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재 정권이 뭘해도 이북 김일성 정권보단 낫다. 고로 만족하고 살아라.
2. 야권이 뭘해도 한나라당 정권보단 낫다. 고로 만족하고 살아라.

다를 것 없다.

그러면 왜 저 주문이 횡행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권력자 혹은 정치인에게 저 주문보다 매력적인 슬로건이 없기 때문이다.

저 주문이 통하는한 뭘해도 된다.

여대생 옆에 끼고 술마셔도 되고
맘에 안드는 놈 남산에 불러 조져도 된다.

해태 브랜드 껌인줄 알고 샀더니 '우린 삼성인데 속았지롱?' 놀려도 되고
심지어 '호남이 고립되더라도' 운운하며 협박해도 된다.

한마디로 저 주문은 '정치인에게 자유와 권력을!!!'이다.

반면 유권자는 '표찍는 기계'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저런 슬로건엔 어떤 식으로든 무지몽매한 대중이 가정된다.

박정희 시절이야 말해 뭣하랴.
참여정부시절 그 유명한 '대통령 21세기, 국민 20세기'부터 '국개론' '대통령은 우리가 모르는 고급 정보를 갖고 계시니'

그리고 '영남인의 가짜 신앙'운운이 그러하다.

진짜 그러한가?
다른건 다 그만두고 영남인의 가짜 신앙만 살펴보자.

내 주변 친인척 경상도 출신이 70프로다. 어릴 적 선산가면 주구장창 들었던 이야기가 '저 도로는 요 옆 동네 살던 어느 장관이 뚫어줬고 저 다리는 어느 의원이 놔줬고 저 시설은 안기부에 있던 누가 옮겨놨고...'

필자 선산이 경상도에서 오지다. 그래도 아스팔트 다 포장돼있었다.

그래서 대학 시절 호남 여행갈 때까지(80년대) 필자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은 다 아스팔트 포장돼있는 줄 알았다.

지역개발해서 지주만 돈 벌고 민중의 삶과는 상관없는데 사람들이 현혹됐다고?

필자도 대학시절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졸업무렵 언론사 시험 공부하던 어느 호남 출신 선배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난 **일보 시험 안봐. 어차피 떨어지니까.'하는 순간 그전까지 지나쳤던 수많은 사건의 편린들이 조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왜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호남 비하가 터져 나오는지.
왜 내가 살던 달동네에서 초라한 행색의 사람들이 따로 지내는지.

권력이 무서운건 나눠줄 떡 고물이 있다는 거다.

다니고 있는 회사가 정부 입찰을 해야 월급이 나온다. 그 입찰은 뭘로 이뤄지는데?

언어는 그 사람의 욕망을 반영한다. '지역 차별'과 '지역 대립'은 그게 그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 차별'은 그 자체로 현실을 고발하며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반뎜 '지역 대립'이라 한순간 실체적 진실은 은폐되고 그 결과적 현상만 문제시된다. '지역 차별'은 권력자에게 책임이 돌아가고 그 대안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책이나 법률이 도출되지만 '지역 대립'에선 '몰투표하는 유권자'가 문제된다.

노무현 당선 이전까지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이 악착같이 '지역차별'이란 단어를 금기시하고 '지역대립'이란 단어를 선호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그들은 '지역차별'이란 단어에 대해 '지역대립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이렇게 권력자는(또 이익을 보는자는) 언제나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다. 결과는 프로세스의 산물이지만 그들은 프로세스를 바꾸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대중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저 놈의 지겨운 마법이 해체되기 시작한건 저 프로세스로부터 피해를 입은 대중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바로 묻지마 투표한다는 비아냥과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는 지역대립이라며 근엄한 얼굴을 한 지식인들의 설교에도 현혹되지 않고 90프로 몰표를 준 대중! 바로 그들이 저 프로세스를 바꾼 거다. 

모두 기억할 거다. 2002년 대선 당시 이대 교수란 분께서 참으로 나라를 걱정한다는 얼굴로 '90프로 투표하는 호남이 더 지역주의적'이라 설교하신 그 광경을.

필자가 보기에 그 시간을 기점으로 이른바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마이너한 담론으로 전환됐다. 물론 지역차별과 지역적 패권의식이 사라졌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정치적 해결과제에서 마이너한 문제가 됐다는 거다.

그냥 사소하게 지적하자. 이제 더 개발할 지역이 별로 없다. 지역개발하면 그 지역이 흥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필자가 호남 사정을 잘 알진 못하지만 이제 호남 전체의 파이를 놓고 보더라도 어느 지역 개발보다 차라리  어느 업종이 흥할 것인가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수도권의 유권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수도권은 원적지가 다양해서 공통의 이해관계가 없다고 보는건 2002년 이후 심화되고 있는 수도권의 표쏠림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바로 이 점에서 사실 필자는 일부 런닝맨분들과 의견이 다르다. 이 이야기는 누차 했으니 넘어가자. 어떤 점에선 호남 분들에게 미안한 이야기기도 하다. 지역 차별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는데 마이너한 담론으로 전환됐으니...

역사는 냉혹하다. 역사는 개개인의 의지나 선악을 따지지 않는다. 그 냉혹한 방향에 함께 하는가, 그러지 않는가를 중시할 뿐이다.

이제 더 큰 문제는 복지와 계층 갈등, 저출산, 저성장, 양극화다.

참여정부의 실패는 여기서 기인한다. 그들은 원인과 결과도 구분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미 마이너해진 지역대결을 정치의 최우선 담론으로 제시하는 우를 저질렀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조차 그들이 금과옥조로 내세우던 '지역주의 해소 최우선 과제론'을 포기했음에도 그랬다.
 
1밖에 없던 박정희가 무너져 사라졌듯 2도 사라져야 마땅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마법의 주문을 내세우는 이유는 그 것외에 내놓을게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