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나꼼수'의 정봉주에 대한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정봉주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 등에 연루됐다는 내용의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됐었죠. 수뢰사건과 같은 부패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와 관련된 정치인에게 징역이라는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아크로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왔고, 정봉주가 "BBK 주가조작에 이명박이 연루됐다,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범죄자다"라고 한 부분에 대한 정봉주 측의 명확한 증거제시가 없었고, 제시한 증거도 김경준이 위조한 서류였기 때문에 유죄를 피할 수는 없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정봉주에 대한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은 정치의 영역에 대한 사법의 과잉 간섭이기 때문에, 구체적 케이스의 유무죄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은 애초에 발생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에는 당연히 판결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형사범죄에 대한 양형기준표처럼 말입니다. 여론의 영향을 받아서 성범죄에 대한 양형을 강화하기도 하고, 사법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판결의 기본 얼개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는 일종의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치는 효과를 가지죠.

그런데 선거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은 상당히 엄격합니다. 특히 최근 흐름에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엿보입니다. 각종 수뢰 아니면 공선법 상의 돈문제, 허위사실 유포가 정치인들 뱃지를 떨어뜨리는 주된 역할을 담당하죠. 얼마 전 양천구청장도 상대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로 잘렸듯 말이죠.

이처럼 법원이 허위사실 유포를 엄격히 다루는 이유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선거결과의 왜곡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것을 제어할 주체가 법원 외에는 없다는 판단때문입니다. 사법 적극주의의 발로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사법 적극주의가 주로 발현되는 영역이 정치의 영역, 민주주의의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당연히 뇌물을 받고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부패한 정치인, 돈을 뿌려서 부당하게 당선된 부패 정치인을 법으로 심판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 선거운동과 같은 '순수'한 정치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 즉 말로하는 정치에서, 말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문제를 정치의 장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질서는 민주주의입니다. 모든 공적인 권력은 당연히 민주적 질서를 통해 창출되어야 하죠. 대통령의 힘이 가장 센 이유, 국회의원에게 사람들이 벌벌 떠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주권자들이 직접 그들에게 표를 던져서 권력을 줬기 때문이죠. 대법원 구성, 헌재 구성에 대통령과 국회가 관여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대법원장, 대법관, 헌재소장, 헌법재판관은 입법, 행정, 사법의 한 축인 사법부(헌재를 어케 봐야할지 논의가 많지만)의 대표 격인데, 그들을 뽑는 데에 주권자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주권자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국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 사회는 원래 주권자로부터 표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권력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가장 세고, 그 다음은 국회 전체, 혹은 대통령과 국회는 동급이며, 사법부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항상 자각하고 있어야 하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가장 센 것은 맞는데, 바로 그 다음 혹은 동급이어야 할 국회는 아주 취약합니다. 각종 정치적 사건, 갈등을 대통령과 국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에 그 해결을 미루면서 사법부는 우리 사회 갈등의 최종해결의 장이자, 가장 효율적이며 권위가 부여된 장으로 되어버렸습니다. 실은 국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조화, 해소되어야 하는데, 거의 날치기 되거나, 거수기처럼 심의없이 통과되어 버리고, 그러다보니 헌재로 쪼르르 달려가고 헌재 재판관 9인의 판단에 수백만 표를 각각 받은 양 정당이 울고 웃고...

물론 왜 이렇게 국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아마 정치인, 정당에 그 책임 가장 많이 돌아가겠죠.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개선할 문제이고, 정치의 영역에 사법권력이 과잉침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허위사실 유포로 선거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을 방지할 주체가 법원 이외에 없다"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입니까. 선거에서 투표하는 국민들을 바보로 여기는 태도죠. 마치 김대업 때문에 이회창이 대선에서 떨어졌고, 김대업만 아니었으면 정권 뺏길 일 없었을 것이라며 거품무는 그런 태도와 뭐가 다를까요. 툭하면 "네티즌 문제다"면서 네티즌을 공격하는, 실은 네티즌=일반 국민 이므로 일반 국민들 선동적이고 무식하다고, mob이라고 까는 조선일보의 토나오는 행태와 일맥상통하죠.

