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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의 신화는 수메르의 신화다. 아니 주류 역사학자는 뭐든지 세계최초는 수메르라고 한다. 세계최초의 학교, 최초의 정부, 최초의 시장, 최초의 법률, 최초의 도량형, 최초의 체계화된 종교, 최초의 문자 등등등........
그런데 수메르 신화를 자세히 보면 세계최초의 신화라는 것이 후대의 신화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러니까 촌스럽다는 말이 아니라 특이하다는 말이다.
일전에 다른 포스팅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수메르신화에서 인간이 창조된 것은 노동력이 필요해서다. 결코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창조 자체의 즐거움 때문이 아니다. 수메르의 판테온을 보면 12명의 주신 이외에 지구에 하강해서 열심히 노동을 하는 작은 신들이 있다. 이들을 아눈나키와 이기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 작은 신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폭동을 일으킨다.
111 그때에
112 그때에는
113 그때 그 옛날에
114 그때 그 옛날에는
115 신들만이 땅에 살고 있었다
116 신들이 인간 대신 노동을 하고 있었다
117 신들이 인간 대신 일곱 배나 과한 노동을 하고 있었다
118 작은 신들(아눈나키, 이기기)의 고통이었다
.........
126 40의 세월 동안 혹독한 노동
127 끝없는 고역
128 터지는 불평불만
129 하급 신들은 결국 폭동을 일으켰다
130 다들 잠든 오밤중
131 포위된 에쿠르(땅의 최고신 엔릴의 거주지)
132 에쿠르의 문지기 칼칼이
133 엔릴의 시종 누스쿠를 깨웠고
134 누스쿠는 엔릴을 깨웠다
135 ‘주인님, 당신의 집이 포위되었습니다!’
136 백지장 같은 엔릴의 얼굴
137 하늘에 ‘아누’가 내려오고
138 압주의 왕 엔키(에아)가 동석하니
139 신들의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 김산해 저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사자를 고양이처럼 다루고 있는 길가메쉬의 상. 키가 4미터가 넘었다고 적혀있다>
이건 거의 파업과 폭동, 그리고 그로인한 사업주의 비상회의 분위기다. 도대체 무슨 이런 신화가 다 있단 말인지.
비상대책회에서 주신 엔릴은 한탄을 하고 심지어 땅에서 철수를 주장한다. 아누와 함께 다시 하늘로 가겠다는 것이다. 그때 인간의 창조주 엔키는 묘안을 내놓는다.
154 ‘산파의 여신이 사람을 만들게 합시다!’
155 ‘사람이 신들의 노동을 대신하게 합시다!’
- 김산해, 위의 책
신들은 모신 닌투를 불렀고 닌투는 엔키와 함께 일해야만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엔키는 폭동의 주모자 한명을 죽이고 그 피를 찰흙과 섞어 인간을 만든다. 그런데 인간을 만드는 과정도 괴이하기 짝이 없다.
아트라하시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점토판에 가장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다음을 한번 보라.
173 신들의 산파 마미에게는 최고의 날이었다
174 드디어 자유!
175 ‘운명을 정하는 집’에서
176 ‘비트 쉼터’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177 엔키와 닌투가 그곳에 들어가서
178 출산의 여신 열넷도 그곳에 집결해서
179 엔키의 감독하에 한 신의 ‘정수’를 확보해서
180 그것과 흙이 섞여져서
181 그것 열네 뭉치가 열네 여신의 자궁으로 투입되니
182 닌투가 ‘여는 손’을 이용하여
183 운명이 점지된 열 번째 달에 그들의 자궁을 열어
184 ‘사람’이 나왔다
185 ‘쉬-임-티’의 집에서
186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만들어내는 ’ 집에서
187 일어난 일이었다
188 최고의 과학자 엔키가 해낸 일이었다
189 슬기로운 창조주가 해낸 일이었다
- 김산해, 같은 책
이건 전지전능한 신의 기적적인 창조가 아니라 무슨 실험의 기록일지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엔키와 닌마흐>라는 점토판을 보면 이 과정에서 닌투가 순순히 엔키에게 총괄감독을 맡긴 것이 아니라 엔키와 함께 경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닌투가 창조한 인간들은 모두 조산하여 불구로 태어난다. 엔키는 그들이 살아 갈 수 있도록 ‘운명’을 정해주었고 닌마흐, 혹은 닌투는 엔키에게 굴복한다. 이 이야기는 무슨 실험팀의 경쟁같은 느낌마져 주고 있다.
