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부산 출신 노빠를 만나서 술을 한 잔 한 적이 있습니다. 전에 만난 적이 없던 친구인데, 우연히 한 단계 건너서 만나게 됐지요.

이 친구 성향이 친노쪽이라고 들어서 저는 대충 친노에 대한 기존 인식을 갖고 이 친구를 대했습니다. 이쪽 일행 2명, 저쪽 일행 2명 그렇게 모두 4명이 술을 마셨지요.

이 친구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언급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대단한 운동권이었다고 생각하더군요.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선배, 동기, 후배들 모두가 그렇다는 건데..

그동안 만난 운동권 출신 가운데 이 친구처럼 묘한 느낌을 주는 친구는 처음이었습니다. 운동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꼴통 기질에 가까운 순수함도 없고, 이상주의자는 전혀 아니고... 딱 하나, 운동권들의 공통점인, 자기 주장 절대로 양보 안하는 것만은 분명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주장 강한 운동권들의 특성인, 자기 논리를 명백히 하는 것과는 또 거리가 있습니다. 자기의 주장을 하긴 하는데, 그게 어떤 성격의 것인지 즉,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경우 상대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비교적 빠르게 알 수 있는 방식이, 도대체 누구랑 비슷한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게 애매하더라구요. 나름대로 서프 등에 얼굴 내밀었던 노빠들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봤는데 이 친구는 그들에 대해 누구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더군요. 좀 이상해서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마음에 든다는 거냐고 물어봐도 도무지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않더군요.

분명 노빠이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은 확실한데 나름 알려진 노빠 논객 가운데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니... 김동렬도 싫고, 서영석도 싫고... 변희재나 공희준은 아예 사람 축에도 못 끼고...

나중에는 지루해져서 그냥 술이나 마시는데, 우연히 이명박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명박을 안주 삼아 씹어대는데, 이 친구가 느닷없이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하는 겁니다.

"이명박은 분명히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합법적으로 뽑아준 대통령이고, 불만이 있다 해도 그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명박이 뽑힌 것이야 마음에 안 들지만,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선택한 걸 어떡하라는 거냐"고 하더군요.

술이 확 깨는 느낌이더군요. 이 친구 얼굴을 비로소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구역질나게 생겼더군요(저는 사람 얼굴을 잘 보지 않습니다. 갈수록 그렇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제가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연관시키지 못했던 여러가지 사실들이 새롭게 연결이 되더군요.

아크로 제위께서 노빠들을 욕하는 단골 레파토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동영을 찍느니) 기호 0번 노무현을 찍겠다'느니 '찍을 사람이 없어서 등산을 갔다'느니 하는 발언들이죠. 저 역시 노빠들이 정동영을 비토한 데 대해서 참 기가 막힌 놈들이라고 판단해왔습니다만...

위에서 말한 저 새끼를 보면서 저나, 아크로 여러분들의 생각이 참 안이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기호 0번 찍었다느니, 등산을 갔다느니 하는 얘기가 모두 거짓말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저런 선택(기호 0번 등)을 한 친구들은 그나마 그런 사실을 인터넷에다 밝힌 사람 등 상대적으로 소수입니다. 그리고 실제 노빠들의 상대적 다수는 다른 선택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즉, 적극적으로 이명박을 찍었을 거라는 겁니다. 이명박에 대한 저 친구의 반응은 다른 원인에서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이명박을 찍었고, 그런 저신의 과거 행위에 대해서 여전히 합리화하고 있는 겁니다.

