의 것을 택하는 오류를 피하라. (Avoid the fallacy of shifting from one a priori to its opposite every time an apparent problem arises.)

이 대목에서 왜 반대의 것을 택하는 것이 오류가 되는지에 대하여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선재하는 것, 즉 이미 전통적으로 알려진 것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죠.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자세히 봅시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에 처음부터 고대 언어를 공부하고 당시의 문화를 공부하고 고대문헌학을 공부한 후에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발을 들여놓은 후에 기독교의 교리와 성경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어느 정도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잡은 후에 성경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연구해보려는 사람만이 그 과정 가운데 회의적인 태도가 발생하는 것이죠. 따라서 2번에 말하는 것을 다시 말하자면 이미 교회에서 배운 것을 버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친 것과 다르다고 보이는 내용을 대할 때에는 이성과 상식이 인도하는 방향을 따르지 말고 교회에서 가르친 것을 수용하라는 애기인데 그것을 달리 말하자면 이성적인 사고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믿음을 위해서는 이성의 눈알을 빼어버리라"고 말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말입니다.

나머지 3-8번까지 갈 필요도 없이 2번에서 두번째 문장을 보면 종교적인 교리를 회의론적인 태도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근본주의자들의 망상을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The Bible is either the inerrant Word of God or else it is an imperfect record by fallible men.

결국 성경의 무오설을 강조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성경의 난제를 설명하려는 것이죠.

6번을 보죠.

간단히 말해서 기존에 나와있는 좋은 주석들 특히 성경의 완전성을 믿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쓴 주석을 참고하라는 말입니다. (Consult the best commentaries available, especially those written by Evangelical scholars who believe in the integrity of Scripture.)

처음에 말한대로 어느 특정 교파의 교리안에서 해석을 하되 이미 그 교파의 교리를 변증할 만한 주석가들의 해석을 수용하라는 것이죠. Archer는 복음주의자들의 주석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편향적인 신학적 색깔을 가지고 만들어진 책이 당당하게 Encyclopedia 라는 이름을 걸고 출판이 되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들이 공부를 하고 그런 목사들을 통해 교인들이 성경의 해석과 난제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성경의 해석이 엉망이라고 말을 해도 복음주의든 근본주의자든 (둘 다 거기서 거기지만) 이해를 못하는거죠.

공산주의자들이 세뇌되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8번을 보죠.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고고학이나 히브리 족속 외의 다른 족속의 고대 문서와 일치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성경 자체가 가장 수준 높은 고고학적 문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Whenever historical accounts of the Bible are called in question on the basis of alleged disagreement with the findings of archaeology or the testimony of ancient non-Hebrew documents, always remember that the Bible is itself an 
archaeological document of the highest caliber)

이 책이 발간된 것은 1980년대 초반입니다. 이 당시에 공부한 신학자와 목사들이 지금은 50대를 넘어서 한국 개신교의 주류세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8번에서 말한대로 당시까지는 성경이 고고학적 자료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고고학계에서는 성서고고학이라는 용어조차 페기해버렸습니다. 대신에 팔레스타인 고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죠. 구약이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없다고 판단을 하고 젊은 고고학자들은 더 이상 구약을 고고학적 자료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장 수준높은 고고학적 문서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구약은 신화와 전승들이 섞인 고대의 문서이기 때문에 고대의 역사와 다른 고대의 문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수두룩한 것입니다.

몇몇 내용을 가지고 성경의 모순과 난제를 이야기하면 기독교인은 이런 저런 설명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난제가 아니며 성경 전체의 주제와 조화가 된다고 말합니다. 단순하게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부터 따지면 뿌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탁상공론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성이 교리에 뿌리박혀있고 그런 배타성은 성경 해석을 포함해 기독교 전반에 나타나있는데 이런 배타성은 기독교인의 태도에까지 스며들어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이 나타나는 것이죠. 특히 이런 배타적 독선주의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근본주의이기 때문에 근본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사회에 번져나가는 것이고 도킨스와 같은 사람을 낳게 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근본주의 기독교인은 왜 기독교만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혹은 왜 기독교만 공격하느냐고 하는데 이유없는 반항 같은 것은 없죠. 자신들이 이 사회와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보지 못하고 그 반향만 가지고 억울한 희생양인듯 착각하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