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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not consumers, the big green problem (By Simon Butler)

소비자들이 아니리 시스템이 환경 문제의 주범이다 (사이먼 버틀러)

 

* 출처: <그린 레프트> 2011123

http://www.greenleft.org.au/node/49654


 

 

Most environmentalists would agree consumerism and consumer culture put too heavy a burden on the planet. Consumer spending is central to the economy, which is why economists and governments also pay it close attention.

 

대다수의 환경주의자들은 소비주의와 소비자 문화가 지구에 너무 무거운 부담을 준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소비자 지출은 경제의 중심이며, 이것이 경제학자들과 정부들도 그것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But most mainstream economists say endless economic growth, which implies limitless consumption, is both possible and desirable. This ignores how it helps fuel our ecological problems.

 

그러나 대다수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무한한 경제성장을 말하는데, 그것은 무제한의 소비가 가능하고 소망스럽다는 생각을 함축한다. 이것은 어떻게 그것이 우리의 생태 문제들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하는 지를 무시한다.

 

Today, most things sold on the market are made to be thrown out and replaced. A big part of economic activity is made up of selling products “designed for the dump”.

 

오늘날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다수의 것들은 폐기되고 대체될 수 있도록 제조된다. 경제활동의 큰 부분이 쓰레기 수거 트럭에 실리게 될 생산물들을 판매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It's not hard to see why this suits the biggest firms with the most market power. They make more money selling new products regularly than they can from products that are long-lasting, repairable and easy to upgrade.

 

이것이 최대의 시장 지배력을 갖는 대기업들에게 적합한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들은 오래 가는, 수리될 수 있고 업그레이드 되기 쉬운 생산물들로부터 보다는 정례적으로 새 생산물들을 판매하는데서 더 많은 돈을 번다.

 

This cycle begins with the extraction of raw materials from the earth. The throw away economy needs to turn more and more of nature into products for sale: fossil fuels, soil nutrients, fresh water, metals and timber.

 

이 순환은 지구로부터 원료를 착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폐기 경제는 자연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판매를 위한 생산물들로 변형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화석 연료, 토양 영양분, 담수, 금속 그리고 수목.

 

The cycle ends with the steady release of waste back into the ecosphere: waste gases into the sky, waste pollutants into water, and waste chemicals and toxics into the soil.

 

순환은 그것들이 폐기물이 되어 끊임없이 지구생물권으로 되돌려 보내지는 것으로 끝난다: 폐기된 개스는 대기 중으로, 폐기된 오염물질은 하천으로, 그리고 폐기된 화학물질과 유독물질은 토양으로.

 

In the rich nations and the upper class enclaves in the South, mass consumer society has also given rise to its own culture, which encourages individuals to define their happiness and social status by the things they consume.

 

부유한 나라들과 남반구의 상층계급 거주지들에서, 대량 소비사회는 또한 그것 자신의 문화를 발생시켰다. 그 문화는 개인들에게 그들의 행복과 지위를 그들이 소비하는 물건들에 의해 정의하라고 자극한다.

 

Globally, corporations spend trillions on marketing and advertising each year. Advertising doesn't make people mindless: everyone resists and disregards sales pitches every day. But this huge, continuous sales effort helps reinforce the values of a consumer society.

 

전지구적으로, 기업들은 매년 마케팅과 광고에 막대한 액수의 돈을 쓴다. 광고는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는다: 모든 이들이 매일같이 구매를 호소하는 목소리들을 물리치고 무시한다. 그러나 이 무한정하고 부단한 판매 노력은 소비자 사회의 가치를 강화하는데 일조한다.

 

Advertising fosters compulsive consumer habits and creates new “needs”. And, as Naomi Klein began her classic book No Logo, modern management theory holds that “successful corporations must primarily produce brands, as opposed to products”.