수메르의 점토판이 이 지경이다 보니 시친(Zecharia Sitchin)같은 이는 수메르의 신들은 모두 외계인이고 이들이 생체실험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게 된다.
게다가 이놈의 수메르 신들은 일관성도 없고 인간에 대한 사랑도 없으며 도무지 신같아 보지이지도 않는다. 엔키와 라이벌인 엔릴은 그 때문인지 틈만 나면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난리를 친다. 몇차례나 인류멸망을 시도했고 거의 성공한 것이 홍수 대 작전이었다. 그런데 그만 엔키가 배신을 하고 우트나피쉬팀, 혹은 지우수드라, 혹은 아트라하시스에게 엔릴의 작전을 알려주는 바람에 실패로 돌아간다. 재미있는 것은 이놈의 신들이 회의를 통해 인간을 멸망시키기로 해놓고 막상 홍수의 규모가 너무 커지고 학살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자 엔릴을 제외한 신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라이벌 엔키의 작품에게 분노하는 엔릴만이 감정의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엔릴마져 우트나피쉬팀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하고 신들의 회의를 통해 영생을 선물한다.
무슨 이런 희한한 신들이 다 있담. 변덕스럽기가 제우스 저리가라고 잔인하기로는 구약의 야훼 찜쪄 먹을 신들이다. 하기야 이 신들이 원형이 되어 야훼나 그리스의 신들이 탄생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복사판이 어찌 원조를 능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이런 신화를 상상했던 것일까?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고대의 인간은 현재의 인간과 정신적인 구조 뿐 아니라 신체구조도 달랐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의 감성과 사고가 우리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이런 신화를 만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수메르 학교 벽에 남아 있는 낙서를 보면 무척 공감이 가는데.........
너는 왜 지각을 했니? 교장은 나를 때렸다.
너는 왜 문제를 못 푸니? 선생님은 나를 때렸다.
너는 왜 수업시간에 밖에 나갔지? 수위는 나를 때렸다.
- 이오덕선생님의 책에서 읽은 구절을 기억으로 재구성
이건 거의 우리의 학창 생활 아닌가. 이런 걸 보면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누구인가가가 실존적인 문제라면 우리가 누구인가는 정말 고고학적인 문제같다.
1 그때에
2 그 옛날에
3 그 옛날 긴 시간 전에
4 살던 인간들은
5 살아 있던 인간들은
6 살아서 생활하던 수메르의 인간들은
7 누구였을까?
8 그들은 누구였을까?
9 그들로부터 태어난 우리들은
10 그들로부터 태어나 현재에 이른 우리들은
11 누구인 것일까?
'수메르'는 '소머리'란 말에서 나왔다고 하더군요. 소머리를 상징으로 한 부족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묵자나 수메르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증거가 많다고 하더군요. 한글과 유사한 단어도 많고요. 그리고 그 묵자의 사상이 예수의 사상과 너무 흡사해 예수가 묵자와 수메르의 영향을 받은 걸로 보더군요. 저는 근거가 없으면 잘 안 믿는 입장이지만 역사적 자료를 언급하면서 말씀하는 걸 보니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 같습니다.
데이비드 롤의 주장은 수메르 족이 바로 히브리족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메르족의 일파가 히브리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모세의 일화도 수메르족의 한 일파와 조우하여 모세가 에아(엔키)의 신앙을 바탕으로 재 정립한 것이 모세5경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상당히 그럴 듯합니다. 수메르 만신전의 여러 신의 성격이 합하면 인간을 사랑하면서(에아) 죽이려고 하고(엔릴) 인간과 관계를 가져서 다양한 변이가 태어나는 것 등등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됩니다. 실제로 수메르 신들의 성격이 저랬으니까요.
