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소비자 연대(http://cafe.naver.com/bunsoyun)에 있는 글들과 댓글들을 보면 이 글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아래 글을 보아야 한다(저작권 문제 때문에 카페에 가입해야 볼 수 있다).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 1(이덕하 + 노승영 + 원문)>

http://cafe.naver.com/bunsoyun/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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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문의 정보를 100%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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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정보를 100% 옮기는 번역은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번역을 조금만 해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번역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는 정보가 누락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번역자의 재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단어--단어 번역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나는 이런 것들을 부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내가 정보를 100% 옮겨야 한다고, 어떤 누락이나 왜곡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모든 단어를 다 그대로 살려서 번역해야 한다고, 번역가의 재량은 조금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내가 노승영 씨와 다른 많은 번역가들에 비해 축자역이나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고 있긴 하지만 극단적인 축자역이나 직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Rawles: Then you realize that with nighttime lows in the single digits and daytime highs in the twenties, if the power isn’t restored by the time you get home from work, it will be very cold in the house.

노승영: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에 머물러 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전력이 복구되지 않으면 무척 추운 밤을 보내야 한다.

이덕하: 그 때 요즘에는 밤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고 낮 최고 기온도 영하권이기 때문에 만약 직장에서 집에 돌아올 무렵까지도 전력이 복구되지 않으면 집안이 아주 춥겠다는 생각이 든다.

 

nighttime lows”는 복수형이다. 극단적인 축자역을 추구한다면 “밤 최저 기온들”이라고 번역할 것이다. 나는 복수형을 그대로 살리는 대신 요즘에는을 삽입해서 번역했다.

 

나는 “in the single digits”화씨로 한 자리 수이며라고 번역하지 않았다. 만약 1도의 차이도 중요한 공학 논문이라면 그런 식의 축자역이 더 나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에서는 아주 춥다는 이야기이므로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고로 번역한 것이다.

 

나는 “you”여러분은또는당신은이라고 명시적으로 번역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어에서는 흔히 주어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나는 “realize”깨닫는다가 아니라생각이 든다로 번역했다.

 

 

 

실수나 실력 부족 때문에 생긴 심각한 누락이나 왜곡을 오역이라고 한다. 이 때 어느 정도 심각해야 오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가독성이나 문화적 차이 등 때문에 의도적으로 다르게 번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정도가 어느 정도 이상이면 번역(좁은 의미의 번역)이라고 부르지 않고 번안, 축약 번역, 편역(편집 번역) 등으로 부른다. 이 때에도 그 기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서로 다르다.

 

이런 기준들과 관련하여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대체로 엄격한 것 같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이 오역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들도 내가 오역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엄격한 것과 100%를 추구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AA보다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B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것이다. 물론 B보다 상대적으로 덜 엄격한 C에 비하면 B도 상대적으로 엄격한 것이다.

 

이런 기준들에 대한 논란은 도덕 규범에 대한 논란처럼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정당화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남의 기준을 무작정 존중해 주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A의 기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AB의 기준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것은 또한 BC의 기준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다수결이나 논리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 자신의 입장이 옳다고 우길 수밖에 없는 상황 같다.

 

 

 

정리를 해 보자.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번역가의 재량을 인정한다. 나보다 원문에 덜 충실하게 번역한다는 이유만으로 “오역이다”, “번역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락과 왜곡의 정도가 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심하다고 생각할 때 그런 식으로 비판할 뿐이다.

 

논의의 편의상 유치한 수치화를 해 보자. 나는 원문의 정보를 100%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원문의 정보를 98~99% 정도 옮기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좁은 의미의 번역으로 인정 받으려면 원문의 정보를 95% 정도는 옮기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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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번역 실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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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번역 실력, 특히 한국어 문장력이 형편 없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조롱에 대해 나에게는 변명거리가 하나 있다. 노승영 씨가 번역한 책으로 소위 “번역 배틀”이라는 것을 하기로 한 것이다. 노승영 씨는 책 전체를 읽을 수 있었고 출판을 위해 번역했다. 만약 노승영과 이덕하의 번역 실력을 비교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것은 분명히 불공정한 대결이었다.

 

하지만 노승영 씨는 번역가의 재량에 대한 논쟁을 실제 번역을 통해 이어나가자고 제안했으며 나 역시 그 제안에 동의했다. 그리고 텍스트를 하필이면 노승영 씨가 번역한 책으로 정한 이유는 단순히 저작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번역 기간을 15일로 정한 것은 나였다. 그리고 기간이 일주일이나 남았음에도 초벌 번역을 마친 후 단 하루 동안만 급하게 손 본 다음에 인터넷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도 나였다. 그 결과 많은 오역들과 덜 다듬어진 번역문 때문에 조롱을 당한 것은 순전히 내가 자초한 일이다.

 

지금 와서 말해봐야 별 소용이 없을 수도 있지만, 충분히 시간을 투자했다면 그것보다는 더 잘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번역을 비판하는 사람이 오역이나 이상한 문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성의와 시간이 부족해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나의 번역 실력이 부족해서 생긴 것인지 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내 사정이다. 비판자는 비판만 하면 충분하다.

 

 

 

내 번역문은 노승영 씨의 번역문보다 읽기가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 자체에만 주목하는 것 같다.