 

광고는 강박적인 소비습관을 촉진하며 새로운 욕구들을 창출한다. 그리고, 나오미 클라인이 그녀의 고전적 저작 <노 로고>의 서두에서 지적했던 대로 현대 경영 이론은 성공적인 기업들은 일차적으로 제품들이 아니라 브랜드들을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These brands are sold on the promise they can satisfy complex emotional and social needs: happiness and relaxation, belonging and confidence, fun, sex, and respect.

 

이 브랜드들은 복합적인 정서적 및 사회적 욕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약속과 더불어 판매된다: 행복과 휴식, 소속감과 자신감, 재미, 섹스, 그리고 존중.

 

The promise is always an illusion. Having more stuff has not made us happier.

 

그 약속은 언제나 환영이다. 더 많이 갖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Advertising revenue is the corporate media's main source of income. Rupert Murdoch, Ted Turner and Mark Zuckerberg would be nothing without it. Every media corporation is therefore a giant advertising machine.

   

광고수입은 미디어 기업의 주요 소득원천이다. 루퍼트 머독, 테드 터너 그리고 마크 주커버그는 광고수입 없이는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미디어 기업은 거대 광고 기계이다.

 

The media's role in the economy adds to the waste and pollution in the physical environment. But Adbusters' Kalle Lasn and Micah White say the advertising-driven media pollute the “cultural environment” too.

 

“The commercial media are to the mental environment what factories are to the physical environment. A factory dumps pollution into the water or air because that’s the most efficient way to produce plastic or wood pulp or steel. A TV station or website pollutes the cultural environment because that’s the most efficient way to produce audiences.”

 

경제 속에서의 미디어의 역할은 물리적 환경 속에서의 폐기물과 오염물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애드버스터>의 칼레 라슨과 미카 화이트는 광고에 의해 추동되는 미디어는 문화적 환경또한 오염시킨다고 말한다.

 

상업적 미디어가 정신적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는 공장들이 물리적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와 같다. 공장은 오염물을 하천이나 대기에 쏟아 붓는다. 그것이 플라스틱이나 목재 펄프나 강철을 생산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TV 방송국이나 웹사이트는 문화적 환경을 오염시킨다. 그것이 관중들을 생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Perhaps the most glaring lie told is that the consumer society brings freedom and choice. John Bellamy Foster, Brett Clark and Richard York say in their book The Ecological Rift:

 

“The entire marketing system, in which trillions of dollars are spent persuading individuals to buy commodities for which they have no need, and no initial desire ... is not a system for expanding choice but for controlling it in the interest of promoting ever-greater sales at higher profits.”

 

아마 가장 새빨간 거짓말은 소비자 사회가 자유와 선택을 신장시킨다는 것이리라. 존 벨라미 포스터, 브레 클라크 그리고 리처드 요크는 그들의 책 <생태학적 균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필요로 하지도 않고 애초 욕망하지도 않았던 상품들을 구매하도록 개인들을 설득하는데 수조달러를 지출하는 전체 마케팅 시스템은 선택을 확장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선택을 통제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 통제의 목적은 더 많은 수익을 남기기 위해 더 많은 판매를 촉진하는 것이다.

 

But while most environmentalists agree consumerism is a problem, differences emerge about what do about it and how to overcome it.

   

그러나 비록 대다수의 환경주의자들이 소비주의가 문제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소비주의에 어떻게 대응하고 그 소비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견해차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Many are tempted to blame consumer choices for causing our environmental problems and insist too many consumers are wrecking the planet because they aspire to affluent, wasteful lifestyles.

 

많은 이들이 환경문제들을 유발한 책임을 소비자 선택에 돌리고 싶어 하며 너무 많은 소비자들이, 풍요롭고 낭비하는 라이프스타일들을 열망하기 때문에,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Mainstream environment groups run campaigns to convince people to limit household consumption, recycle more and cut down on waste. Others talk of “greening” consumer values and want to channel consumer spending toward green products.

 

주류 환경주의 그룹들은 가계 소비를 제한하고 더 많은 것들을 재활용하고 쓰레기를 감소시키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캠페인들을 벌인다. 다른 그룹들은 소비자 가치들을 녹색화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며 녹색 제품들을 향하게끔 소비지출을 조종하고 싶어 한다.