아무튼 흥미로운 주장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잡신들(실례) 제외하고 주신은 셋이 나오는데 아누, 엔릴, 에아(엔키보다 이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죠)입니다. 아누는 하늘의 신, 엔릴은 땅의 신, 에아는 대기 및 물의 신으로 대충 역할분담이 되는데 그다지 업무 영역이 엄밀하진 않아요. 그런데... 이 아누라는 놈은 명색이 제일 높은 신이면서 하는 일은 진짜 없습니다. 비중이 정말로 공기... (어, 이건 에아인데) 그냥 폼만 잡고 앉아 있는 게 전부예요. 엘리아데에 따르면 "맡은 일을 마치고 나서 갑자기 게을러지는 신"은 어느 신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라지만 아누는 천지창조에 관여한 것도 아니니 이것도 해당사항이 없는 듯한데... 그래서 실제로 일하는 건 주로 엔릴과 에아 두 신인데 엔릴은 주로 무식하게 힘으로 때우는 일, 에아는 머리를 쓰는 일을 주로 맡죠. 저는 사실 수메르의 신들 가운데 에아를 제일 좋아합니다. 정말로 머리가 좋은데다가 성격도 착하거든요. 엔릴은 그냥 깡패죠. 그러니까 전쟁같은 게 터지면 에아는 겁을 내고 엔릴이 활약을 합니다만... 그런데 바빌론으로 넘어오면서 이야기가 좀 이상해집니다. 티아마트라는 강적이 나타나는데 이놈(아니, 여성이니까 이X)은 정말 너무너무 강해서 지금까지의 신들로는 아예 상대가 안되는 겁니다. 아누도 에아도 다 겁을 먹고 텨.텨.텨 하려는 찰라 마르두크라는 젊은 신이 나타나서 한가지 조건을 내걸고 티아마트와 싸웁니다. 그건 그곳에 존재하던 신들의 모든 통치권을 자신에게 이양하라는 겁니다. (자식이 욕심은 많아서) 결국 싸워 이기고 전능한 신이 되죠. 이게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때 엔릴은 어디 있느냐?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두크가 엔릴의 다른 이름인 걸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마르두크에 대한 설명을 보면 에아의 아들이라는 말이 분명히 나옵니다. 엔릴은 그의 형제인데? 어차피 신화라는 게 한사람이 쓴 게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멋대로 상상한 걸 이리저리 갖다붙이는 거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이 많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ㅎㅎ 연재글은 아니지만 종교, 신화 관련 글은 계속 올릴 까 생각 중에 있습니다.
이부분은 신들의 세대교체에 의한 것이라고 보더군요. 마르두크는 바빌론시대에 엔릴을 이은 주신이 됩니다. 이를 바빌론의 정치경제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주류 신화학자들의 입장입니다. 물론 티아마트를 무찌른 것이 가장 큰 공로로 인정 받았죠.
제카리아 시친은 아주 이상한 주장을 하는데, 에아가 더 장자이지만 엔릴이 주신이 된 것은 엔릴이 자신의 이복동생 닌릴과 관계(강간이었죠)를 했기 때문이랍니다. 이들 신족은 이런 위계질서가 있다고 가정하네요. 닌릴이 결국 엔릴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엔릴의 위계가 더 올라갔다는 거죠. 물론 엔릴은 어머니와도 관계를 가졌다는 판본도 있습니다. 이들 족보는 너무 복잡해요. 아누는 손녀하고도 관계를 가지거든요.
마르두크는 사르파니투와 결혼하는데 사르파니투는 금성입니다. 사실 금성은 이난나, 혹은 이슈타르인데 이 여신은 엔릴의 딸이기도 합니다. 즉, 최고신의 사위이자 최장자의 아들로서 마르두크가 만신전의 일자로 올랐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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