 

번역 실력과 투자한 시간이 같다면 원문에 더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하면 할수록 한국어 문장이 더 꼬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단지 원문 문장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두 문장으로 잘라서 번역하지는 않는다. 웬만하면 한 문장을 한 문장으로 번역하려고 한다. 나는 원문의 어려운 표현을 굳이 쉬운 표현으로 풀어서 번역하지 않는다. 평범한 미국 성인이 사전이나 백과 사전을 찾아가면서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원서라면 그 번역서의 난이도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문이 건조하고 딱딱하다면 굳이 부드러운 문체로 바꾸어서 번역하지 않는다. 건조함과 딱딱함조차 살려서 번역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사 나의 번역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나의 번역이 상대적으로 읽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나의 번역문이 읽기 불편하게 만들어진 이유를 문장마다 따로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은 성의 부족이나 번역 실력 부족 때문일까? 아니면 원문을 노승영 씨보다 더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했기 때문일까?

 

만약 나의 번역이 읽기에 더 불편한 대신 원문에 더 충실하다면 노승영 씨의 번역에 비해 열등하다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양쪽 번역에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 독자의 편의를 위해 손을 본 번역만큼 읽기 편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가독성을 희생하는 대신 원문 충실성을 얻을 수 있으며 원문 충실성을 얻기 위해 가독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전략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나의 문장력이나 번역 실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번역만큼이나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내 번역문보다 훨씬 나은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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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하의 방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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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직역에 가까운 나의 방식으로 번역하기가 아주 쉽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냥 영어 단어를 한국어 단어로 대치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나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해석에 불과하며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나의 방식대로 번역을 한 번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은 무엇인가?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첫째, 원문을 정확하고도 정밀하게 이해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특히 학술 번역의 경우에는 전문 지식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주로 학술 번역서들을 비판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한 것이었다.

 

그냥 혼자서 책을 읽을 때에는 열 문장 중 한 문장 정도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만약 어떤 번역서에서 열 문장 중 한 문장 꼴로 오역이 나온다면 개판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나는 10쪽당 오역의 수가 1개 이하여야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번역하려면 10쪽을 읽으면서 한 문장 정도 빼고는 모두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지극히 쉬운 텍스트가 아니라면 이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둘째, 원문의 문체를 살려야 한다. 만연체는 만연체로, 간결체는 간결체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원문의 난이도와 분위기도 살려야 한다. 라틴어 계열의 딱딱하고 어려운 단어는 한자어로, 편한 영어 단어는 순 우리말로 옮기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원문이 건조하면 번역문도 건조해야 하고 원문이 맛깔스러우면 번역문도 맛깔스러워야 한다.

 

셋째, 원문의 뉘앙스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많이 쓰이는 단어의 경우 영한 사전만 봐도 번역어로 쓸 만한 단어가 수십 개는 나온다. 물론 영한 사전에만 매몰되어서 번역해서는 안 된다. 원문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단어를 사냥하는 일은 원문에 더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넷째, 한국어와 영어 문장 차이와 관련된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있다. 영어에 비해 한국어에서는 수동태를 잘 안 쓴다. 그렇다고 무작정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어서 번역하면 문제가 생긴다. 수동태 표현과 능동태 표현의 뉘앙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통 주어가 더 주목을 받기 때문에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 만약 이런 강조 효과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좀 어색하더라도 수동태로 번역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다섯째, 원문의 이미지나 비유의 흐름을 살려야 한다. 학술서에서도 이런 흐름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만 원문에 충실한 번역문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다.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한다면 훨씬 더 어려워진다.

 

번역기를 처음 개발할 무렵에 인공 지능 연구자들이 번역이란 한 언어의 단어를 다른 언어의 단어로 대치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만간 인간 번역가에 버금가는 번역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환상은 실제로 번역기를 개발해 보면서 무참하게 깨졌다. 그 이유는 위에서 나열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려면 사실상 사람만큼 생각할 줄 아는 컴퓨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글들은 이번 번역 비교가 있기 전에 올린 것이다. 내가 번역을 할 때 아무 생각도 없이 하는 것이 아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인 것 같다.

 

<영한 학술 번역 첫걸음마 --- 03. The blank slate』에서>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HFl/82

 

<영한 학술 번역 첫걸음마 --- 04. The origins of virtue』에서>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HFl/83

 

<영한 학술 번역 첫걸음마 --- 06. The selfish gene』에서>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HFl/85

 

<영한 학술 번역 첫걸음마 --- 07. The rational optimist』에서>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HFl/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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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비교 이벤트를 몇 번 더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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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번역 비교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여러 잡음이 있긴 했지만 노승영 씨의 의도대로 된 것 같다. 즉 번역가의 재량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으로 이어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나의 번역관에 대해 단지 추상적인 말이 아닌 실제 번역 사례들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번역 소비자 연대>에 가입한 700여 명만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번역서를 출간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안한다면 앞으로 적어도 세 번은 번역 비교에 응할 생각이다(문학 번역, 영상 번역 등은 제외). 이번에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텍스트로 정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올리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

 

번역가들이 어떤 번역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번역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 준다면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며 독자들도 한국의 번역계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논쟁이 생산적으로 진행된다면 각 진영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도 좀 더 확실히 드러날 것이다.

 

 

 

이덕하

201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