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것을 규제하고 통제하면 뭐든지 잘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고루한 어른들의 생각은 안그래도 답답한 아이들의 현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 지금 해야할 일은 법으로 일단 막고 보자가 아니라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 상황이 이런데 아이들에게그나마 숨쉴 수 있는 구멍이 되는 게임을 일단 막고 보자는식으로 법안을 통과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


아이들이 자유분방유쾌하게 숨쉴 수 있는 구멍이 거의 없는 상황을 우리 모두 다 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빨리 개선할 방도가 없다는 것, 즉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하기도 어렵고 잘 해서 좋은 답이 나와도 그 답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잘 안다. 한국사회가 학벌사회가 아닌 사회가 되는 것은 한국사회가 사회주의 사회가 되는 것 다음으로 어렵다. 그래서 규제하고 통제하면 뭐든지 잘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안하는 이들도 규제와 통제라는 강제의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당장 근본적인, 즉 당사자들의 자율에 맡겨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의 해결책이 없다면 일말의 효과라도 예상되는 강제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당장의 쟁점이 되어야 할 것은 강구도 실행도 어려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당장 강구되고 실행될 수 있는 일말이나마 실효성 있으면서도 강제성이 덜한 강제 방법이 무엇이냐 것, 게임셧다운제가 그런 강제 방법에 속하느냐 여부이다. 

과연 게임이 '그나마 숨쉴 수 있는 구멍'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게임이 중독적이지 않고, 다른 미디어들에서 이미 미성년불가로 되어 있는 수준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 때만 예스이다. 물론 중독은 쌍방과실의 결과(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의 결과)이고 정도의 문제이다. 동일한 게임을 즐기더라도 중독되는 사람이 있고 안되는 사람이 있으며 중독이라고 다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의 중독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아이들을 자율능력이 미성숙한, 즉 중독성 있는 것들에 대한 자율적인 저항력이 부족한 인간으로 정의하는 사회에 살고 있고 게임업자들이 중독성이 강한 게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사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미디어 콘텐츠가 '일반적으로' 그것을 즐기는 이들의 인성 자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는 없다는 주장이 있다.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증거 모두 과학적으로 획득될 수없는 종류의 증거이다. 사람들이 어떤 인성을 가지게 되는지는 그 사람들의 삶의 조건'들' 모두가 규정하는 것이지 어느 한 가지 조건이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한가지 조건의 규정력을 다른 모든 조건들의 규정력들이나 그 규정력들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분리시켜 그것만 별도로 과학적으로 확인할 방도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폭력적인 것과 선정적인 것은, 특히 그것을 즐기는 이들이 아직 지적 및 정서적으로 미숙하고 한창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이라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좋은 효과보다는 폭력에 무감각해지게 하고 충동에 약하게 하는 나쁜 효과를 더 끼치지 않을까?'라는 전과학적인 상식적 추정뿐이다. 그게 왜 상식인가? 오히려 '폭력적인 것과 선정적인 것은, 수위가 너무 높지만 않다면, 미성년자들에게라도 폭력에 무감각해지게하고 충동에 약하게 하는 나쁜 효과보다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좋은 효과를 더 끼친다'는 것이 더 개연성 있는 상식적 추정이다라는 입장에 대해 나는 아무런 할 말도 없다. 아마 내가 그 입장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도 액세스가 허용되어 마땅한 폭력성과 선정성의 적절한 수위에 대해 합의하는 문제가 밀려올 것이다. 물론 그 수위도 과학적으로 확인될 수 없다.        
 
미성년자들의 게임중독 현상이 사회적 현상이라 할만큼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며 따라서 국가가 나서는 그 어떤 강제방법으로 완화를 노려야하는 사회적 문제거리 역시 아니다라는 의견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의견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 답할 자신이 없다. 다만 내 자신이 여러 종류의 게임을 간혹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함에도 밤을 새워가며 15여년 이상 해본 경험으로, 그리고 그 게임들을 더 잘,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여러 관련 사이트들이나 게시판을 돌아다녀보고 수많은 글을 읽어본 경험으로 말하건대, 성인 게이머들 중에도 게임 중독에 빠진 이들이 적잖게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내가 주로 한 게임들이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RPG 게임들이 아님에도 그렇다). 그렇다면 미성년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더 많을 거라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얼마나 일반적 경우를 대표하는 사례들이었던지 간에 게임셧다운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 미성년자들의 심각한 게임 중독 사례들의, 언론을 탈 정도로의, 확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제 오늘, 게임 셧다운제가 실효성 있는걸로 확인되었다는 기사가 떴고 (http://pann.news.nate.com/info/252921012) 예상대로 맹렬한 비아냥들이 자유게시판들을 채우고 있다. 나는 비아냥대는 입장이 아니라 그 기사의 논거가 사실이고 더 그럴듯한 논거들이 많아지고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기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이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그 보다는 강제성이 덜하고 더 실효성이 있는 다른 방법이 있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고 끝내 그런 대안이 없어 기존의 게임 셧다운제를 밀고 나가더라도 그 바탕에, 혹은 그와 더불어 아이들에게 숨쉴 구멍이 되어줄 수 있는 게임에 대한, 아이들에게도 액세스가 허용되어 마땅한 수위의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아이들의 게임중독 현상의 문제성에 대한 더 그럴듯한, 더 공론적인, 과학적인 만큼이나 인문학적인 합의가 있기를 바라는 입장에 있다. 그런 합의 없이 게임 셧다운제가 너무 빨리 제안되고 실행된 것은 분명해 보이니 말이다. 다만, 이런 합의 과정에 게임업체는 아무런 발언권도 있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