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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몸이라는 것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한참 개구장이 짓을 할 시절 내 몸은 언제나
서 너 군데의 상처가 나있었다. 칼에 손을 베이거나 넘어져 무릎이나 팔
꿈치가 까지거나 문갑같은데 손가락끝을 짓눌려 손톱이 빠질 지경에 이
르거나 심지어는 편을 갈라하는 돌팔매질 싸움 등으로 머리가 깨지는 경
우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코피가 나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렇게 상처를
달고 다니며 피를 안보는 날보다는 보는 날이 더 많았건만 바로 그때문
인지는 몰라도 육체의 아픔이란 그렇게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싫지만 친숙한, 언제나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이웃이었다.
그것은 신명나게 골목과 들판과 물가를 헤집고 다니려면 불가피한, 따라
서 용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일종의 훈장같은 것이었
다.

육군장교이셨던 아버지의 진짜 철모와 진짜 권총을 휘두르며 골목대장
노릇과 철교 위에서 노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어느땐가부터 얌전해 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변한 환경 속에서 책들과 사춘기의 이상야릇한 고독이
나를 방안에 붙들어 맸다. 격렬한 리듬은 근육보다는 한갖된 상상력과
헤비 메탈의 몫이 되었고 체육시간은 기피 대상 1호가 되었다. 나는 병
아리처럼 연약해졌고 내 몸에서는 동물보다는 식물의 냄새가 났다. 고
기류는 거의 어떤 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나는 둔중한 몸집을 경멸했고
모든 마르고 가느다란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쾨니히스베르크를 한
평생 떠나지 않고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알고있었다는 칸트가 나의
영웅이 되었다.

어쩌다 아주 드믈게 몸에 상처가 나서 피를 보게 될 때, 내 몸에 흐르
는 것이 피가 아니라 수액이기를 바랬던 나에게 그것은 아주 신기한 동
시에 유감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상처가 나거나 몸의 어느 구석인가
가 아플 때를 제외하면, 혹은 목욕을 하면서 스스로의 앙상한 벗은 몸을
응시하게 될 때가 아니라면 나는 대체로 내가 마음 말고도 몸도 지닌,
물질적 존재라는 것을 잊고 지내는 편이었다. 따라서 몸을 단련한다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남들은 다 20점을 맞는 체력장에서 16
점을 맞아 바로 그 점수차로 결국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도 그것은 별로
심상한 경험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 4점만큼 나는 책을 더 읽었고 시를
쓰지 않았는가 말이다!

대학에서의 첫 해 거의 타의로 지리산 등반을 처음 하던 날 결국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같이 등반했던 친구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인구에 회자
되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천왕봉을 한 300미터 앞두고 나
는, 배낭 속에 든 무거운 것들을 다 내버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아예 배
낭을 선배한테 내맡기는 것을 거쳐 급기야는 그렇게도 질색하던 네발 달
린 짐승이 되고 말았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먼저 오른 일
행들이 벼랑가에서 한창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에야 거의 탈진 상태에서
좇아 올라가서는 정신없이 일행들이 모아 놓은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들
었던 것이 그만 석유병이었던 것이다. 그 몇 모금의 석유는 남은 2박 3
일 동안의 등산 여정 내내 내 속을 괴롭혔다.

다시 개구장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나는 내 몸의
활동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인간이 근육을 가진 존재라는 것
을, 자연 속에서 노동과 운동과 유희를 통해, 그리고 때로는 그 과정에
서 육체가 겪는 고통과 상처에 즐거이 동의 하면서, 근육을 적절한 강
도와 리듬으로 움직이는 데서 동물로서의 본능적 쾌락 뿐 아니라 인간적
인 지고의 무사심적 쾌락 또한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나는
또한 이렇게 몸의 본질을 완전히 경험하는 생활만이 몸을 부당한, 자질
구레한 고통들로부터 해방시키고 - 실은, 내 자신이 식물적인 삶에 충실
했을때보다 더 내 몸이 나를 괴롭힌 적은 없었다. 온갖 영양부실로 인해
내 몸은 끊임없이 시달렸다 - 타인들의 고통에 민감한 정신을 만든다고
믿는다.

현재 우리를 가두고 있는 문명은 멀쩡한 허우대에 축늘어진 근육을 보
급하는데 일가견을 갖고 있다. 몸은 위험스럽기도 해야할 모험의 주체로
서보다는 지극한 정성으로 보호하고 가공해야 할 보험물로만 취급된다.
몸은 그 어느때보다도 편해졌고 사람들은 대체로 육체적 고통을 대중매
체를 통해서만 이해한다. 한편에서의 자신의 몸으로 겪는 생생한 고통의
경험의 결여는 다른 한편에서의 타인들의 육체적 고통에 대한 무사심적
즐김으로, 그 고통을 낳는 폭력의 극적인 심화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문명 속에서 나는 언제나 그 타인이 될 수 있다. 그 순간에만, 그리고
실제로는 삶과 하나인 육체적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고 잘못 느끼
는 그 순간에만 사람들은 인간적 몸이 된다. 확실히 바람직하지 않은 문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