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묵자 강연회에 다녀왔었다. 묵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묵자에 가장 정통한 분으로부터 직접 강연을 들으니 당시 시대사상에 훨씬 앞섰던 혁명적이고 민중적인 묵가 사상이 새삼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후배가 늘 하던 소리를 하는 거다. “형, 나는 저런 자리에 가면 거북해, 손에 흙 하나 안 묻히고 입으로만 먹고 사는 교수나 목사 나부랭이들이 많아서....” 이 후배는 전에도 유사한 자리에서 사고를 친 적이 있었다. 교수, 변호사, 스님, 목사, 신부 등 인사들이 모여 묵자학회발족식을 했는데, 뒤풀이 때 이 후배가 술에 취해 자기소개 순서에 사람들 앞에서 거나하게 그들을 꾸짖은 것이다.


“니덜 교수, 변호사, 목사, 중놈들은 이 사회의 기생계급들이여. 땀 흘리며 노동해서 먹고 살아야지, 구라치며 입으로만 먹고 살잖아.” 이 사고가 물의를 일으키긴 했지만 워낙 점잖은(?) 분들이 모였던지라 큰 탈 없이, 그 후배가 대충 술주정뱅이나 돌아이 정도로 간주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 후배는 학생운동하다 퇴학당해 노동운동 등 세상의 바닥 일을 다 해보다, 이제는 자연에 귀의해 자연농법으로 자급농을 하며 사는데, 요즘은 애들 학비 때문에 할 수 없이 날일도 하고 있다.


나는 그 후배 말에 한마디를 보탰다. “손에 흙 안 묻히고 살면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데, 손에 흙 묻히며 사는 사람들을 얕잡아 보는 파렴치함이 더 문제지. “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생계급과 희생계급을 동시에 양산한다. 우리나라의 일인당 소득이 2만 불정도 된다는데, 2만 불이면 모두 다 풍족하게 살아야한다. 그러나 실상은 소득이 2백만 불이 넘는 사람과 2백 불도 안 되는 사람들이 상존하는 구조다. 2백만 불이면 2백 불의 일만 배다. 정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 보다 만 배나 능력 있고 만 배나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일까? 그럴 수가 없으니 결국 자본주의는 착취나 카지노 경제제도인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자기가 한 일보다 더 많은 몫을 가져가면 기생계급이고 덜 가져가면 희생계급이다. 대체로 기생계급들은 3차산업 종사자들이고 희생계급은 1,2차 산업 종사자들이다. 이 세상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기생계급 없이 존재할 수 있어도 의식주를 담당하는 희생 계급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희생계급인 농민과 노동자들은 기생계급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기생계급들은 희생계급인 기층민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단지 제도의 불합리 때문에 혜택을 누리는 기생계급에 속한다면 최소한 부끄러움을 느껴야한다. 부끄러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안한 감정정도는 느껴야하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지가 잘난 양 교만하고 뻔뻔하게 살아간다. 

                                      

효율성이란 이유로 분업을 극대화하여 구성원들은 부품 역할을 하는 경제제도가 자본주의다. 부품이 잘 맞아 일사분란하게 잘 돌아가면 효율적이지만 하나만 어긋나도 고장 나고 붕괴될 수 있는 게 지금의 경제제도다. 개인의 소외, 인간성 상실, 분배의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인 아나키즘은 각자 자급자족을 목표로 살며 부족한 점만 서로 보완하는 체제다. 아나키즘은 효율 대신 자생과 연대로 지탱한다. 착취나 불평등, 갈등과 같은 부정적 요소가 적고, 구조가 간단해 부품이 빠져도 멈추지 않고, 백업이 원활해 붕괴의 가능성이 훨씬 적은 제도다. 아나키즘은 인류가 인류사의 99% 이상을 살아온, 인류가 다시 돌아가야 할 지속가능한 유일한 사회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