굳이 미국의 예를 들자면, "힐러리가 자기 고양이를 내다 버렸다"며 힐러리는 계산적이고 냉혹하다는 식의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곳이 미국 정치입니다. 크든 작든 많은 선거에서 후보자의 불륜같은 추문 사실, 전혀 확인 안된 괴담들, 대학 시절 마약을 했고 미국을 싫어한 매국노라는 식의 공격, 그저 무슬림일 것 같다는(무슬림에 우호적이라는) 공격 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공격은 집전화를 통해 각 가정에 전달되고, 막대한 돈을 써서 티비광고로도 이루어집니다. 돈을 아끼고 사람들 생업에 지장을 주지 말자는 명목 하에 선거운동의 양태를 제한한 우리나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저런 것들 때문에 미국의 선거결과가 왜곡되었다거나 그로 인하여 사회가 망가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거운동과정에서의 각종 공격으로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번 정봉주처럼 바로 전에 국회의원이었던 정치인을 실형살게 하는 경우는 정말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죠.


정치의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는 정치의 영역에서 정치논리로 풀어야 합니다. 더욱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세부적인 정책도 아니고 선거운동과정에서의 말로 인한 갈등, 문제는 선거가 끝났으면, 그 선거에서의 유권자들의 의사가 전체적으로 선거운동과정과 후보자들을 평가한 것이므로 그것에 승복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유권자들이 허위사실에 낚여서 잘못된 투표를 할 것이라는 유권자에 대한 오만방자한 생각으로 선거결과와 선거운동과정에서의 각종 음해성 공격을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사법권력이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유권자들은 후보자에 대한 음해성 공격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러한 공격을 하는 측과 받는 측의 모습을 둘 다 살핍니다. 어떠한 공격이 너무 치졸하면 대개 유권자들은 그런 공격을 하는 쪽이 밀려서 급하니까 저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치졸한 공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쭈물대면 유권자들은 "저것봐라? 저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 막네, 완전 무능하잖아, 쟤는 절대 안되겠다"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꺼버립니다. 이처럼 선거운동과정에서의 각종 공격, 방어, 내놓는 정책 등등은 총체적으로 모두 유권자들의 판단의 근거가 되고, 선거결과는 그 판단의 결과물이죠. 기본적으로 여기에 민주적 정당성이 허약한 사법권력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물론, 돈으로 표를 샀다거나,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도저히 사회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경우 예외가 있을 수는 있죠.


정봉주는 선거운동과정에서의 '흑색선전'으로 실형을 살게 되었죠. 게다가 정봉주가 공격했던 이명박은 더블스코어로 대통령이 되었죠. 정봉주의 '흑색선전'으로 선거결과의 왜곡이 있었다고 판단하기도 어렵고, 정봉주의 '흑색선전'이 사회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아무런 근거없이 오로지 이명박 후보를 비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도 어렵죠.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회가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의 공격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업인 출신에, 각종 부패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는, 차기 대통령이 거의 확실했던 후보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 사회적으로 당연히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수준의 흑색선전이었다고 봅니다. 박근혜가 자기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식의 말 그대로 헛소리를 한 허경영의 케이스와도 다르다는 말이죠.

저는 정봉주 개인이 무슨 이명박 독재정권에 희생당한 순교자, 탄압받는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생각보다는 불쌍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정봉주 개인에 대한 호오와 별개로, 선거운동과정에서의 말로 인한 문제, 그리고 이 케이스 이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사법부의 선거에 대한 깊숙한 관여, 그리고 더 나아가 입법에서의 갈등을 국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자꾸만 헌재로 끌고갔던 사례들과 같은, 정치의 영역에 대한 사법의 지나친 간섭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치않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