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김근태 씨 사망 소식까지 들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나네요.

90년대초에 당시 창비나 실천문학 같은 진보적 출판사들에서 시집이나 소설을 출간하는 작가들의 술자리에
아는 선배때문에 어찌어찌하다 몇번 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말석에 앉아서 술 심부름 , 안주 심부름 하면서 그 양반들 하는 소릴 귀쫑긋하면서 듣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1994년이죠, 민중시인의 상징적 존재인 김남주 씨가 40대 후반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한 지 얼마 안된 날이었습니다.

몇몇 작가들이 모여서  '남주형'을 회고하면서 술을 마시는 그런 자리였는데
사망하기 바로 하루 전날 인가에 병문안을 갖다온 한 작가가 그런 얘길 하더군요.
아직 의식이 남아 있는 김남주의 손을 꽉잡았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자기에게 한 유일한 말이
'세상도 좆같고, 내 인생도 좆같다' 이 말뿐이었다구요.

김남주 씨가 남긴 시를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솔직히 그의 시를 읽으면서 단 한번도 가슴이 뭉클한 적이 없었는데,
죽기 바로 직전 지인에게 남겼다는 위 말을 들으니 정말 가슴이 아프고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 청춘을 온통 운동과 투옥에만 바치다가 이제 막 자유를 찾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무서운 병마에 쓰러진 사람의 입에서 저 말보다 더 솔직한 말이 무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김근태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언론들을 보니
그가 블로그에 남긴 '2012년을 점령하라'를 유언으로 보도하더군요.
유명 정치인의 죽음이니 정치적 발언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어하는 언론들의 속성,
정치권의 속성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만약 김근태씨가 자신의 인생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정말로 세상을 향해 남기고 싶은 가장 속내 깊은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역시도 '이 좆같은 세상, 좆같은 내 인생'이라고 울부짖고 싶지 않았을까요?
3선 의원에 집권당 의장,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타이틀로도 위로가 안되는 그의 인생의 아픔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최소한 고문기술자 이근안만큼은 이런저런 잡소리하지말고 조용히 김근태의 빈소에 가서 
무릎꿇고 조문하고 오길 아울러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