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곳에만 머물러 있으면 좋겠습니다.


Insurgent Anthropolpgies : A Crisis of Neo-liberalism or a Crisis of Captialism? (By Christopher Carrico)

반란의 인간학들: 신자유주의의 위기인가 자본주의의 위기인가? (크리스토퍼 카리코)


* 출처: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As It Ought to Be)>, 20111211





  all the forces which promote full employment can only remain operative if they do not themselves undermine the rate of profit, or if they are not accompanied by other trends which do so. Likewise, all the forces which increase profits cannot achieve accelerated long-term growth if they do not at the same time lead to an expansion of the market for the ‘final consumers’, i.e. if they do not lead towards full employment.


Ernest Mandel, “Keynes and Marx” in Dictionary of Marxist Thought, edited by Tom Bottomore


...완전고용을 촉진하는 모든 동력들은 그것들 자신이 이윤율을 잠식하지 않을 때만, 또는 이윤율을 잠식하는 다른 추세들이 그것들에 동반되지 않을 때만 계속 작동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윤을 증대시키는 모든 동력들은 그것들이 동시에 최종 소비자들을 위한 시장의 확장에 이르지 않는다면, 즉 그것들이 완전고용을 향해 가지 않는다면 가속화된 장기 성장을 이룰 수 없다.


- 에르네스트 만델, “케인즈와 마르크스” in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전>, 톰 보토모어 편


As I noted in my last post on As It Ought to Be:


The U.S. experienced increasing income and wealth equality from the time of the Great Depression until the late 1960s. (Then) (t)he U.S. capitalist class began, in the 1970s and even more markedly after the election of Ronald Reagan in 1980, to engage in conscious class warfare for the restoration of capitalist class power.


The economic crisis that began in 2007 and has continued to the present is the end result of these three decades of class warfare


내가 <당연히 그래야 하는 대로>에 지난 번에 써 올린 글에서 지적한 대로:


미국은 대공황 시기부터 1960년대 말까지 소득과 부의 평등의 증대를 경험했다. 그 후 미국 자본가 계급은 1970년대에 그리고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 후에는 더욱 더 뚜렷하게 자본주의적 계급권력의 복구를 위한 의식적 계급전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007년에 시작해서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는 이 30년의 계급전쟁의 최종결과이다...


The economic order which has dominated for the last 30 years has been one that I have been describing as “neo-liberal.” I argued before that at the level of policy it has been characterized by a state that is focused on:


instituting strict welfare reform policies at home, disciplining the labor market through economic policies which exponentially increased the wealth of Wall Street, while keeping Main Street relatively secure by offsetting stagnating or declining hourly wages with an increase in working hours, and an expansion of the availability of consumer credit.


“Cast Away Illusions, Part I”


지난 30년을 지배했던 경제질서는 내가 신자유주의적이라 기술해왔던 것이다. 나는 전에 정책 수준에서 그것이


엄혹한 국내 복지개혁 정책들을 제도화하고 월 스트리트의 부를 지수적으로 증대시키는 경제정책들을 통해 노동시장을 통제하는 한편, 정체해 있거나 감소하고 있는 시간당 임금을 노동시간 증대, 그리고 소비자 신용대출 가용도의 확장에 의해 상쇄시켜 메인 스트리트를 상대적으로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기


<환영들을 내버리기>, 1


에 초점을 맞추는 국가에 의해 특징지어짐을 논했었다.


Neo-liberalism asserts that the state ought not to interfere in the economic realm, but this rule is unevenly and unequally applied. Under neo-liberalism, states have used their coercive powers not to bring the excesses of capitalism into check, but rather to act on behalf of capital to discipline labor and agents of dissent.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경제영역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 규칙은 불균등하고 불평등하게 적용된다. 신자유주의 아래서, 국가는 자본주의의 과도함을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을 대표해 행동해 노동[자들]과 반대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해왔다.


The question that this “neo-liberal” characterization of the present crisis begs, is “Is it possible for the current crisis to be resolved by a return to more ‘moderate’ capitalist policies such as those of Keynesianism or of the welfare state policies pursued by so many advanced industrial countries from WWII until the 1970s?”


현재의 위기의 이 신자유주의적특징화가 답하지 않고 놓아 둔 의문은 현재의 위기가 2차세계대전부터 1970년대까지 아주 많은 수의 선진 산업국들이 시행했던 케인즈주의 정책들이나 복지국가 정책들 같은 더 온건한자본주의 정책들로 복귀하는 것에 의해 해소될 수 있느냐?”이다.


If we believe that current crisis of the economic system is a crisis of neo-liberalism, one possible way to resolve the crisis would seem to be a return to economic policies that would address the problem of under-consumption through jobs stimulus or through the expansion of the social safety net. Taxes could be raised on corporations; government could be directly involved in the business of jobs creation, for instance through investments on building infrastructure; and social welfare benefits could be expanded, rather than contracted as is currently proposed by the Republicans.


