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의 공아닌 공이라면 시민들의 정치적 각성을 높이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는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 단계에서는 두가지 움직임이 보이는데, 하나는 SNS등 새로운 미디어를 통한 정치적 활동, 표현의 자유 확대 움직임, 또 하나는 간접민주주의를 대체해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다.

전자의 경우는 바람직하다. 후자의 경우는 상당히 우려스럽다. 자칫 헛힘만 써서 정치적각성을 통한 정치사회의 개혁 동력을 분산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참고 ▶  직접민주주의가 실천되는 부러운 스위스

참고 ▶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페이스북 모임 '공감'  

참고 ▶  스위스 24세 여성이 내 가슴을 때렸습니다



직접민주주의제도를 부러워하고 이를 도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간접민주주의제도를 혹평한다. 심지어는 박정희 시대의 한국적민주주의를  간접민주주의의 탓으로 돌린다. 대의민주주의는 대중을 무시하는 제도라고까지 한다.


그러나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박정희가 주창한 한국적 민주주의는 대중을 무시하는 개념이 들어있는 것은 맞지만, 간접민주주의는 대중을 무시하는 개념이 전제돼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프랑스같은 정치선진국들의 수준 높은 대중들은 직접민주주의를 혐오한다. 그들은 왜 직접주주의를 혐오할까?  간접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차치하고 더 중요한 것은 소수자 약자를 보호하는데 있어서 직접민주주의보다 간접민주주의가 더 뛰어나고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대의민주주의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간접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문제가 될 뿐이지, 간접민주주의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간접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우리 나라의 정치사회적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게 타당한지, 아니면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버리고 직접민주주의로 체제 변경을 하는 것이 맞는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검토부터 해야하는데,

 

외람되지만 내가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 제도로 전환하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그러한 검토를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주장은 정치학이나 헌법학에 대한 기초지식, 공부가 너무 부족해 보인다. 주장은 모순 투성이이다. 솔직히 그분들,  장 자크 로크의 '의사대리'와 아베 쉬에스의 '의사대의'의 차이점을 알고계신지도 궁금하다.

 

그들은 계속 스위스 타령을 한다. 직접민주주의를 제도로 도입한 나라는 스위스 말고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그 스위스도 일부 칸톤만 직접민주주의를 한다.  스위스 일부 칸톤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은 스위스의 특유한 정치사회문화적 환경때문이다. 

 

인구 700만 명의 연방국가 스위스는 26개의 칸톤으로 구성돼 있다 칸톤의 권한은 연방정부보다 더 크다 칸톤은 하나의 국가와 같다.  평균인구 30만명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의 지방(支邦)이기 때문에,  동화적 통합의 수준이 높고 주민들의 동질성이 높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대세는 간접민주주의다.  수백년의 역사를 거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결과 현재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 간접민주주의제도가 대세가 돼왔다.  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간접민주주의를 택했을까 한 번이라도 회의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한다고 힘을 빼는 것보다는 정당민주화, 지방자치제도, 언론자유, 표현의자유, 선거제도 등등 간접민주주의의 기본을 이루는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설령 대의민주주의를 버린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모든 제도, 선거제도, 지자체제도 정당제도 등등 수많은 기본제도를 개헌을 통해서 바꿔야하는데 그 많은 개헌을 어떻게 다 이뤄낼까? 헌법 조문 사소한 것 하나 고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드는지는 다 알 것이다. 그걸 어느 세월에?


일부 친노 통합세력 지지자들이  간접민주주의제도를 혹평하며 간접민주주의를 대체하여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자면서 SNS를 기반으로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아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