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국가"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시장이라고 적었었는데 이것이 오류네요. 푸코는 18세기 중엽에 최초로 개념화되는 "시민 사회"와 스미스의 "국가"가 매우 가깝다고 말합니다. 즉, 전근대적인 국가와 스미스의 "국가" 개념이 다르다고, 그리하여 브루주아 "시민 사회"라는 개념과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죠.

01.jpg

주로 <<광기의 역사>>, 감옥의 역사를 다루는 <<감시와 처벌>>, 지식의 역사를 다루는 <<말과 사물>>, 병원의 역사를 다루는 <<임상의학의 탄생>>으로 잘 알려진 푸코에게 경제학사 혹은 경제사에 대한 책이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겠네요. 푸코가 77년부터 79년까지 경제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던 것은 푸코의 지적 여정에서 필연이었죠. 그는 광기를 탄생시킨 수용소가, 범죄자의 양성소인 감옥이, 그리고 병원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언제나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 여러 요인들과 더불어서 경제학적 요소가 그러한 것들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즉, 유럽에서 18세기 중엽 이전에는 광인, 거지, 부랑자, 범죄자는 모두 한 곳에 수감되었다가, 18세기 중엽부터, 그들은 각각 감호소(asylum), 작업장(working house, 거지, 부랑자를 감금시켜 노동을 시키는 곳), 감옥에 분리되서 감금됩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시장 체제에 어울리는 "경제학적 인간(homo economicus)"이라는 기준에서 미달이 되는 그들을 감옥, 감호소라는 국가장치에 분할하여 감금시켜, 훈육하고, 교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노동할 권리와 소비, 지출할 권리를 지니는 "경제학적 인간"이, 자본주의 생산 체계에 복무시키기 위한 통치할만한(governable) "경제학적 인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자유로운 생산과 소비, 그리고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시장"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경제에 대해 규제하고, 개입(intervention)하고, 명령을 내리기만 하는 전근대적인 국가가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그리하여, 국가는 어떻게 자유방임(laissez-faire)을 통해 규제를 최소화 하면서 시장의 자율(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른 것)에 내맡기는 행정부(government)의 통치술(governmentality)을 발휘하게 되는가? 이러한 푸코의 문제 의식들, 즉 경제학적 인간의 탄생, 행정부의 자유방임 정책,  그리고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문제의식들은 푸코가 18세기 말, 서구에서의 범죄학의 탄생, 병원의 탄생, 감옥의 탄생을 연구해온 그의 지적 여정에서 나온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18세기 중순에 시작되어서, 18세기 말이 되어서야 탄생하게 되는 경제학적 인간은 이중성을 갖습니다. 즉, 자유롭게 노동할 권리를 지니는 "주체(subject)"이면서 동시에 국가의 통치에 복종해야하는 "대상(object)"이라는 이중성을 갖는 것이죠. 이는 그가 <<말과 사물>>에서 근대적 "인간"의 이중성, 즉 근대의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그 대상을 관찰하는 "주체"라는 이중성을 말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근대 정신의학이 "광인"에게 "너는 누구인가?"라고 심문하면서, 스스로가 스스로의 광기를 자백하게 하는, 즉 정신의학 담론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가 되게하는 과정과도 동일합니다. 18세기 중반 까지는 묻지도 않고 감금하던 것과 차이가 있죠.

이러한 경제학적 인간의 탄생, 정치경제학(좁은 의미에서 경제학, 넓은 의미에서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통치할까의 문제)의 탄생, 시장의 탄생이라는 푸코의 문제 설정은, 그의 이전 역사적인 저서들이 그러하듯이, 17세기 부터 이어저오는 중농주의, 중상주의, 정치경제학이라는 경제학의 역사, 혹은 경제의 역사를 살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7세기의 중상주의는 말 그대로 상업을 중시하는 것이겠죠. 그리하여 낮은 임금을 통한 곡물 생산물의 낮은 가격을 통해 수출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부와 힘의 기반을 닦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낮은 임금과 원화롭지 못한 국내에서의 곡물 유통은 이곳 저곳에서의 기근을 발생시키고 끊임 없는 민란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중농주의(physiocracy)가 등장하게 됩니다. 중농주의는 농업만을 중시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괄호 안의 용어, physio+cracy(자연+통치)가 보이듯, "'자연이 지배한다'는 뜻으로, 유명한 구호 '자유방임(laissez faire, laissez passer)은 자연법칙이 경제과정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중상주의에서의 "인위적인" 낮은 가격에 반대해서, 중농주의는 "자연스런(natural)" 가격, "좋은(good)" 가격, 그리하여 종국에는 "정상적인(normal)" 가격을 옹호하는 것이죠. 이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러하듯, 가치에 대한 "자유로운" 가격 결정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앞 글에서 잠깐 썼듯, 이러한 중농주의, 혹은 정치경제학에 와서, 스미스와 리카르도에 와서, 노동은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가능한 것이 되고 이것에 의해 "정당한" 임금을 지급받겠죠. 허나 이는 맑스가 잉여 노동 가치를 밝힘으로써, 부당함을 폭로합니다. 그리하여 맑스의 <<자본>>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인 것이죠.

앞에서 썼듯이, 정치경제학은 경제학의 주체-대상인 경제학적 인간을 어떻게 경제학적으로, 즉 효율적으로 통치할까의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 설정은 18세기 말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영국 공리주의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즉, 벤담의 원형감시 감옥이나, 그의 형법 이론에서의 유용성(utility)도 어떻게 효율적으로 통치할까의 문제를 나타내는 것이죠. 최초의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진 윌리엄 고드윈은 이런 유용성에 반발합니다. 그리하여, 시민 사회에, 국가에, 개인 자신에게 "유용하지 못한" 개인은 "위험한(dangerous)" 개인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18세기 중반 이전에는 범죄는 실제 발생한 행위의 해악을 일컫는데 반해, 이후에는 사회에게, 개인 자신에게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바로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죠. 이와 같이 근대적인 형법학의 탄생에 "경제학적 인간," 즉 (사회에게, 개인 자신에게) 유용한 인간이란 개념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경제학적 인간"이란 하나의 개념은 하나의 "허구적인" 개념일 뿐이라는 겁니다. 즉, 저 개념, 혹은 저 유토피아에 완전히 일치하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문제는 경제학적 인간이란 개념이 어떻게 "허구적으로" 작동하는가?를 살피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푸코가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등등을 통해 실행하는 바이구요. 맑스의 혁명은 이런 경제학적 인간에 대한 거부에 있다고 알뛰세르는 말합니다. 10년 전에 서점에서 제목만 보았던 맑스의 사위가 썼다는 "게으를 권리"에 대한 책이 생각나네요. 저자가 누구인가는 보았으니까 저자 설명까지는 보았겠네요... ^^

푸코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두 권의 책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자유방임주의와 시장의 국제화 그리고 이에 따른 유럽 각국의 보호무역, 그리고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즉,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파국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의 위기를 통해 어떻게 극복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1970년대의 오일 파동을 얘기하기도 하네요. 이러한 부분들을 제가 잘 몰라서 이정도 까지만 적겠습니다. 그리고, 경제학, 경제학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이가 쓴 글임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그 두권의 책은 <<안전, 영토, 인구>>와 <<생정치의 탄생>>이고, 모두 영어 번역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