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 시달린 어린 학생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의 빈도도 잦아지고, 정도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학교가 위험상황을 넘은 것입니다. 딸아이에 의하면, 왕따는 주로 약자들이 받는다 하더군요. 집이 못 살고, 외모도 떨어지고, 공부 못하고, 사교성도 없고, 말도 잘 못하는 그런 애들 말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왕따라는 게 없었습니다. 학교에 머리가 벗겨진 애, 장애아, 간질병환자도 있었지만 그런 애들이 놀림 받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놀리는 정도가 아니라 물고문 등 범죄수준의 가혹행위를 합니다. 가해자들이나 피해자들 모두 나쁘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치하면 세대를 거치며 악순환이 돼버립니다. 가해학생들이 역지사지로 당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그런 일을 안 할 텐데, 세상이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사람의 내면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즉물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왕따가 얼마나 괴로운지 경험자의 입장에서 저의 경험을 말해보겠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로 기억되는데, 특이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왕따라는 것도 없었지만, 저는 온순하고 공부 잘하고 덩치도 큰 편이어서 학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조건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단지 나는 아주 얌전한 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반에 불리가 한명 있었습니다. 덩치는 나보다 작았지만 집이 잘 살고, 보스기질이 있었고, 태권도장에 다니며 애들 앞에서 발차기 등 개폼을 잡던 애였기에 반 애들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그 애가 싫어 상종을 안하려했지만 가끔 부딪히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한 번은 축구를 하다 그 애하고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습니다. 태권도를 배워서 인지 그 애는 만만치는 않았지만 나를 이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승부 없이 싸움은 끝났지만 다른 애들은 다 자기한테 굽실대는데 언더독으로 보이던 내가 꼬리를 안 내리니 내가 눈에 가시였을 겁니다.


하루는 아침에 등교하니 그 애가 똘마니 여섯 명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시비를 거는 겁니다. 그래서 7대 1의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걔들은 나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때리고 나는 360도 돌아가며 응수하는 식이었습니다. 나는 7대 맞고 한 대 때리고 걔들은 7대 때리고 한 대 맞는 꼴의 싸움이 된 겁니다. 그러다 수업종치면 선생님이 들어오니 싸움을 중지하고, 휴식종 치면 싸움이 재개되는, 걔들은 재미있는 놀이일지 몰라도 저로서는 괴로운 싸움이 반복됐습니다. 나도 친한 애들이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 줄만큼 친하지는 않았던지, 다수를 상대로 소수의 편에 서는 게 두려웠던지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는 애들이 없었습니다. 저는 숫기가 없어 선생님에게 말을 못했습니다. 그들의 공격이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긴장을 해야 하고, 홀로 여럿에게 당한다는 게 정서적으로 괴로웠습니다. 고립무원의 느낌이라는 게 얼마나 절망감을 주는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때처럼 수업종이 반가웠고 휴식종이 싫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똑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학교 가는 것이 싫었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 그런 일로 학교를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형이 내가 싸우는 걸 목격하고 한 번은 날 도와줬지만 교실이 멀리 떨어져있어서 쉬는 시간마다 도와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수업종이 치자 형은 자기 교실로 돌아가면서 저에게 힌트를 줬습니다. “여러 놈하고 붙지 말고, 한 놈만 패버려~.”



그 다음 시간에 종이 치고 싸움이 시작되자 나는 똘마니 중에서 가장 악랄하게 덤비던 한 놈에게만 달라붙어 그 동안의 설움을 다 토해내듯이 떡실신을 시켰습니다. 그 애가 나한테 깔려 얼굴이 코피로 범벅이 된 걸 본 다른 애들은 이제 더 이상 장난수준이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초딩시절의 첫 싸움이자 마지막 싸움이었던, 1대 7의 싸움은 3일 만에 막을 내리고, 그 후 졸업할 때까지 나에게 감히(?) 시비 거는 애가 없어 무사히 학교를 마쳤습니다. 


그 후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1년에 한 번 정도는 일대일이긴 해도 유사한 이유로 싸움을 한 것 같습니다. 싸움을 한번 하고 나면 그 효과가 학급이 바뀌기 전까지는 지속되는데, 학급이 바뀌면 싸움 좀 한다던 애들이 도발을 해와 1년에 한 번은 싸우게 되더군요. 웃기는 건 군대에 가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심지어 요즘에도 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어 가끔은 이 나이에도 주먹싸움을 하게 되더군요. (저는 먼저 주먹을 쓰는 일이 없지만, 일단 맞으면 가만있지 않습니다. 주제가 벗어나니 각종 무용담은 다른 기회에.... ㅋㅋ)


왕따가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요?

첫째, 사회와 학교가 함께 천박한 물질주의, 즉물주의로 썩어가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깊이와 관용심은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표피에만 반응합니다. 노스페이스 계급이라는 건 세계에서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현상일 겁니다. 둘째, 학교에서 공부외의 인성교육이나 정의교육에 전혀 투자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교사들도 그 수준이라 인성교육을 시킬 자질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왕따가 일어나도 해결해줄 장치가 학교에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상담교사도 없지만, 교사에게 말하면 찌질하다고 핀잔을 주며 혼자 해결하게 만드는 분위기랍니다. 그러고도 학교를 교육기관, 교사를 교육자라고 말합니다.


저의 경우는 왕따를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고 단기간에 끝났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게 오래 지속됐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릅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막는 일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딸아이가 하는 말이, 학교에서 약자가 부당하게 왕따를 당하는 걸 보면 자기가 나서서 말리고 싶지만 자기 일도 아닌데 주제 넘는 거 같아 못 한다며, 단지 그 애한테 좀 더 친하게 잘 해주는 것 밖에는 한 일이 없다 하더군요. 우리 딸애는 단지 소극적 정의를 실천 한 겁니다.


개인이 불의를 안 저지르고 사는 게 소극적 정의라면, 불의를 감시하고, 저지하고, 응징하는 게 적극적 정의라 정의하겠습니다. 내부자고발이나 사회고발도 적극적 정의고, 현장에서 범죄자를 제지하려는 시도도 적극적 정의입니다. 사회정의는 소극적 정의만으로 지킬 수 없습니다. 시민들의 적극적 정의를 필요로 합니다. 소매치기, 노상강도, 내부비리, 왕따 같은 불의를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제지하는 사회에서 불의는 그만큼 발붙이기 어렵겠지요. 이제는 적극적 정의에 대한 적극적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