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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경부고속도로, 생각의 대운하


Crete님이 사회적 자본 확충의 중요성 라는 글을 쓰신걸 보고, 그간 생각한 바를 조금 적어본다.

예전에 개인과 공공의 이익의 조화를 위하여 – 토크빌에게 듣는다 (피타고라스의 창, 2008-4-12) 에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개개인의 계몽 의식이 먼저인가요 사회의 규범 제도적장치의 확립이 먼저인가요.

한국 같이 아직 사회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곳에서 더더욱 개인의 희생에만 언제까지 호소하기도 뭣하지 않을까요. 뭔가 자기절제에 따른 공평한 이익이 돌아온다는걸 체험케하는 시스템의 일관성이 있어야 할텐데. 불투명한 사회구조의 문제인지 의식의 문제인지 어쨌든 사기치는 잉간들이 더 잘사는 세상이 되니, 계몽의식 부재를 국민의 인성이나 교육탓만 할수도 없지 않을지요.

내가 김대호 님의 책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에서 대부분 공감하면서 마음에 약간 걸린 부분이 하나 있었다면, 바로 이 부분 되겠다.

한국의 모든 경제사회 주체들이 철저하게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은 사회적 불신과 균열이 극심하여 이해관계자들의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갈등 조정이 너무나 어려운 사회이다. 한국 이익집단들의 성격과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사건들은 많다. 1945~1953년의 비극, 노무현 대통령 탄핵솨 사실상 고문치가, 보수 비대 언론에 대한 이유 있는 극도의 불신, 부안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관련 민란 수준의 시위, 노동 내 엄격한 격차, 잦아들지 않는 국회 파행 사태, 한미 FTA  관련 갈등, 노사정위원회 운영 행태,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및 해외 매각 관련 갈등,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도장 공장 점거 사태, 노동조합 협상 대표의 직권 조인을 두려워하여 노사 잠정 합의 사항을 조합원 총투표로 추인하는 문화 등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원래 정치 · 경제 · 사회 주체들 간의 상호 불신이 높아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갈등 조정이 어려운 곳에서는 전쟁이나 독재 권력, 또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담보하는 시장, 유권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투표가 주요한 판관이 된다. 전쟁과 독재 권력이 활용가능한 판관이 아니라면, 시장과 투표 기능을 주요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다.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관련 갈등을 경쟁 지역 간의 투표로 해결한 사례는 그 단적인 사례이다. 한국이 기본적으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불신의 나라인 이상 당분간은, 대체로 폭력적이고 독단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겠지만, 어쨌든 정부의 과감한 결단을 통해서 주요한 갈등 사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슬픈 운명이다.

(234p,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김대호, 한걸음더, 2009-08-05)


참여정부의 국정원리를 다시 볼때면, 난 여전히 가슴이 벌렁벌렁 뛰곤 한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내가 그동안 시민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개혁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에 대한 학습과 그 정리를 시작한 항목이 몇백개가 된다. 추상화와 일반화를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만큼, 그렇게 마구 발산해가는 자료들 사이에서도 어떠한 공통적인 인식틀과 모두를 관통할 추상화된 원리를 찾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저 참여정부의 국정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이제 여기에 공공부문 개혁과 과소시장의 문제의 문제와 같은 것들을 더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서로 신뢰가 없으니, 내일의 이익을 기약할 수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으니, 일단  단기적인 이익을 따먹고 보겠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단지 도덕성타령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그리고 관용, 절제, 배려와 같은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경부고속도로와 대운하보다 더 중요한 사회의 핵심인프라라는 명료한 인식을 해야 한다.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위한 대전략으로 물자가 움직이는 경부고속도로를 뚫었다면,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말과 생각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자유롭고 원활하게 움직이는 아이디어의 경부고속도로를 뚫는 것이다. 신뢰, 투명, 대화, 소통 이런 말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갈등관리시스템과 같은 것들부터 해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사회적자본을 확충시킬 아이디어의 대운하를 팔 것인지 고민해보도록 하자.


단지 서로 믿을 수 있는 착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인프라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게 더 경제성이 있다. 부자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보고서들도 있지 않은가?

