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유리(造反有理) 라는 말이 있죠. 모든 반대와 저항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정도의 뜻인데, 혁명무죄(革命無罪) 와 더불어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시기 구호로 쓰이면서 유명해진 말입니다. 비록 황당하고 터무니없어 보일지라도 대중들이 기존 질서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에는 다 그럴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으니 위정자들은 왜 그러는지를 살피고 받들라는, 어찌보면 좌파 이념의 정수를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죠.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가 괜히 모택동에게 반해서 마오주의자를 자청한 것이 아니라는,

단지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때로 몰려다니며 주구장창 "조반유리! 혁명무죄!" 를 외치면서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바람에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긴 말이 되버렸지만, 5공 독재를 민주정의당이 했다 해서 민주와 정의가 나쁜 말이 아니듯이, 조반유리도 사실은 매우 억울한 대접을 받고 있는 말이죠.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조반유리의 정신을 일부 담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게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되는 말입니다. 어쩌면 조반유리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는 순간, 그 사람을 절대 좌파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물론 건강한 보수라고 부를 수도 없는거겠죠. 전철연더러 미친놈들이라 욕했다는 이준석 비데위원 너는 그래서 극우 꼴통

사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조반유리와 마주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 혹은 '사소한 불법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본질을 놓치는건 어리석다' 등은 모두 조반유리의 논리입니다. 대중들의 시위나 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에서 사소한 불법들이 저질러지지만, 거의 문제 삼지 않는 것도 조반유리의 논리가 우리 사회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겠구요. 김진숙의 고공농성과 희망버스에도 조반유리는 숨어 있고, 심지어는 나꼼수 팬들이 자신들의 터무니없고 비이성적인 말과 행동을 조악한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도 결국은 조반유리에 기대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조반유리의 논리에 대응하는 우파의 논리는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모든 법과 제도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가 되겠죠. 그것을 요약하면 법치주의 쯤이 될테구요. 이명박이 '때법을 반드시 응징하여 법치주의를 수호하겠다' 고 말하는 것은 정확히 조반유리의 논리를 부정하고 우파의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의 진짜 문제는, 내곡동이나 디도스처럼 비리와 탈법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엄격한 법의 논리만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설정한다는 것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올바른 정치적 입장을 갖고 싶어하는 진보주의자라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도출됩니다. 결국 조반유리의 논리와 법치주의의 논리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한다는 소리인데, 쉬운 것은 아니죠. 조반유리도 긍정하고 법치주의도 긍정하는, 아주 요상해보이고 무언가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논리를 일관성있게 구성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홍위병 깨어있는 시민 들처럼 막무가내의 파괴적 맹동주의로 조반유리를 외치는 것에도 반대하고, 누구처럼 닥치고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것에도 반대하는 것이 될텐데, 자칫 잘못하면 어쩡쩡한 중도나 회색주의자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는 말이 있죠. 늘 가슴까지 차가워지지는 않았는지, 혹은 머리까지 뜨거워지지는 않았는지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만 견지한다면 진보주의자로 사는 것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몸 담거나 지지하는 진영을 그런 자세로 감시하는 것도 꼭 필요할 테구요. 늘 중단없는 사색과 토론을 통해서 균형을 유지하고, 항상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자세로 현실을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진보주의자에게 꼭 필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저는 그러지 못하고 있지만서도.

아크로 논객 여러분. 모두 모두 사랑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