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든 칼을 통해 그의 생명이 부르르 떨여 온다. 격렬한 살인 행위 중간에 느껴지는 그 부드러움에 나는 거의 정신을 잃는다. ............. 끝장을 내려면 그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야 한다. 마치 달구어진 버터를 자르는 것처럼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는다. 놈들은 마지막 순간에 항상 이렇게 속삭인다. "제발" 그럴 때는 자기를 죽이지 말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든다.

- 잭 헨리 애벗, <짐승의 배 안에서, In the Belly of the Beast>, 스티븐 핑커, <빈서판>에서 재인용


스티븐 핑커는 한 정신병질자(사이코패스)의 일화를 <빈서판>에서 길게 적는다. 그는 매력적이고 문학에 재능이 있는 친구였다. 문학가들은 그의 재능에 반해서 철없는 낭만주의에 휩싸였고 그를 출소시키기 위하여 운동을 벌였고 결국 그는 가출소 된다. 그는 2주후 술집에서 종업원이 직원용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유로 그를 밖으로 불러내 가슴에 칼을 꽂는다.

스티븐 핑커는 사이코패쓰가 생물학적 기형이나 질병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들에게는 "생물학적 노이즈" 때문에 발생하는 신체적 불균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양심이 결여된 채 태어나는 것이고, 이들은 결코 교화나 상담치료을 통해 양심을 '획득'할 수 없다. 양심 역시 유전적인 기반을 지닌 선천적인 모듈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심리치료는 오히려 이들의 위험성을 더 증가시킨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고 밝힌다.

이들이 반응하는 것은 확실하고 일관적인 처벌뿐이다. 이들은 결코 선천적인 양심에 의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포기하지 않기때문이다. 전술했다 시피 양심이라는 기능이 결여되어 있는 까닭이다. 확실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이들의 행동을 통제가능하게끔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들의 무제한적인 이기심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더구나 이러한 양심결여의 현상이 인류라는 종에서 생물학적 기형이 아니라 '정상적인 유전자'의 발효라면 이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리차드 도킨스는 징기스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히틀러도 그에 비하면 악인이 아니라고. 다만 도구가 더 좋았을 뿐이라고. 징기스칸은 최고의 즐거움은 적을 죽이고 그의 가족들이 울부짖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징기스칸은 완전한 사이코패스, 그것도 사회적 교화가 전혀 통용되지 않는 고질적인 사이코패스다. 그러나 그는 인류사가 폭력으로 물드는 시점에서 영웅으로 자리매김 한다.


결국 인류사에서 폭력이 근절된 적은 없다.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폭력과 살인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 폭력이 벌어지는 상황, 그 사회에 체제내화된 사이코패스는 영웅으로 자리잡을 지도 모른다.
사이코패슨는 인류라는 종이 가진 폭력성향이 만연할 때 스스로의 생존률을 높일 수 있는 개체라고 생각한다. 또는 극심한 재해상황에서 이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킬 거다.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의 생존률은 양심적인 인간, 호혜본성을 강하게 갖춘 인간보다 더 높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견가능한 가설이다. 혹은 이런 종류의 인간이 지도자로 군림하는 집단의 생존가능성 역시 높을 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사이코패스는 인류의 유전자가 종의 생존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유전자 풀의 다양성의 일환으로 보존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지구적 재해가 닥친다면 이들은 일반인보다 더 잘 생존할 것이고 이들의 생존이 인류라는 종의 유지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테니까.

유전자는 결코 개체를 보호하거나 사회의 복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복사와 확장을 원할 뿐이다. 사이코패슨는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유용할 수도 있는 자기확장도구 아닐까?
만일 인류가 폭력적 본성을 잘 제어하게 되고, 인류사회자체의 폭력성이 줄어든다면 사이코패스형 유전자는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이들의 수치는 보다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유전학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스티븐 핑커의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우리 사회의 평화로움이 확장될수록 사이코패스는 줄어들고, 사회의 두려움도 줄어들게 되는 게 아닐까? 사회의 진화가 개개인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 아닐까? 우리가 좋은 사회를 만들 수록 우리의 본성은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