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퓰리처상 사진 : 사진으로 기록한 현대사의 맨 얼굴, 퓰리처상 사진 부문 70년간의 연대기>를 보았습니다.
현대사의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생생하고 큼직한 판형의 사진과 설명으로 넘겨보다 보니 눈이 호강을 하였지만
대부분의 사진들이 전쟁과 투쟁, 가난, 갈등 등 고통과 아픔을 다루고 있는 사진들이라 맘이 편하지만은 않더군요.

게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퓰리처상 사진 중 하나일 듯한 케빈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녀.jpg 

아직도 기자의 취재 윤리 논쟁을 다룰 때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사진인데 일반적으로는 케빈카터가 저 사진으로 비난을 받다가 그로인해
자살한 걸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 사진으로 인한 비난때문에 자살한 것은 아니죠.

책에서는 케빈카터를 알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뱅뱅클럽"의 사진이 소녀 사진 몇장 앞에 배치되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주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한겨레 사진기자분께서 이건에 대해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을 하고 계신데 관심있으신 분께서는 일독을 권합니다.

<다시 케빈 카터를 위한 변명>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35&oid=028&aid=0000223135

<죽어가는 소녀를 찍지 말아야 했을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094828

"우리나라에서도 케빈 카터의 비극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곡해되곤 한다. 필자가 글을 쓸 무렵엔 어떤 판사의 판결문, 나중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던 어떤 여자 정치부 기자의 에세이집, 심지어는 사진을 가르치는 대학의 선생의 수업마저도 부족한 정보를 기반으로 케빈 카터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대학의 선생은 “생명과 사진 중엔 당연히 생명이 앞선다”라는 단순한 논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치부 기자는 “그러나 그가 사진을 찍고 소녀를 구하기 위해 독수리를 쫓아버렸을 땐 이미 늦었다. 결국 소녀는 죽고 말았다”라는 틀린 사실을 인용했다. 판사의 판결문은 케빈 카터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의 태도를 견지하지 못 한” 것으로 우회적인 인용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판결문을 다시 인용한 어느 중앙 일간지 기자는 “사진보다 사람 목숨이 우선이었어야 한다는 비난이 고통스러웠던지 예술가는 상처받고 죽어갔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태도를 가져야 표현의 자유도 확보된다. 그것을 몰라 불행했던 예술가를 잊지 마라”라고 기자답게 과대포장하고 있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글을 써야할 기자와 판사와 교수가 이럴진대 일반 네티즌들이 오죽하겠는가. "


다음은 manic street preachers의 <Kevin Carter> 입니다.


올리는 김에 매닉스의 최고 히트곡인 <A Design For Life>


마지막으로 밴드 초기의 시원함이 느껴져서 제가 좋아하는 <Sleepflower>





ps. 어차피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현실에서 끼어들다 보니 어제, 오늘 무리수가 좀 있었던 듯 합니다.
똘아이 같은 뉴커머들 말고 어떤분들은 저와 의견은 다를 지언 정 그래도 인정은 하는 분들인데 혹시 저의 글로 인해 맘 상했던
적이 있으셨다면 맘 푸시고 따뜻한 연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더 희망찬 한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