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며칠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로 평양 거리 풍경이 온 오프를 막론하고 자주 눈에 뜨인다.
 09년 4월 초순인가 나는 운 좋게 평양과 묘향산 구경을 할 기회를 가졌었다. 운 좋았다고 하는 것은
그 무렵에도 무슨 미사일발사건이 진행중이어서 방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중대통령 시절에는
무척 많은 인사들이 왕래를 했는데 그 가운데 끼지 못해 나는 부러워하다가 말았던 전력이 있다.
 요즘 보도되는 평양 풍경을 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공항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 때 금수산의사당이 너무 빨리 눈앞에 나타나서 놀랐다.
김일성대학도 공항에서 그닥 멀지 않은 위치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캠퍼스 규모가 작아보였다. 평양 거리로
버스가 진입할 때의 순간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마침 그곳 퇴근시간이라 수많은 시민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나와 버스와 반대방향으로 다가왔는데 그때 가슴이 왠지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아, 여기에도
이렇게 수많은 동포들이 활기롭게 움직이며 살고 있구나! 그런데 그 오랜 기간동안 나는 왜 여기에 한번도
올 수가 없었지? 아마 이런 초보적인 감상 때문에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대동강은 한강보다 훨씬 강폭이 좁고 아담한 강이었다. 수양버들이 강둑에 늘어서 있어서 경치가 그만이었
다. 한강은 너무 넓고 좀 풍경이 살벌해서 자살자도 가끔 나오는데 대동강은 되레 아담해서 빠리 세느강 같
다는 느낌이 들었고 관광객에게는 좋은 호재가 될 것 같았다. 관광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평양 시내도 계획
도시라 바둑판 처럼 거리구획이 잘 되어 있다. 대동강변 양각도호텔 고층 객실에서 내려다보면 평양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일단 큰 그림으로는 아주 아름다운 도시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건물 가까이 가서
보면 역시 낡고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봤다.
 만약에 미국과 북이 수교를 하고  북에서 남측의 놀고있는 건설회사들을 불러다가 평양 거리의 건물들을
리모델링 하고 그리고 좋은 페인트를 가져다가 건물 모두를 새롭게 도장작업을 한다면
평양의 모습이 전혀 새롭게 멋진 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그리되면 서구의 관광객들도 오랜 은둔국이던 이곳을 앞다투어 찾아올 것이다. 모스크바도 90년대 초기에
는 아주 우중충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도장작업을 새로 하고 도시를 새로 꾸며 트베르스카야 같은 도심 거
리에 가보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거리로 바뀌어져 있다. 북의 이런 가능성을 북도 알텐데 미국과 
남의 정부가 그것을 막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봉쇄정책... 이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는 90년대 초 이라크
 여행 때 뼈가 시리도록 확인한 바가 있다. 바그다드 병원에서는 우유가 없어서 매일  수십명의 영아들
이 죽어가고 있던 것이다.
 
북의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품질이 좋았다. 나는 빵을 즐기는데 호텔식당에서 맛본 빵은 서울에 가져오면
돈벌이가 될 것 같은 그런 맛 좋은 빵이었다. 봉사원에게 물었더니 현지생산 곡물로 현지에서 만들어낸 빵
이라는 답이 나왔다. 평양과 묘향산 호텔에서 맛본 각종 요리, 닭찜, 숭어찜, 콩나물을 비롯 각종 나물류들,
몇종류의 김치들, 모두가 그 맛이 일품이었고 특히 조미료가 배제된, 우리 고유의 맛이라는 게 인상적이었
다. 그러고보면 조미료는 우리 전통 음식 맛을 변질시킨 주범이 되는 것이다. 콩나물도 부드럽기 이를데
없다. 나는 어릴 때 고향에서 먹던 콩나물처럼 향그럽고 부드러운 콩나물을 서울에서 먹지 못하다가 뜻
밖에 북에 가서 그 맛을 되찾게 되었다. 서울의 콩나물은 고무줄처럼 질기고 향그럽지도 않다. 그래서
대량생산의 남의 콩나물을 '자본주의의 콩나물'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 아니 반드시 통일 아니라도 왕래라도 자유롭게 된다면 아마 강남 사모님들이
맛있는 점심 한끼를 위해 차를 몰고 평양까지 달려가는 풍경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반 시민들
의 식탁이 반드시 그럴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평양에는 분명 우리 전통 고유의 맛이 잘 보존되어 있
었다.

묘향산에 가서 이틀 묵었는데 첫날 일행 몇사람이 호텔 인근 도로변을 산책하고 있다가 마주오는 한사
람의 여성과 만났다. 삼십대후반 쯤 되는 그 여성은 옷차림 용모 등이 깨끗하고 걷는 자세도 단정했다.
그여성이 우리와 스치면서 뜻밖에도 우리에게 아주 정중하게 허리숙여 인사하고 지나갔다. 얼덜결에
인사를 받고 돌아보니 그녀는 벌써 저만치 멀리 걸어가고 있다. 나는 아차, 말을 붙여 보거나 좀 더 친
밀하고 진실하게 인사를 받을걸 너무 건성으로 스처버린 게 아닌가 하고 후회했다. 이 장면의 기억이
마치 오래 그리다가 수십년만에 만난 옜 연인과의 해후를 속절없이 흘려보내버린 것처럼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이것이 남과 북 동포들이 가슴속에 품고있는 한 갈망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무엇이 완강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소통을... 그것이 무엇일까? 이념인가? 혹
은 미국,일본, 중국 등 강대국들인가? 혹은 우리 자신들인가?

 김정일, 그를 철권통치의 악마라고 극렬비난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온전하게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ㅇ다. 그점에서는 그도 불행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된다. 북이 빨리 안정을 되찾고 남도 새해부터는 보다 이성적인 대북정책으로 환
원하여 남북상생의 길을 하루라도 빨리 모색하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