우리가 경제체제의 현재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위기라고 믿는다면,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도는 고용 촉진이나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과소소비 문제에 대응하곤 했던 경제정책들로의 복귀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기업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릴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예를 들어 하부구조 건설에 투자하는 것을 통해, 고용 창출 업무에 직접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 급부금을, 현재 공화당원들이 제안하듯이 줄이지 않고, 늘릴 수 있을 것이다.


As far as most American progressives are concerned, such a change would represent a return to the “normal” functioning of American capitalism, modeled on the situation that was true in the U.S. during the post-WWII economic boom. During this time there was strong economic growth, and this growth was accompanied by improving economic conditions for all classes.


대다수 미국 진보주의자들에 관한 한, 그러한 변화는 2차 세계대전 후 경제호황 동안 미국에서 실재했던 상황을 모델로 한, 정상적으로 기능하는미국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나타낼 것이다. 그 시기 동안 경제는 크게 성장했고 이 성장은 모든 계급들의 경제조건이 개선되는 결과를 수반했다.


So why do Republicans so stridently oppose a return to the normalcy of Keynesianism or of the Welfare State? Why does Capital dedicate so much money and effort to making sure that taxes are not increased on the wealthy, that the last remnants of a social safety net are ripped away, that the last vestiges of organized labor (concentrated in public sector unions) are destroyed? Is it simply because they are greedy? Is it simply because they are selfish, or mean-spirited? I would suggest that the answer is not that simple. I would suggest that Capital, cannot, as Capital, concede to demands for a return to a social welfare state.


[그러나] 그렇다면 왜 공화당원들은 그토록 귀에 거슬릴 정도로 케인즈주의나 복지국가라는 정상상태로의 복귀에 반대하는가? 왜 자본은 부자 증세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데, 사회 안전망의 마지막 한 꺼풀까지 벗겨 내는데, (공공부문 노조들에 집중되어 있는) 조직화된 노동의 마지막 흔적마저 파괴하는데 그토록 많은 자금과 큰 노력을 쏟아 붓는가?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탐욕스럽기 때문인가?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이기적이거나 인색하기 때문인가? 나는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제시할 것이다. 나는 자본은, 바로 자본이기 때문에, 사회복지 국가로의 복귀 요구를 용인할 수 없음을 제시할 것이다.


During the course of writing Capital, Marx believed that he had discovered the most important law of capitalist political economy: 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The decline in profits is a result of the long term trend toward ever more capital-intensive forms of investment, what Marx and Engels had famously referred to in the Communist Manifesto as the bourgeoisie’s drive to constantly “revolutionize the means of production.”


<자본론>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그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법칙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이윤율 저하 경향. 이윤 저하는 점점 더 자본 집약적인 투자 형태들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장기적 추세 -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유명하게 생산수단을항구적으로 혁명화하려는 부르주아지의 충동이라고 언급한 것 - 의 한 결과이다.


Anwar Shaikh writes of 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 “Though various factors can temporarily counteract this trend, they operate within strict limits, so that the secular fall in the rate of profit emerges as the dominant tendency.” The falling rate of profit is ultimately responsible for periodic crises in the capitalist system that will continue to occur until the capitalist system is itself replaced. Shaikh further elaborates that:


they (crises) cannot be simply ‘managed’ away by state intervention no matter how progressive its intent. Politics cannot and will not command the system unless it is willing to recognize that the capitalist solution to a crisis requires an attack on the working class, and that the socialist solution in turn requires an attack on the system itself.


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해 안와르 샤이크는 비록 다양한 요인들이 일시적으로 이 추세에 반작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요인들은 엄밀한 한계들 내에서 작동하며, 따라서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이 지배적 경향으로서 출현한다고 쓴다. 하락하는 이윤율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대체될 때까지 계속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기적으로 일어날 위기들의 궁극적 원인이다. 샤이크는 이어 다음과 같이 상술한다:


그것들 (위기들)은 그 의도가 아무리 진보적이든 단순히 국가개입에 의해 관리’[되어 제거]될 수 없다. 정치는, 위기의 자본주의적 해소가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요구한다는 것을, 그리고 사회주의적 해결은 역으로 체제 자체에 대한 공격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식하려고 하지 않는 한, 체제에게 명령할 수 없고 명령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When the high growth rates of the period 1947 until 1965 (an average of 4%) began to slow in the late 1960s and in the 1970s (to an average of under 3%), Capital set about the class warfare that I have been referring to as neo-liberalism as a solution to the long term decline in the average rate of profits. When the assault on labor, wages, and the social safety net was significantly under way, this assault acted as a countervailing tendency to the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decline. As a result especially of the “Reagan Revolution”, growth rates picked up again from 1982 until 1997 (3.6%), but have been very slow since the late 1990s (2.2%).