 

Some radical ecologists also focus most attention on consumer choices. In a recent interview with Green Left Weekly, Ted Trainer said consumer “demand for affluence is a key driver of today's global problems”. He said this meant “the main problem group is not the corporations or the capitalist class The problem group, the key to transition, is people in general.”

 

일부 급진 생태주의자들 또한 주로 소비자 선택에 주목의 초점을 맞춘다. <그린 레프트 위클리>와의 한 최근 인터뷰에서, 테드 트레이너는 풍요에 대한소비자의 요구오늘날의 전반적 문제들의 주요 추동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주요 문제군은 기업들이나 자본가 계급이 아니라는 것 ... 문제군은, 이행의 실현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사람들 일반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But as monstrous as the consumer economy has become, consumer spending is still not the biggest environmental problem not by a long shot.

 

그러나 소비경제가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소비지출은 아직 가장 큰 환경문제가 아니다 - 적어도 큰 그림을 놓고 보면 그렇다.

 

Most waste and pollution is caused by industrial, military and commercial processes, over which consumers have no control. For example, in her 2009 book The Story of Stuff, Annie Leonard said household waste makes up only about 2.5% of the US total 97.5% of solid waste comes from business and government operations, not consumers.

 

대부분의 폐기물과 오염물은 소비자들이 어쩔 도리 없는 산업적, 군사적 그리고 상업적 과정들에 의해 야기된다. 예를 들어, 그녀의 2009년 책 <물건 이야기>에서, 에니 레오나드는 가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미국 전체의 페기물의 2.5%만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 고체 폐기물의 97.5%는 소비자들이 아니라 사업자들과 정부가 하는 일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Limiting personal consumption is a good idea where possible. But it hardly scratches the surface of the ecological problem, which lies in how our stuff is made and distributed.

 

사적 소비를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기만 하다면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우리의 물건들이 제조되고 분배되는가에 놓여있는 생태문제의 표면에 별다른 흔적을 내지 못한다.

 

That statistical fiction, “the average consumer”, does not reveal much either. It’s true that average personal consumption has risen in the West. But the average figure conceals the extent to which the ultra-rich are super-consumers and super-producers.

 

통계적 허구인 평균 소비자또한 별로 많은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평균적인 사적 소비가 서구에서 증가해 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균적 수치는 거부들이 슈퍼 소비자들이고 슈퍼 생산자들인 정도를 은폐한다.

 

In 2005, Citigroup analysts decided the wealth gap in Western economies is so large they are best called “plutonomies” economies powered by, controlled by and reliant for growth on a small, rich elite.

   

2005, 시티그룹 분석가들은 서구 경제들에서의 빈부격차는 그 경제들을 금권경제들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좋을 정도로 크다고 결론 내렸다 -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에 의해 추동되고 통제되며 성장을 위해 그들에게 의존하는 경제들.

 

Trainer is a critic of capitalist growth and consumerism. But his focus on “people in general” as the source of environmental problems takes growth and consumption out of this social context. In a 1989 article in The Progressive, US radical ecologist Murray Bookchin said this kind of approach tends to “distort and privatise the problem”.

 

트레이너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가이다. 그러나 환경문제들의 근원이 사람들 일반이라는 견해는 성장과 소비를 이 사회적 맥락에서 떼어낸다. <더 프로그레시브>에 기고한 한 1989년 글에서, 미국의 급진적 생태학자 머레이 북친은 이러한 종류의 접근이 문제를 왜곡하고 사소화한다고 말했다.

 

Bookchin said:

 

“It is inaccurate and unfair to coerce people into believing that they are personally responsible for present-day ecological dangers because they consume too much or proliferate too readily.”

 

북친은 말했다:

 

사람들을 세뇌시켜 그들이 너무 많이 소비하거나 너무 쉽게 번식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험들에 개인적으로 책임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불공정하다.

