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괄호 속 내용은 김제동 고발인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일반 평범한 국민이 김제동씨의 트위터의 글이 현행법상으로 허용되는지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유감스럽게도 고발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고발한 사건이 검사님에게 배당이 되었지만 “혐의없음” 불기소처분이 내려질 수 있고, 만약 기소가 되더라도 어떤 "법률적 양심"을 가지신 판사님에게 사건이 배당되느냐에 따라 무죄가 될 수 있고 가능성이 낮겠지만, 유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만약에 유죄가 되더라도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검사님의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은 법원의 재판도 거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최종적으로 김제동씨의 행위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행위라고 밝혀진다면 공직선거법이 더 엄격하게 개정되지 않는 한, 앞으로는 그와 유사한 행위로는 처벌되지 않는다는 선례로 남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구나 자유롭게 트위터를 통해서 선거 당일 그런 식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표현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또한 김제동씨의 정치적인 발언 때문에 등을 돌리셨던 분들도 김제동씨를 이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1. 이 문제를 살펴 보기 전에 먼저 짚어 보고 가야 할 질문이 있다. 인간의 자유는 국가가 제정하는 헌법과 법률을 통해서 비로소 구성되고 만들어 지는 것인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정치적 자유와 도덕적 권리가 먼저 존재하고, 그 자유를 더 확립하고 보장하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만들어 지는 것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의 자유는 국가 권력이 당신에게 쥐어준 것이고, 경우에 따라 그 자유를 회수해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 허용되는 나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먼저 국가 권력에 조회해야 하는 것인가?


 2. 자세한 입법사에 대해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현행 공직자 선거법의 원형은 80년대 후반, 각 정치 진영, 정파간의 유권자에 대한 매표 행위, 음성적으로 형성된 정치 자금력을 동원한 각 후보 진영의 조직적인 선거 동원이 활개를 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금권 선거와 조직 선거가 가능했던 이유, 즉 각 후보가 가진 돈과 조직이 선거 국면에서 일반 대중의 정치적 의견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후보 진영에서 조직을 집단적으로 동원하는 것 자체가 나빴다기 보다는 그 조직을 통해 상대 후보에 대한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가 일반 유권자들에게 여과 없이 퍼져나갈 수 있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여론 조작이 가능했던 까닭은 주지하다시피 그 당시에는 선거 대중들이 공적인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언론 채널 자체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 그런 상황 하에서 선거 부정으로 부터 유권자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정치적 의견 형성> 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공선법 (구 공직 선거 및 부정 선거 방지법> 은 <돈은 묶되, 입은 자유롭게 풀어 준다> 는 대원칙을 표방하게 된다. 돈을 묶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조직적으로 왜곡된 정보의 유통을 통하여 유권자 각자의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 자율적인 정치 여론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고, 입을 풀어주는 이유는 돈과 왜곡된 정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발언들은 원칙적으로 그것이 유권자 자신의 정치적 양심에 기초한 의견으로 간주될 수 있고, 또 그렇게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문제는 80,90년대에 정치적인 의견이 형성되는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판이하고, 인터넷 시대에 접어든 2000년대 초반의 상황과도 매우 다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데서 시작한다. 지배적인 주류 언론과 정치 자금력이 공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그 당시와는 달리, 이제는 sns 같이 무한히 수평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그물망 네트워크와의 결합을 통해 유력한 사회 저명 인사의 의견에 더 많은 정치적인 비중이 실리는 시대가 되었다. 몇몇 소수 오피니언 리더의 의견의 정치적인 비중은 이미 주류 언론의 힘과 맞먹거나 그것을 압도하고 있다. 이것은 20년 전의 언론 환경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그들은 80년대 초반이나 90년대 초반의 상황이었다면 대규모의 자금 동원과 주류 언론의 대대적인 여론 투입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일들을 지금 단기 필마로 해내고 있다.   


