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연주자 가운데 Jean Max Clement  이 있다. 프랑스 사람인데 십년 전엔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서구에서도 그다지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이 사람의 연주음반이 십여년 전 국내에
서 나왔는데 거의 팔리지가 않아 폐기처분 되었을 거란 얘길 들었다.

 어쩌다 그 음반 하나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들어보고 깜짝 놀라 주위 사람들에게 느낌 그대로 전했더니
대부분 공감했으나 여전히 몇몇 이른바 전문가 비평가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별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는 말이 있듯 막스 클레망의 이 음반은 입소문으로 퍼저나가서 업자가
폐기처분한 그 음반은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희귀품이 되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오리지널 음반이라고
하는 이 사람의 LP음반은 기백만원에 거래되고 있기도 하다.

 출판시장에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양서라고 주장하고 특히 광고나 신문 서평에서
양서라고 잔뜩 치켜세우는 책이 알고보면 황당한 빈 껍데기인 경우가 드물지 않고 반대로 정말 좋은 내용
의 책이 못난 제작자를 만나 창고에서 썩거나 묻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독자들의 취향과 당시의 사회분위
기, 대중성과 밀도가 좀 높은 본격물등 책에서는 판매를 가르는 여러 중요 요소들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1 아이작 B. 싱거   <카프카의 친구들>

 아이작 싱거라면 미국거주 폴랜드 유태계 작가로 70년대 후반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름은 좀 알
려져 있을지 몰라도 아마 이 사람 작품을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단편집을 알게 된
건 당시 내가 필자로 거래하던 출판사에 우연히 들렀다가 사무실에 잔뜩 쌓여있는 이 신간도서를 발견한
게 계기가 되었다. 당연히 한권 공짜로 얻어다가 별 기대감 없이-나는 노벨상 받았다는 책을 돈 주고 사
본 경험이 한 두번 있을 정도다.- 읽게 되었는데 일주일 간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만 이 낯선
유태작가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최고의 작품들이었다. 작품세계나 수법 등에서 진정한 고수
의 독자적 개성을 쉽게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길게 부연할 것도 없이 미국 쪽 주요평가를 옮겨본다.

 -무진장한 광기와 미신의 환상주의자, 유령, 악마, 가난한 유태인들과 신앙 깊은 바보들이 아이작
B.싱거의 마술적 세계에 살고 있다.-Time

-싱거는 소올 벨로우, 버너드 맬러머드, 필립 로쓰 와 더불어 선과 악 사이에 사롭잡힌 영혼의 드라마
를 소재로 하여, 그것을 구체적이며 인간적인, 나아가서 유머러스한 말로 쓰는 능력을 갖고 있다.
     -Library Journal

 이 단편집이 내게 끼친 영향을 다 옮길 수는 없다. 나는 신인작가나 작가지망생들에게 이 책에
관해 홍보요원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잠시 책을 빌려달란 사람들이 있어서 빌려줬
더니 책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출판사에 갔더니 책들이 좁은 창고에 처음 그대
로 그득 쌓여 있어서 덕분에 쉽게 다시 책을 얻어오긴 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그사이 수년이
흘러갔고 책을 얻으러 출판사로 찾아갔더니 모두 폐지공장으로 보내서 지금은 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지금은 <카프카의 친구들>이라는 단편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단편집은
아마 내가 수십년 동안 읽어본 단편집 가운데서 단연코 가장 앞자리에 놓아야 할 작품집일 것
이다.
다행히 아이작 싱거의 또 하나의 단편집이 비슷한 무렵에 탐구당에서 출간되었다. 네사람이 번
역인데 비교적 번역도 양호한 편이었다. 그 출판사 젋은 사장이 아는 친구여서 출판사로 따라
가서 한권을 얻어왔다. <바보 킴펠>이란 단편집이다. 물론 이 작품집도 내용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책을 얻을 때 보니 출판사에 책이 그득 쌓여있고 사장 말이 한권도 안 팔리더라는 것
이다. 그러니 열권이고 스무권이고 내가 달라면 주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오래 전 일이니 지
금은 그 책들도 폐지공장으로 떠난지 오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는 내 서가에 꽂혀있는
<바보 킴펠>을 느긋히 바라보며 '흥, 이번에는 절대로 남에게 빌려주지 말아야지.' 라고 매번
다짐하고 있다.


 2 알버트 E.칸   <파블로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6월항쟁이 막 서막의 연기를 피우던 시기이다. 종합연예잡지 <객석>에서 출간한 책인데
첼로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이 책에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한 연주
가의 생애를 적당히 담아낸 책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나는 이번에도 일주일
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당시 객석과 자매지인 <시사저널> 창간 당시 편집자문으로
출근했기 때문에 독서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나는 밤에 잠자기 전 책을 읽었는데 눈물
이 베개를 한없이 적시었다. 나는 생에 가운데 몇번의 감동적인 독서가 있긴 했지만 이렇
게 눈물을 흘려보긴 청년시절 톨스토이 이래 두번째였다. 단순한 첼리스트가 아닌, 한 위
대한 휴머니스트이자, 위대한 인간의 족적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나는 매 순간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당시 문인단체의 항쟁에 적극가담하게 된 직접 계기가 된 것
이 바로 이 책일 정도이다. 작가단체 초기멤버이긴 했지만 그 뒤로 발길을 끊고 지내던
내가 갑자기 소문없이 나타나자, 다른 동료 후배들이 너무 뜻밖인지 놀란 표정으로 나
를 봤다. 어떤 여기자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며 이런데 안 나올줄 알았는데 왜 나오
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렇다고 카잘스 때문이라고 말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내가 그렇게
말하면 나를 미치광이로 취급할지도 몰랐다.

 저자인 알버트 E. 칸 은 말년의 카잘스 옹과 여러차례 미팅을 갖고 이 책을 써냈는데
책의 주인공도 훌륭하지만 책을 써낸 저자 역시 이런 종류의 저술로는 최고 솜씨를 발
휘했다고 평가된다. 이 책도 거의 팔리지 않아서 창고에 오랜동안 그득 쌓여만 있었는
데 객석이 윤석화에게 넘어갈 때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책도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활동을 하는 바람에 너도 나도 빌려달라고 해서
수차례 분실하고 다시 객석에서 얻어오고를 반복하다가 어느시점에서는맘을 굳게
먹고 절대로 빌려주지 않기로 했다. 덕분에 이 명 저작물은 내 서가에 잘 꽂혀있다.
아마 다섯번째나 여섯번째 내가 얻어온 책일 것이다.

 참고로 이 책에는 피아니스트 코르토와 관련된 흥미있는 일화가 있다. 카잘스와
코르토, 자크 티보는 황금의 트리오 활동을 했다. 그런데 카잘스는 반나치주의이
고 코르토는 살기 위해 나치에 협력했다. 카잘스가 미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코르토
의 도움을 구했을 때 코르토는 거절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코르토가 미국에서
돌아온 카잘스를 찾아와 "우정을 계속하고 싶다"고 간청했는데 카잘스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프랑스 피아니즘의 위대한 대부인 코르토의 나약한 성격의
일단, 그것과 대비되는 불굴의 투사로서의 카잘스가 이 삽화에서 잘 드러난다.

한권의 책이 한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경우에 따라 엄청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