 

It’s not much help to call on more people to choose simpler lifestyles because, “ironically, many ordinary people and their families cannot afford to live ‘simply’” in the present society.

 

더 간소한 라이프스타일들을 선택하라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보통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현 사회에서 간소하게살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Bookchin agreed that capitalist growth was “eating away the biosphere at a pace unprecedented in human history”. But he also said:

 

“Public concern for the environment cannot be addressed by placing the blame on growth without spelling out the causes of growth. Nor can an explanation be exhausted by citing ‘consumerism’ while ignoring the sinister role played by rival producers in shaping public taste and guiding public purchasing power.”

 

북친은 자본주의적 성장이 인간사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생물권을 잠식하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장의 원인들을 규명함 없이 성장 자체를 비난하는 것으로 환경에 대한 공적 관심에 부응할 수는 없다. 공중의 취미를 형성하고 공중의 구매력을 안내하는데 경합하는 생산자들이 행하는 불길한 역할을 무시하면서 소비주의를 거론하는 것이 충분한 설명인 것도 아니다.

 

But if appeals for people to consume less or live simply fall short, it’s also dubious that consumerism can be neatly overcome by a shift to a non-capitalist economy, where the profit motive no longer drives production and investment.

 

그러나 덜 소비하라거나 간소하게 살라고 사람들한테 호소하는 것이 충분치 않다면, 이윤 동기가 더 이상 생산과 투자를 추동하지 않는 비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한다고 해서 소비주의가 말끔히 극복될 수 있을지 또한 의심스럽다.

 

In his 1979 book The Self-Managing Environment, Australian ecologist Alan Roberts said overthrowing capitalism is crucial, but is still not enough to fully tackle consumerism.

 

그의 1979년 책 <자기관리 환경>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생태학자 알란 로버트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결정적 일보를 내딛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소비주의에 맞서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The ecological disaster that was the Soviet Union, for example, shows that “the mere existence of planned, nationalised industry cannot prevent the gallop towards a destructive consumerism”.

 

예를 들어, 소련에 야기되었던 생태학적 재난은 계획되고 국영화된 산업의 존재만으로는 파괴적 소비주의를 향한 질주를 저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Roberts’ point was that “consumerism is not just a particular organisation of the economy, but a way of life”. By this he meant that consumer culture or the values of consumerism “are reproduced by the life experience of people in almost every social sphere they inhabit, not just on the job, in their neighbourhood or in political life”.

 

로버트의 포인트는 소비주의는 한 특수한 경제조직 방식일 뿐 아니라 하나의 생활양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에 의해 그는 소비문화 - 또는 소비주의의 가치들 -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회영역에서, 일하는 중에만이 아니라 이웃과의 교류나 정치적 활동에서도 사람들의 생활경험에 의해 재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So the problem of consumerism is not just about advertising and corporate power in the marketplace, as important as these things are.

 

따라서 소비주의의 문제는 광고, 그리고 시장에서의 기업권력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들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Consumerism endures because it is also a kind of compensation for an alienated existence. Consumerism thrives when most people the producers, the workers are powerless in politics and society.

 

소비주의는 그것이 소외된 삶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기 때문에 지속한다. 소비주의는 대다수의 사람들 - 생산자들, 노동자들 - 이 정치와 사회 속에서 무력하기 때문에 번성한다.

 

Roberts summed up his argument in this way:

  

“Ecological values are those linked with consumption, but they are in fact substantially derived from the way in which people experience life as producers. It is that exploited, alienated and relatively powerless period, the working day, which reduces them to settling for commodity satisfaction in their ‘free time’.”

 

“The bargain just struck the deprivation of goods related to human community and creative effort, in exchange for commodities or the promise of them extends its influence throughout all levels and institutions, marking out the shape of the ‘consumer society’. It is this society which threatens the environment with its unlimited appetite unlimited precisely because its objects are so unsatisfying.”

