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라고 다 서울이 아니고, 부산이라고 다 부산이 아닙니다.
부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안이라고 다 부안이 아닙니다.

강동구에 방폐장 만들고, 강서구에 반대급부를 안겨준다면, 아마도 강서구 사람들은 환영, 강동구 사람들은 결사반대할 겁니다.
부안도 마찬가지죠. 방폐장 생기는 것과 반대급부가 있을테고, 방폐장으로 피해보는 주민들은 반대, 이득보는 주민들은 찬성했을 겁니다.

그게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되느냐 라는 문제가 남는데, 가장 쉬운 해결법은 반대급부를 크게 안겨주는 겁니다. 
그래서 방폐장으로 피해보는 주민들이 피해보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그럴 경우에도 일부는 반대하겠지만 부안처럼 대대적인 반발은 나오지 않을테고, 적당한 시점에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대다수의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그런 식이죠.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지속적인 설득과 토론을 하며 이해를 구하는 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귀찮을 수 있겠지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다음 방법은 사업지역을 전환하는 겁니다.
결국 방폐장이 가져간 것은 경주죠.(물론 경주는 부안보다 훨씬 많은 반대급부를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치를 희망하는 다른 지역으로 사업지역을 변경하면 됩니다.
입지가 적절한 곳 중에서 그를 유치하고자 하는 곳으로 전환하면 됩니다.
군산이면 군산, 경주면 경주, 유치를 원한다는 지역으로의 전환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


저 방법들은 각기 별개의 것이 아니라 적절히 뒤섞어가며 갈등을 줄이는데 활용해야겠죠.


물론 저런 식으로 정부가 지자체와의 협상 파트너 자리를 내려온 뒤에도, 지자체 내부에서 있을 피해에 대한 보상과 이익에 대한 배분 등으로 갈등이 생겨날 때 정부가 중재자의 역할도 해야될 겁니다.


그런데 노무현의 문제는 부안방폐장 문제에 있어서 갈등조정자의 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갈등조정자의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이익집단, 그것도 아주 힘이 센 이익집단이 되어 부안으로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해서 주민들을 때려잡기 시작하죠. 

폭력을 통해 주민들을 한 껏 자극해, 그렇지 않아도 반대입장이던 주민들은 극렬 반대로 바꾸어놓고, 이성이 아니라 감성적인 측면에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도록 만든 뒤에, 주민들이 반대하니 진압한다는 식으로 더 심하게 진압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부안 방폐장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공권력의 폭력에 당한 피해자만 양산하고, 대규모 경찰력의 낭비와 경찰 개개인의 좋지 못한 경험만 만들어낸 채 결국 정책 집행에마저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내가 옳고, 상대가 생떼를 쓰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저런 식의 폭력을 수반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갈등조정방식은 옳지 못합니다. 효율적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옳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방폐장 문제의 경우 누가 옳은지도 명확하지 않은 문제인데. 폭력을 쓰고, 감정을 자극하며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억누르려하다가 결국 갈등을 증폭시키다 일을 망쳐버린 경우인데 갈등조정에 관해서만도 잘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갈등조정 역할을 못한 것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국가 폭력을 통해 주민들을 옭죄려고 했고, 그 폭력의 수위가 높은 수준이었기에 그에 대한 책임 역시 클 수밖에 없습니다.


부안 방폐장 문제는 방폐장 입지 선정의 적절성이나 효율성이라는 정책 성과적인 문제가 아니라, 입지선정과 추진과정에 있어서 보여준 소통부재와 야만적 폭력성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노무현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그 부분에 있는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