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법을 잘 몰라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야권의 정치인이 관련한 사건에 유무죄의 판단을 하는 식의 글쓰기는 더 부담스럽구요.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 제 말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 건에 대해 말을 보태 본다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의문스러운 점은 이런 겁니다. 왜 사람들은 사법부가 판관 포청천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그래서 선과 악을 구별하고, 사법부가 그 악을 박살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이런 식의 선악 이분법으로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와 그 안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무우자르듯 구분이 되고 그리하여 혹자는 선이요, 혹자는 악이라고 명백하게 규정되어진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그러한 바램이 결국은 전근대적인 인치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인치에서 법치로의 힘겨운 변화, 곧 사법권력을 제도의 틀속으로 봉인한 것이 민주주의의 주요한 성과인데, 이제 그 제도의 구속을 벗어나 사법으로 하여금 자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면, 그것이 곧 공권력이 "합법적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삶을 파괴할 수 있었던, 그 독재의 헬게이트를 다시 열어주는 것임을 사람들이 왜 인식하지 못하는 걸까? 뭐 그런 의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정리해 보죠. 이명박과 정봉주가 법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둘 중 원고가 누구입니까? (검찰이 소를 제기했지만 둘의 관계에서만 보자면)개인 이명박이죠. 그럼 이 사건의 피고는 누구입니까? 개인 정봉주죠. 

그렇다면 이번 재판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명박과 정봉주의 말 중 BBK사건과 관련해 누가 맞는 소리를 했는가?를 따지는 재판이었나요? 그러니까 법원이 판관 포청천의 입장에서 그 문제의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려내는 것이 관건이 되는 재판이었나요? 그런 게 "전혀" 아니었죠.

이번 재판은, 지난 대선의 과정에서 정봉주가 이명박을 향해 BBK의혹을 제기하며 그것으로 이명박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고,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혐의가 인정이 되어 검찰이 정봉주를 기소한 가운데 정봉주가 한 그 짓이 사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재판이었습니다.

곧 이명박 vs 정봉주의 진실배틀의 문제가 아니고, 처음부터 피해자(이명박) Vs 가해자(정봉주)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가해자 정봉주가 한 짓이 현행 공직선거법상에서 용인이 되는 행동이었는지를 법적으로 가려보기 위한 재판이었습니다. BBK사건의 진실공방은, 정봉주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를 가리는데 있어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주요하게 다루어진 것이지, 그 자체는 이 재판의 과정에서 부수적인 논점에 불과합니다. 

BBK공방에 있어 정봉주가 그렇게 믿을 수 있었던 요건이 충족된다면, 정봉주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로 인정이 되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 그렇다고 해도 이명박이 피해자요, 정봉주는 가해자며, 이명박이 원고라면 정봉주가 피고가 된다는 재판의 원성격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는데..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이 이 문제에 있어 법리 적용을 어떻게 하고 있었습니까?

관련 부분만 정리해 보면..

1) <공직선거법 상에서 말하는 허위사실>은 선거인이 그 얘기를 듣고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수 있을 만큼의 구체성을 지닌 진술이면 성립한다. -> 정봉주 발언이 이에 해당한다.

2) 사실은 과거나 현재의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어서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하다, 의견은 본인의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단순히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곧 이명박=나쁜놈,쥐새끼(=의견) 이명박=bbk실소유주,주가조작했다(=사실)로 볼 수 있다.
->정봉주 발언은 의견이 아니고 사실이다. 입증을 못하게 되면 "허위사실"이 된다.

3) 허위사실의 입증은 검찰이 하는 게 맞다. 고로 검사의 입증책임부담은 a)어떤 사실이 진실이다는 것을 증명하던지, b)어떤 사실이 진실이 아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곧 검사 자신이 채택한 증거가 진실임을 증명하던지, 정봉주가 제시한 증거가 거짓임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둘 중 하나를 만족해야 허위사실이 성립하게 된다.
->1/2심이 검찰주장(이명박=무혐의)인용, 정봉주주장(증거능력 불충분)배제한 것에는 "법리의 오해가 없어 보인다". 1/2심의 재판결과에 문제가 없다.

4) 의혹제기 자체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이것이 공직선거의 과정에서 충분히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공직자 검증의 차원에서도 이 자유가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자유를 무턱대고 봉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자유를 무제한으로 허용할 수도 없다. <근거가 박약한 의혹제기까지> 무분별하게 허용한다면 어찌 되겠나? 추후에 그 의혹이 사실무근임이 밝혀져도 잠시나마 피선거권자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의혹제기가 임박한 선거에서 선거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 공직선거의 결과가 호도되는 더 중대한 공익침해의 결과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a>그 의혹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있다면 추후에 사실무근임이 밝혀져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어 처벌받지 않는다.

-b>의혹을 제기하는 이는 그 의혹을 받을 일을 한적이 없다고 하는 이에 대하여 자신이 제기하는 의혹이 사실이라는 소명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단 이때의 소명자료는 단순한 소문이어서는 안되고 검사가 허위성을 증명할 수 있는 활동이 가능한 정도의 구체성을 띄는 자료여야 한다.

-c>검사는 소명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허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 검사가 그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여 허위성이 증명되면 그 의혹제기자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 a>-c>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봉주가 제시한 소명자료의 신빙성이 검사에 의해 탄했되었고, 이로써 허위성이 입증되었으며, 그렇다면 정봉주는 본인의 허위사실공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곧 1/2심의 판결에는 "법리의 오해가 없다."

이런 거였죠. 이런 맥락에서 정봉주에게 유죄판결이 있었던 겁니다.

근데 지금 사람들은 이 판결이 불만스럽다는 거죠. 왜 저 악당 이명박을 법이 처단하지 못하는 거냐고! 왜 법이 잘못한 놈을 잡아 쳐넣지 못하는 거냐고! 아 짜증나, 진짜 더러워서 못봐주겠네..다들 이런 심리로 분통터져 하고 있는 거겠죠..

물론 그 심정에는 공감을 합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사법부가 이 재판 과정에서 애시당초 전제된 그 원고와 피고의 관계,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마음대로 뒤집고 뭇 대중들의 바램을 실현하는 제 맘대로의 판결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은 좋겠죠. 당장은 악당 이명박을 정의의 사법부가 처단한 것 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치의 시작입니다. 사법논리가 그런 식으로 통용되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이명박이 처단을 당했지만, 다음에는 나와 나의 이웃, 나아가 죄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그 사법부의 칼날 앞에 무수하게 스르져 가는 독재의 현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실을 원하지 않는다면, 사법부가 피해자의 입장에 있는 이명박의 기본권을 지켜준 것에는 박수를 치고, 가해자인 정봉주의 행위를 공선법에 의거해 엄혹하게 판결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면서 현행 공선법이 표현의 자유를 좀 더 폭넓게 보장하도록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고, 동시에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다함께 압박을 가하는 말그대로의 "정치"를 해야겠죠. 그렇게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완성시켜 가기 위한 노력, 그것이 우리들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의무입니다. 또한 그것이, 87년 체제와 함께 독재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정치적 공간입니다. 그것을 자꾸 뒤섞게 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후퇴인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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