5. 공직자 선거법을 만들던 당시 입법자들이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당 법을 유권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기관인 선관위의 유권해석이나 판례 속에서 제시된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도출된 해석 지침을 일반 유권자들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론 수긍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공직자 선거법이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바, 즉 <자유롭고 공정한 정치 여론의 합리적인 형성>이 현행 선거법의 운용틀 내에서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다. 특히 현행 선거법이 sns 로 대표되는 지금의 새로운 언론 환경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만들어 진 법률이기 때문에, 일반 유권자들도 현행 선거법에 관한 법률 기관들의 해석을 단순히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행위의 척도로 삼으려는 것을 넘어서서 입법자의 관점에서 공선법의 입법 취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려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6.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을 살펴 보도록 하자. 다음은 아고라에 올린 김제동 고발인의 글 중에서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의 의견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59조를 보면 "선거운동은 선거기간개시일부터 선거일 전일까지에 한하여 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대체 선거운동이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대법원은 선거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선거운동은 특정 후보자의 당선 내지 득표나 낙선을 위하여 필요하고도 유리한 모든 행위로서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를 말한다”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그리고 선거일에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습니다. 선거 당일의 선거운동은 유권자의 선택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이를 허용할 경우 후보자들에 의한 무분별한 선거운동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금지하여 선거 당일의 평온·냉정을 유지함으로써 투표권 행사가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게 하고 선거 당일의 선거운동에 의하여 선거인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대법원의 그 견해가 실린 판례를 검토해 보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제시된 대법원의 견해를 액면 그대로만 이해해 본다면 매우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만약 선거 운동이 <...특정 후보자의 당선 내지 낙선을 위하여...필요하고도 유리한 모든 행위이고.. 그 목적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 계획적 행위>라면, 그 행위 주체는 누구인가? 후보 진영에 속한 선거 운동원만을 뜻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반 유권자들도 포함하는 것인가? 만약 후자도 포함하게 된다면 대법원의 이러한 해석은 헌법에 보장된 정치적 의견 형성, 표현의 권리를 선거 국면 종료일, 즉 선거 당일 하루에 한해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선거법은 투표 당일에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이 일제히 정치적인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호주머니가 아니라 사람의 입에도 재갈을 물리는 것은, 그것이 왜곡된 정보의 유통을 통해 정치적인 의견의 합리적인 형성을 악의적으로 방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오로지 그러한 이유에서만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 재판소는 이 점에 있어서 대법원보다는 보다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선거 당일에 선거 운동이 금지되는 주체는 후보자 진영의 선거 운동원에 제한된다는 것이다. 


7. 선거법의 일차적인 존재 이유가 선거 국면 동안 일반적인 유권자들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권리를 제약하고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거에 직접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선거 당사자들, 즉 공직에 입후보한 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 여론을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규제하고 제거하고자 하는데 있다라는 점을 주시하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선거 기간 동안, 혹은 선거 당일에 일반 유권자들에게 어떠한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고 허용되는지를 묻는 것은, 그러므로 주객이 전도된 질문이다. 왜냐하면 선거를 통해 공중이 자유롭게 표출한 정치적인 의견을 정확하게 제도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것이 선거 제도, 아니 민주주의 자체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고발인은 자신이 김제동을 고발한 이유가 선거법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공익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치뤄야 하는 댓가가 타인의 정치적 자유라는 것에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8. 선거법의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한 인간의 정치적인 의사 표현의 자유를 법정으로 소환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투표 독려를 트위터 인증샷을 통해 하든, 트위터에 문자로 게시된 활자 언어를 통해서 하든 그 방법을 택하는 것에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단 말인가? 솔까말, 김제동이 투표 당일에 노골적으로 박원순에게 투표하라고 트위터질을 하던, 어버이 연합의 어떤 어르신이 나경원에게 표를 안주는 사람들은 모두 매국노라고 트위터질을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게 당신의 정치적인 입장과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의 감정 이외에 당신의 정치적인 감수성과 당신의 정치적인 판단 형성에 끼치는 악영향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단순히 법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소중한 정치적인 권리가 국가 권력에 의해 휘둘려져도 상관 없다는 당신의 그 사고 방식과, 단지 한표를 통해 모두에게 부여된 소중하고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자고 외치는 김제동의 사고 방식 - 딱 한 마디만 더 하자. 김제동이 언제 나경원 지지자들은 제발 투표장에 나오지 말라고 트위터질을 한 적이 있었던가? - 중 어떤 것이 더 폭력적인 것인가? 


9.  4년간 법학을 공부하셨다는 그 고발인에게 한 마디 마지막으로 더 드리자면, 형사 소송법 시간에 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라는 형사 절차법상의 대 원칙을 익히 들어보셨으리라고 믿는다. 이 원칙과 비슷한 역사적 깊이를 가지고 있고, 고대 로마인들이 존중했던 법 원리가 하나 있다. 인두비오 프로레오 원칙만큼 유명해 지지는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존중 받을 가치가 있는 법원리다. In dubio pro libertate!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에 유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