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라고 가르친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란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말이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거나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우는 여러분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게으른 생활을 하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저 얻어 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마라." 하는 말을 여러분에게 종종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 먹도록 하십시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3:6~12, 공동번역개정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6~12, 개역개정판)

 

 

 

그런데 예수는 이런 말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태오의 복음서 6:25~34, 공동번역개정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25~34, 개역개정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을 “열심히 일하되 걱정은 하지 말라”라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순이 없다. 한국에는 “걱정도 팔자다”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라는 구절을 볼 때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야훼가 다 먹여준다는 말 같다. 기독교인에 따르면 영혼이 별로 없다는 새를 두고 “걱정도 팔자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일을 열심히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나

- <> 중에서, 싸이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보다 예수가 직접 말한 것이 한끗 위니까 일을 하지 말라는 걸까?

 

 

 

그건 그렇고, 야훼는 열심히 “곳간에 모아들이”는 개미는 별로 사랑하지 않고 새만 사랑하는 걸까? 개미는 무척추동물이라고 차별하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새 중에서도 먹이를 저장하는 새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포유류 중에서도 다람쥐는 먹이를 저장한다.

 

예수는 생태학에는 좀 약한 것 같다.

 

때까치는 참새목 때까치과의 새이다. 개구리, 곤충, 쑥새나 방울새등의 작은 새, 물고기, 도마뱀, (물때까치의 경우)를 잡아먹는다. 사냥하면 날카로운 가시 등에 먹이를 꽂아두는데, 이는 먹이를 저장하기 위한 것이다.

http://ko.wikipedia.org/wiki/%EB%95%8C%EA%B9%8C%EC%B9%98

 

 

 

어쩌면 기독교인들이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와 같은 구절 때문에 진화 생물학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진화 생물학자라면 팔자 좋게 “아버지께서 먹여주”시길 마냥 기다리는 생물은 번식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볼 것이다. 반면 예수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성경 속에서는 자연 선택도 인위 선택도 아닌 신위 선택(divine selection)이 일어난다는 가설도 설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야훼는 노아의 홍수의 경우처럼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마구 죽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성경 속 세상에서는 신앙 유전자가 잘 퍼질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신위 선택이 별로 효과가 없어 보인다. 엄청나게 강력한 신위 선택이 일어났음에도 인간이 계속 야훼를 의심하니 말이다.

 

그렇다. 성경은 신위 선택과 모순된다. 이래서 신위 선택과 비슷한 자연 선택을 주창한 다윈을 기독교인들이 싫어하는 걸까?

 

 

 

물론 독실한 기독교인들을 무적 비유 신공을 들이댈 것이다. “이 구절도 비유니까 패스”라고 말이다.

 

비유 신공을 들이대든 말든 성경에서 열심히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인지 아닌지 이야기해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이야기하듯이 열심히 일을 하라는 것인지 예수와 그 추종자들이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주었듯이 신앙 이야기만 열심히 하면서 일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요즘은 오병이어의 기적도 흔치 않아서 예수와 그 추종자들처럼 살면 딱 굶어 죽기 십상인데...

 

 

 

요즘에 전 재산 다 바치고, 직업도 팽개치고, 휴거만 기다리는 사람들의 집단은 사이비 종교라는 딱지가 붙는다. 하지만 예수를 따르던 집단이 딱 그렇게 살았다. 휴거가 곧 온다는 예언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도 똑 같다. 사이비 종교 집단과 예수 집단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똑 같이 살아도 2천년 전에는 훌륭한 종교고 현대에는 사이비 종교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