정말로 복수를 할 생각이라면, 하나하나 지혜를 모아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실현가능한 것이며 확실히 더 나은 것임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도덕성이 넘쳐 흐르는 사회말고 위선이 없는 사회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의 말이다.

이번 인사청문회를 보는 평소 준법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국민은 커다란 상처를 느끼고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도덕성, 청렴성을 조사해서 공직자로서의 적합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청문회가...
제49차 확대간부회의 모두발언, 민주당 보도자료, 2009-09-18

사실 나는 저런 말에 솔직히 별로 공감이 안간다. 솔까말, 국민들은 도덕적이고 선량한데, 지도층만 유난히 비도덕적인가? 그런게 아니라 그냥 국민들 중에서 지도자도 나오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물론 특권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삼십년 전에도 지도층이었던 사람이 다는 아니잖는가?


사람들의 분노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행하는 반칙과 부당하게 누리는 특권에 대한 분노를 어찌 이해못하겠는가. 열받을건 받고, 책임을 물을 것은 물어야겠지. 법 잘 지키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선의의 피해를 받는 경우도 있는거 맞는 말이다.


버뜨, 모든 인간에게는 욕망이란 것도 있고 탐욕이란 것도 있게 마련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게 있다는 것이 어떤 비난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만들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욕망들을 성인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수신의 자세로 제어하는 사회라기보다는,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감으로써 그 욕망들이 사회에 필요한 질서, 상식들과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일 게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어딘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 있을 때, 누구나 그걸 동사무소 가서 신고만 하면 되는 정도로 쉽게 조작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합리적인 제도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거주의 증명을 꼭 그렇게 관이 받은 신고를 통하는 것이 오히려 제도의 허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로 실제 거주지가 어디인지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면 (답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가능한 예를 찾자면)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 같은걸 몇 개월치 어디서 냈는가 이런 정보가 오히려 훌륭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행정 효율성 같은 따져야 할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러한 제도들을 생각해볼 여지는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작하고 그러는 건 뭐 막을 수 없겠다. 그런건 뭐 걸리는 경우 조작으로 얻을 이익보다 몇배나 더 큰 응징을 가하는 수 말고 별 거 있겠나) 아무튼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들이 좀더 상식, 현실, 욕망들이 적당한 타협점을 찾도록 해주는 사회라면, 나는 그런 사회가 제도는 허술한데 개개인의 고고한 도덕성과 성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어떠한 조건들이 맞아들어가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굳이 그걸 마다하고 기꺼이 군대에 갈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 군대 후진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군대가 좀더 견딜만하고 인간적인 곳이 되도록 개선을 해가는 것이다. 그러면 개선해가는 만큼 저렇게 난리치면서 피하고 그러는 사람, 그런 사례들도 줄어들겠지.


뜬금없이 그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작전 통제할 만한 실력이 없냐,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 했노, 나도 군대 갔다왔고 예비군 훈련까지 다 받았는데, 심심하면 사람한테 세금 내라 하고, 불러다가 뺑뺑이 돌리고 훈련시키고 했는데, 그 위의 사람들은 뭐했어, 작전통제권 자기들 나라 자기 군대 작전 통제도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나 국방 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통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내고, 자기들이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노무현 대통령 민주평통 발언 전문, 한겨레, 2006-12-22

그리고 바로 이 때, 한 때 세상을 뜨겁게 달군 말이 나온다.

우리 아이들 요새 아이들도 많이 안 낳는데,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놓을 것 아닙니까?

방방 뛴 꼴통들 있었지만, 사실 누구나 다 동의하고 공감하는 얘기일게다. 군대가서 썩지 그럼 안 썩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모두가 그렇게 도덕성 타령으로 날밤을 새도, 결국 달라지는 거 별로 없을 것이고, 문제가 전보다 그다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도덕성 타령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거기에만 몰두하지는 말자는 작은 바램같은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가 도덕성이 넘쳐 흐르는 사회말고, 위선이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면 더 진솔한 대화,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 그러면 여기서 훗날 얻어질 것은 아마도 '더 도덕적인 사회'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