1947년에서 1965년까지의 시기의 고성장률 (평균 4%)1960년대 말에 (평균 3%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본은 평균이윤율의 장기 하락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내가 신자유주의라고 칭해온 계급전쟁에 착수했다. 노동, 임금, 사회안전망에 대한 강도 높은 공격이 진행되자, 이 공격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경향으로 작용했다. 특히, “레이건 혁명의 결과, 1982년에서 1997년 사이 성장률은 다시 (3.6%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성장률은 1990년대 말 이래 다시 크게 떨어졌다(2.2%).


The only demands that “the 99%” could articulate under existing socio-economic power relations, are a return to the conditions that Capital sought to remove through the Capital Strike of the 1970s and through the subsequent neo-liberal assault on the working class. Such a return would not solve the current crisis of the capitalist system. It may bring temporary relief, but at the cost of exacerbating the underlying causes of the crisis in the first place.


“99%”가 현존하는 사회경제적 권력관계들 아래서 표현할 수 있을 유일한 요구들은 자본이 1970년대의 자본파업과 그 뒤를 이은, 노동계급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통해 제거하고자 했던 조건들에로의 복귀이다. 그러한 복귀는 자본주의 체제의 현재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경감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위기의 애초의 근저 원인들을 강화시키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There is one solution that history has shown to temporarily solve the crisis of over-accumulation brought on by the falling rate of profit: a major world war. While providing temporary economic stimulus, the New Deal did not solve the underlying crisis that caused the Great Depression. It was the Second World War, which was responsible for the mass destruction of a major portion of the productive capacity of the world’s major industrial nations that ultimately created renewed conditions for capital accumulation after the war.


역사적 전례를 두고 볼 때, 이윤율 하락에 의해 초래된 과잉축적 위기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할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세계대전. 비록 일시적인 경제적 자극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뉴딜은 대공황을 야기했던 근저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해결해준 것은 이차 세계대전이었다. 그것은 세계의 주요 산업국들의 생산능력의 상당부분이 대량으로 파괴되는 결과를 야기했는데,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 전후의 자본축적을 위한 갱신된 조건들이 창출되었다.


Hoping that there is better way out of a Global Depression, in a 2009 piece in the Brooklyn Rail called “What Is to Be Done?” Paul Mattick, Jr. had the following to suggest as a possible alternative:


Will people instead turn their attention to bettering their own conditions of life in the concrete, immediate ways an unraveling economy will require? Will newly homeless millions look at newly foreclosed, empty houses, unsaleable consumer goods, and stockpiled government foodstuffs and see a way to sustain life? No doubt, as in the past, Americans will demand that industry or government provide them with jobs, but as such demands come up against economic limits, perhaps it will also occur to people that the factories, offices, farms, and other workplaces will still exist, even if they cannot be run profitably, and can be set into motion to produce goods that people need. Even if there are not enough jobspaid employment, working for business or the statethere is work aplenty to be done if people organiz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for themselves, outside the constraints of the business economy.


전지구적 공황으로부터의 더 나은 탈출구가 있기를 희망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한 2009<브루클린 레일> 기고문에서 폴 마틱 주니어는 다음을 가능한 대안으로 제안한 바 있다:


대신 사람들은 무너지고 있는 경제가 필요로 할, 구체적인, 직접적 방도들로 그들 자신의 생활조건들을 개선하는 데 주목하게 되지 않을까? 홈리스가 된 수 백만의 사람들은 새로 차압된 빈 주택들, 비매용 소비재들, 비축되어 있는 정부 식료품들을 쳐다보고 그것들을 생활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방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틀림없이,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미국인들은 산업이나 정부가 그들에게 일자리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한계와 충돌하기 때문에, 아마 또한, [탈자본주의적 대안이, ] 수익을 낼 수 없을 때조차도 공장들, 사무실들, 기타 작업장들이 존속할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들을 생산하도록 운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떠오를 것이다. 충분한 일자리들 - [자본주의적] 사업이나 국가를 위한 임금직 - 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제의 제한 외부에서 그들 스스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기만 하면 해야 일은 충분히 많다.


Or, as Ernest Mandel puts it in his entry on “Keynes and Marx” in the Dictionary of Marxist Thought, the inherent tendency of capitalism towards crisis implies:


the need to create another economic system, with a different economic logic and relations of production; a transition towards socialism, the expropriation of the bourgeoisie, and the elimination of bourgeois state power.


또는, 에르네스트 만델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전>케인즈와 마르크스항목에서 말한 대로, 위기를 향하는 자본주의의 본래적 경향은 다음을 함축한다:


다른 경제논리와 생산관계들을 지닌 별개의 경제체제를 창출할 필요; 사회주의를 향한 이행, 부르주아적 소유권의 몰수, 그리고 부르주아적 국가권력의 제거.

These are the real tasks ahead. As I have argued here before, the choice before us is between Socialism or Barbarism.

이것들이 앞으로의 현실적 과제들이다. 내가 전에 여기서 논한 바대로,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선택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사이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