엄밀하게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2002년과 2007년 대선 득표를 비교해봐도 이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부산 경남의 표 가운데 정동영을 지지하지 않는 표들은 모두 기호0번을 찍거나 투표날 어디 놀러갔나요? 아니면 문국현을 찍었나요? 아니죠. 2002년에 노무현을 찍었던 부산경남의 표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이명박 찍었습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는 부산 경남 등에서 "영도다리 밑에 손가락이 무더기로 둥둥 떠다닌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았습니다. 김영삼 잘못 찍었다는 얘기였지요.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권에서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명박이 상대적으로 국정 운영을 더 잘해서? 김영삼에 비해서 지지도가 더 높아서? 아닐 것 같습니다. 설혹 그런 요인이 일부 있다 해도 잘린 손가락 운운하는 얘기가 안 나올 리는 없습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이명박을 지지한 행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런 소리는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왜 저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첫째, PK의 야권세력 편에서 담론을 생산 유포하는 그 주체들이 바로 이명박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담론 생산의 주체들은 PK의 친노들을 말합니다. 1992년 대선 당시 부산경남에서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김영삼을 지지하지 않았던 양심세력이 존재했고, 이들이 나중에 '잘린 손가락' 운운하는 담론을 만들어 유통시켰다고 봅니다. 설혹 김영삼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라도 해도 나중에는 정말 자신의 투표 행위에 대해서 '손가락을 자르고픈' 반성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7년에 부산경남의 그 양심세력들은 거의 일치단결해 이명박을 지지했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반성 내지 후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와서 '잘린 손가락' 운운하는 얘기가 나올 수 없는 겁니다.

결국 첫번째 이유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두번째 이유는 보다 현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노빠들은 자신들의 이명박 지지를 결코 반성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이런 행태를 합리화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미시적으로는 정동영 SOB 론 좀더 크게 놀면 홍어 몰살론일 겁니다. 즉, 이들이 자신들의 이명박 지지를 반성하지 않는 이유 아니 반성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문제가 정동영 등 호남 출신 정치인들 나아가 호남 정치세력 전반에 대한 세력 다툼 문제와 연결돼있기 때문입니다.

아크로의 친노 여러분 나아가 서프 등에 글을 올리는 친노 논객들이 모두 이명박을 찍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온라인에서 서로 얼굴 붉히며 다툰다 해도 이런 분들은 그나마 양심과 명분을 따지고 실제로 그 문제가 행동를 규율하는 정도가 강한 분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빠, PK 노빠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그 친구도 "서프 등에 단 한번도 글을 쓴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확신하게 된 것은 노빠들의 태반은 4년 전에 이명박을 지지했고, 그 핵심 이유는 바로 호남 출신 정치세력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며 현재도 자신들의 그런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으며 미안하지만 다음 대선에서도 비슷한 선택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들은 이명박이 이렇게 욕을 얻어먹을 줄은 몰랐을 겁니다. 자신들의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겁니다. 이들이 문재인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튼 이명박을 찍은 것은 그나마 정동영 찍은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고, 이명박이 이렇게 된 것은 별로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으며, 앞으로도 정동영이나 호남 출신이 되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유시민 아니면 문재인 아니면 안철수 그래도 안되면 다시 유시민 그래도 안되면 다시 문재인 그래도 안되면 다시 안철수 그래도 안되면... 이렇게 되다는 겁니다.

이름(필명 포함) 걸고 노빠질하는 친구들이야 어쨌든 노골적으로 홍어드립 장사는 못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노빠들이야 어차리 자기 이름 걸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니 아쉬울 것도 없고 부담도 없습니다. 그저 딱 하나 '깨어있는 시민들'이라는 싸구려 신분증 하나면 모든 게 만사형통 프리패스죠. 얘네들이 민주통합당의 의사 결정에서 당원 자격이나 다른 자격 다 필요없고 오직 깨어있는 시민들이라는 요구만 주구장창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얼굴은 가리고 아랫도리는 드러내고 이웃마을 쳐들어가서 유부녀들 마음껏 농락하겠다는 심리죠.

하여간, 기호0번, 선거날 등산 간 것, 문국현 지지 등등... 모두 사기의 혐의가 짙습니다. 얘네들의 진짜 속셈과 범죄 혐의는 다른 곳에 있는데, 닝구들은 얘네들이 버퍼용으로 만들어놓은 엉뚱한 허수아비를 매질하는 셈입니다. 얘네들의 본질은 기호0번이나 등산에 있는 게 아니구요, 문국현 지지에 있는 것도 아니구요... '정체'는 감추고 실제 '정치'는 한나라당과 한통속으로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