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을 쓰는 건 꽤 오랜만이네요. 아크로에는 다양함이 부족하다는 몇몇 분들의 성토에 저도 끼어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나는 꼼수다를 아이튠즈로 매주 듣고, 이번 민주당 오픈프라이머리에 스마트 폰으로 신청한 여러분들이 두려워하는 그 무지한 대중입니다.;^) 
 
나는 꼼수다가 좋은 이유는 별거 없습니다. 재미있잖아요. 며칠전에는 다이소 같이 자질구레한 상품들을 파는 가게에 꼼꼼한 그 분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더라구요. 그 주에 가장 인기있는 가수의 노래가 나와야 자연스러운데, 나는 꼼수다가 나오고 있는 가게는 꽤 이질적이었습니다. 

현상으로의 나는 꼼수다는 조금 다르게 좋아합니다. 

저도 비판적이었습니다. 정봉주와 미래권력들을 필두로 한 나는 꼼수다의 팬덤은 전성기의 아고리언들과 너무 닮았거든요. 미네르바가 흐릿한 사실을 흘리면, 아고리언들은 열광했습니다. 누구들과 비슷했죠. 모든 본질은 밀실정치에 의해 보이지 않고, 진실의 눈은 오직 미네르바를 통해 볼 수 있다 정도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그 때는 그랬어요. 

미네르바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밝혀졌을 때 사그라든 것 처럼, 어쩌면 나는 꼼수다도 사그라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제가 예~전에 여기에 비슷한 글을 올린적 있는데, 그 당시가 아마 미네르바가 반백수로 밝혀졌을 즈음일겁니다. 저는 미네르바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 속 대중이 성장했다고 판단했어요. 아고라는 시들었고, 미네르바의 아류들은 소수의 지지를 받거나, 사라졌으니까요. 

근데 제가 완벽히 틀렸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요. 성장이라고 하면 제가 뭐라도 되는 것 같고,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나는 꼼수다 덕분에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되었어요. 

"문화, 사회, 정치 컨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유목민적 기질"을 가졌습니다. 엄청나게 소비하는 것에 비해 생산력은 없기 때문에 꾸준한 공급이 없으면, 수요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분산되어 실체가 사라집니다. 전체는 현명하지 않지만, 흐름만 만들어진다면 순식간에 현명해질 수도 있어요.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나는 꼼수다의 성공 메커니즘이 우연이든 아니든 우리가 원하는 다수의 결집 방법을 먼저 찾아냈다는 것에 있습니다.



네트워크를 접목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건축설계를 배우는 학생인데, 현재 건축이론계는 스마트폰과 같은 네트웍 시스템이 기존의 공공 공간을 파괴하고 있는 것에 아무런 대응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데이트 코스일 뿐인 광장에서 여전히 포룸이나 아고라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에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들이 나왔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해답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어요. 

정치도 사실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트위터가 소통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건 자위행위일 뿐이었습니다. 대중과 섹스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나는 꼼수다가 밝혀낸 메커니즘의 덕입니다.  

제가 민주통합당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하는 이유는 여기서 나옵니다. 지금 오픈프라이머리를 스마트폰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은 멸치떼와 같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라는 그물망은 타이밍 좋게 내려온 것 같습니다. 최고위원 선출에 누가 되든 통합당이 엄청나게 변화할 거라고 속단할 수 있나요? 후보검증이요? 좀 생략하면 어떻습니까? 아니, 이 말은 고쳐야겠네요. 

이미 게임은 시작됐습니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메커니즘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민주통합당은 멸치떼를 부르는 게임을 배포했어요. 토마스 프리드먼은 뜨겁고 평평하고 분비는 세계에서 그린정책이 세계의 추세이기 때문에 전세계가 그린을 사업으로 채택하면, 우리도 따라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스카이넷에서도 비슷한 글이 올라왔고, 헬로월드님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꼼수다가 거짓을 말하고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비대위 이준석위원이 소모품인것처럼 나는 꼼수다도 소모품으로 봐야합니다. 이미 대중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 마당에 그걸 부정하고, 무시하면 민주통합당 비대위 꾸리게됩니다. 이미 상황은 전개되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오픈프라이머리는 탁월했어요. 

당은 차이를 가진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현재의 오픈프라이머리가 당의 정체성을 파괴한다는 가정이 너무 어리석다고 말하는 겁니다. 어떤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선점과 속도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네요. 

 지금 명동에 사람 꽉 찼는데 뭐하러 산에 올라가야 합니까? 명동에서 분신하면 누가 살려줄지 또 모르죠. 아니면 의미있는 죽음이 될지도 모르구요.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분신하면 사람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