 

로버트는 다음과 같이 그의 논변을 요약한다:

 

소비주의의 가치들은 소비와 연결되어 있는 가치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실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삶을 생산자들로서 경험하는 방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을 그들의 자유 시간에 기껏 상품만족이나 추구하게끔 하는 것은 착취받고 소외되고 상대적으로 무력한 시간, 즉 노동시간이다.

 

막 이루어진 거래 - 인간 공동체 및 창조적 노력과 관계된 재화들의 결핍을 대가로 치르고 상품들이나 그것들의 약속을 제공받기 - 는 모든 수준들과 제도들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쳐 소비사회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의 무한정한 욕망 - 바로 그 대상들이 대단히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무한정한 욕망 - 으로 환경을 위협하는 것은 이 사회이다.

  

 

To really tackle the consumer society and to stop it from reemerging, today’s powerless consumers need to win real control over their lives and labour. Roberts said a new system based on grassroots democracy worker and community self-management is the best ecological alternative.

 

소비사회와 제대로 맞붙어 그것이 다시 출현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면, 오늘날의 무력한 소비자들은 그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쟁취할 필요가 있다. 로버트는 뿔뿌리 민주주의에 토대한 새로운 시스템 - 노동자들과 공동체에 의한 자주관리 - 이 최고의 생태학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This view of consumerism and how to tackle it also raises strategic issues for environmentalists today.

 

소비주의와 그것에 맞서는 방법에 대한 이 견해는 또한 오늘날의 환경주의자들에게 전략적 쟁점들을 제기한다.

 

Roberts said it means environmentalists have a stake in “every struggle in an industrial society, whatever the immediate issue”.

 

로버트는 그것은 환경주의자들이 당면한 쟁점이 무엇이든 간에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투쟁에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How these struggles develop is key. Are they powered by grassroots activists or led by unaccountable functionaries? Do they try to build mass movements for change or do they focus mostly on lobbying politicians?

 

결정적인 것은 어떻게 이 투쟁들이 발전해야 하는가이다. 그것들은 뿔뿌리 활동가들에 의해 추진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책임을 지지 않는 공무원들에 의해 지도되어야 하는가? 그것들은 변화를 위한 대중운동을 도모하려 해야하는가 아니면 정치가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에 주력해야 하는가?

 

These are important ecological questions because it is by taking part in such struggles that people can begin to throw off their imposed social role as passive consumers.

 

이것들은 중요한 생태학적 물음들인데, 사람들이 수동적 소비자들이라는, 그들에게 부과되어온 사회적 역할을 내던지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투쟁들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After all, asks Roberts:

 

“What sort of self-management, what turn from consumerist values, could be expected of workers who meekly accepted a cut in real wages, or of women who surrendered to others their right to decide on child-bearing?”

 

결국, 로버트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어떤 종류의 자주관리가, 소비주의 가치들로부터의 어떤 전환이 실질임금 삭감을 순순히 수용하는 노동자들에게, 또는 아이 양육에 관한 결정권한을 다른 이들에게 양도하는 여성들에게 기대될 수 있을까?

 

This is a very different conclusion to Trainer, who said in his GLW interview that “the essential aim is not to fight against consumer-capitalist society, but to build the alternative to it”.

 

이것은 트레이너에게는 매우 낮선 결론인데, 그는 그의 GLW 인터뷰에서 본질적 목표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대안을 수립하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It is a mistake to separate the fight against present conditions from the building of an alternative way of life. It is through struggle against the injustices of capitalist society that the new values, ideas and institutions of an alternative, ecological society will emerge.

 

현재의 조건들에 맞선 싸움을 대안적 생활양식의 수립과 분리시키는 것은 실수이다. 대안적인 생태학적 사회의 새로운 가치들, 관념들 그리고 제도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정의들에 맞선 투쟁을 통해서이다.

 

[Simon Butler is an editor of Green Left and author, with Ian Angus of Too Many People? -- which tackles the myth that population growth is a major environmental threat.]

 

[사이먼 버틀러는 <그린 레프트>의 편집자이자 이안 안거스와 더불어 인구증가가 환경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신화를 비판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공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