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이런 저런 거래로 알고 지내는 광양 아주머니 한 분이 자기 농장에서 생산한 햇 곳감 한 상자를
구정 선물로 보내왔다. 첨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근래 햇곳감이고 묵은 곳감이고 손을 댄 기억이 없다.
가끔 냉장고 안에 곳감이 들어와 있어도 못본듯 외면해버린다. 알다시피 감이나 곳감은 변비의 적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하루 우유 두컵으로 변비증세를 잘 해결해 왔다. 우유도 어짜피 먹는 음식인데 치료제
구실까지 해주니 아주 좋은 처방전이 된 것이다. 러시아에서 삼개월 머물 때도 이 습관은 어김없이 지켜졌다.
한번은 지방 함유율이 너무 많은 우유-러시아 우유는 그런 우유가 많다-를 잘 못 구해 마셨다가 종일 설사에
시달린 경험도 있다. 암튼 우유는 내게 하루도 거를 수 없는 필수 음식이 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곳감이 맛있는 줄 뻔히 알지만 그것을 보는 것이 차라리 고통일 뿐이다.
더구나 나는 어릴 적에 감나무가 많이 있는 집에서 살았기에 단감은 물론 곳감 맛에 이골이 났던 전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비의 고통을 감수하고 곳감에 손을 댈 수는 절대로 절대로 없었다.

 광양에서 보내온 햇곳감은 묵은 곳감처럼 푸르딩딩한 색으로 변색된 것이 아니라 본래 감의 노르끼한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주 부드럽고 삽상해서 이가 성치 못한 사람도 쉽게 먹을 수 있노라고 집
사람이 말해줬다. 거실 선반에 그게 놓여있는데 한동안 그러거나 말거나 처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다가
갑자기 '대체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곳감맛을 봇보고 지내온 것이냐? 변비가 걱정된다고 하지만 곳감을
영원히 배척하고 지낸다는 것은 인생을 제대로 산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하나 정도 먹고 하루 이틀 시달린들 그게 대수인가.

 아내가 없는 틈을 타 나는 놀놀한 곳감 한개를 접시 위에 담아 식탁 위에 놓고 슬슬 시식을 시작했다.
과연 충분히 말리지 않은 햇곳감이라 크림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입 안에 전해지는 그 맛과 향이란!
평소 제과점의 여러가지 빵과 과자을 즐겨 먹는데 그런 인공제품과는 비할 수조차 없는 독특한 향기
와 순도높은 달콤한 맛, 나는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한개 추가.

 이제 고생길이 환히 열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후에 다시 냉장고를 슬쩍 열고 또 한개를 시식.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눈을 뜨자말자 또 냉장고로 달려가서 한개를 꺼내 슬쩍...

 아내는 '참 저사람 웃긴다'고 비양거리면서도 내가 모처럼 맛을 찾은데 크게 불만은 없는 표정이다.
호남에는 참 맛갈스런 생산품들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지난번 해남에서 김치사업 하는 후배가
보내준 김장김치 맛도 일품이어서 겨울 동안 밥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후배에게 치사를
한바가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참 미안한 얘기지만 다른 지역 김치는 나는 먹을수가 없다.
전주 쪽 김치 맛도 일품이란 걸 작년겨울 실감했다. 전주에 처가를 둔 후배가 보내준 김치에 한동안
심취해서 아내의 눈총을 받았던 것이다.

 전라도엔 예부터 먹거리가 풍부해서 지역 한량들이 눈만 뜨면 음식타령하고 낮엔 뭘 먹을까 궁리
하느라고 천하대세를 경영할 야심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근거 없는 설도 있었다. 전라도가 낳은 불세출의
인물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음식 맛에 관해서는 완전히 자유롭지가 못하다. 그가 한밤에 아내 몰래
라면을 끓여먹다가 아내에게 발각당해 야단을 맞았다는 얘기는 아마 본인이 한 얘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사실 굉장한 미식가이며 다식가이기도 했다. 마포 가든호텔 뒷골목에는 중간규모의 중국집이 있
는데 그곳이 한동안 그가 드나들던 단골집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제비집 수프를 자주 즐기곤 했는데
요리사가 언제나 그에게 제비집 재료를 들고 와서 설명과 검증을 받은 이후에 스프를 만들어 내오곤
했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어쩌다가 영광스럽게도 그런 자리-아마 그가 영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나기 전 송별연 비슷한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광양 곳감 얘기하다 삼천포로 빠졌는데 아직 이 햇곳감이 냉장고에 그득해서 사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러다가 결국 그 보기싫은 변비치료 의사 얼굴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지극히 현실적
인 걱정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달콤씁쓰름한 곳감맛을 어찌 그냥 두고 초연하게 지낼
수가 있는가. 그건 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