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처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집-직장-집-직장-집
그러다 보니 일중일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월요일인가 싶으면 금요일이다.
오늘이 수요일이라는 사실에 기쁘다.
그래도 한 주일의 한 가운데에서 정신을 추스리고 있으니까.
                                         

다우베 드라이스마는 나이가 들 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현상이 기억의 문제라고 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 수록 의미 있는 체험을 하지 못한다.
의미있는 체험이 아닐 경우 우리의 대뇌는 이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을 살고도 일주일의 기억을 머리에 담아 둘 수 없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같은 체험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체험에서 정서적인 경험을 받을 수 없다. 정서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체험은 곧 증발되어 버리고 그 기억과 함께 시간도 사라지는 것이다. 휙!

어린 아이 때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새롭고 신기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 새로움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경이로움을 질료로 우리의 두뇌는 경험을 기입한다. 물론 축적되는 경험이 바로 우리가 가진 시간이다. 아이들은 일주일을 살며 일주일을 기억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늘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훨씬 많은 시간을 보유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더 많은 시간을 살며 더 행복한 삶을 산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그래서 나귀의 눈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새삼스럽게 감동하는 조르바를 니코스카잔차키스는 "창조주"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의 눈은 익숙함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니까.

쳇바퀴 같은 삶이라고 이름하지만 사실 매일매일은 늘 다르다. 하지만 우리의 낡고 마모된 정신은 그 새로움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담지 않으며 모래알처럼 흘려보낸다.

깨닫는다?

깨닫는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낡은 기억의 더미라는 것을 알아 차리는 것 아닐까? 그래서 기억으로부터 자류롭게 매 순간 새롭게 자기 자신과 사물을 바라 볼 수 있는, 그래서 다시 경이로움을 가지고 매일 매일을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워즈워드가 무지개를 보며 노래했던 것은 그 경이로움을 잃어버린 것은 이미 삶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쳇바퀴같은 매일을 살면서 나는 무지개를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저 시간이 휙 하고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면, 사실 모든 것은 새롭기만 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정신이 낡은 것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