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사회 게시판
* 월간 <인물과 사상> 1월호가 출처라는데, 언제 1호인지 리뷰어가 누군인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꽤나 글발 쎈 리뷰이고 이런 리뷰의 대상이 되었으니 책도 꽤나 읽을 만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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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 투쟁의 무기, 화해의 손길
하승우 지음 『희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 (책세상 펴냄, 2003)
한국에 들어와 왜곡되어 사용되는 ‘톨레랑스’
한 양심적 지식인이 있었다. 그는 조국이 독재의 군홧발 아래 신음하고 있을 때 거기에 저항하다 쫓기는 몸이 되고, 이역만리에서 배회하는 망명객이 됐다. 갈 곳 없는 그를 프랑스라는 ‘인자한’ 나라가 받아주었다. 거기에서 그는 자식들을 키우고, 사람대접을 받고, 직업을 얻을 수 있었다. 15~16년 뒤, 그는 자신을 내친 조국을 향해 책 한 권 분량의 메시지를 발신했다. 제2의 조국이 된 프랑스 땅에서 제1의 조국을 잊지 못해 부른 망향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그 망향가의 가락을 타고 낯선 단어 하나가 이 땅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톨레랑스. 자신을 받아준 나라에 오래 깃들여 살면서 그가 몸으로 느낀 그 나라의 정신, 삶의 밑자락에 깔린 기본 정신이 톨레랑스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깊이 느낄수록 자신의 탯줄을 묻은 나라의 야멸차고 황량한 정치적 풍경이 도드라져 보였다.
톨 레랑스를 삶의 화두처럼 붙들고 깊이 고민했던 그는 2002년 벽두에 어머니의 나라로 아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귀국을 천후로 하여 두 권의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더 썼다. 조국의 현실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한 신문칼럼을 모아 『빨간 신호등』이라는 이름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 의 진지함, 그의 열정, 그의 성실성에 힘입어 그 사이 톨레랑스는 이제 웬만한 식자면 한두 번쯤 숙고해본 반(半)한국어 단어가 됐다. 톨레랑스가 한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반듯한 척도이자 그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었던 건 거의 전적으로 그의 노력 덕이었다. 최소한, 그가 없었다면 톨레랑스는 한국의 현실에서 ‘문제적 개념’이 되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러나 그렇게 사회적 지위를 얻은 톨레랑스가 그 말의 본디 뜻을 왜곡당하지 않은 채로, 그 풍부한 함의를 온전히 간직한 채로 쓰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로 된다던가. 톨레랑스라는 귤이 일그러지고 쭈그러들어 탱자가 될 가능성은 확실히 존재한다.
『희 망의 사회 윤리 똘레랑스』의 지은이 하승우는 그 가능성이 현실성이 됐다고 본다. 그는 말한다. “톨레랑스는 논쟁이나 환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서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용어로 전락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이성적으로 논쟁할 것을 요구하는 톨레랑스가 논쟁을 얼버무리거나 대립하는 가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변했다. 나를 다스리는 기준이어야 할 톨레랑스가 남을 비방하는 기준으로 변질됐다.”
그의 말이 맞다면, 우리는 톨레랑스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톨레랑스를 그 기원에서부터 찬찬히 되짚어 본다면, 그 용어가 지닌 정신과 더불어 그 한계도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종교 개혁기에서 산업 혁명기까지, 태동과 의미의 변천
톨 레랑스는 흔히 우리말로 ‘관용’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관용이 톨레랑스의 본디 의미를 정확히 옮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톨레랑스는 라틴어 ‘tolerare’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참다’ ‘견디다’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톨레랑스는 관용이라는 다소 권위주의적인 뉘앙스가 깃든 말보다는 ‘견딤’이나 ‘용인’으로 옮기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 불편한 것,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것, 마땅찮은 것을 참고 견디고 받아주는 것이 톨레랑스인 것이다. 톨레랑스가 근대적인 의미를 띠고 등장한 때가 종교개혁기인 16세기다. 그때 기독교의 두 파, 곧 구교와 신교는 서로 자신들이 신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 있다며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였다. 프랑스에서 그 싸움은 1572년 성 바도롤매 축일의 대학살로 결정적 국면에 이르렀다.
당 시 프랑스왕의 어머니였던 카드린 드 메디시스의 음모에 따라 구교도들이 신교도들을 학살했다. 파리에서만 3천여 명의 신교도가 죽었고, 프랑스 전역에서 2만 명가량의 신교도가 희생당했다. 신교도들은 생존을 위한 반격을 시작했고 종교전쟁의 불길은 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않았고, 서로가 자신들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혈이 멈출 길이 없었다. 광신이 이성을 압도하는 이런 상황에서 톨레랑스는 종교 간의 화해와 용인의 정신으로, 광기를 다스리는 이성의 빛으로 등장했다. 그 뒤 톨레랑스는 교회권력이 약화되고 세속권력이 강해지면서, 특히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을 거치면서 종교적 의미에서 사회적 의미로 퍼졌다.
톨레랑스를 살아 있는 용어로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초기 사상가로 지은이는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존 로크, 18세기 프랑스 계몽 사상가 프랑수아 마리 드 볼테르, 19세기 영국 자유주의 사랑가 존 스튜어트 밀을 꼽는다.
로크는 ‘톨레랑스에 관한 서한’에서 정부가 종교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했다. “어떠한 권력도 개인이 구원을 포기하도록 강요할 수 없고, 설사 대중이 동의했다 하더라도 그런 믿음의 문제는 위임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사회의 법을 침범할 수 없다. 파문을 빌미로 삼아 개인의 재산을 빼앗을 수 없고, 어떠한 개인도 종교를 이유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없다. ……이처럼 로크는 공과 사, 속세와 내세를 분리해서 톨레랑스를 확립하려 했다.”
로크의 정치사상을 이어받은 볼테르는 저 유명한 『관용론』(‘톨레랑스에 관한 논문’)을 써 시대의 불의에 맞섰다. 그는 1762년 신교도 장 칼라스가 가톨릭 신자인 아들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아 죽임을 당하자, 사건의 진상을 독자적으로 조사해 마침내 프랑스 국왕의 국무회의 재판부에서 재심판결을 끌어냈다. 『관용론』은 그 투쟁의 결과물이다.
볼테르에게 『관용론』을 쓰게 만든 칼라스 사건은 톨레랑스의 고전적인 정의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장 칼라스가 살았던 프랑스 남부 톨루주는 시민의 대다수가 신교도에 적대적인 가톨릭교도였다. 말하자면, 장 칼라스 가족은 가톨릭의 바다에 외로이 떠 있는 섬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들 마르크 앙투안은 변호사가 되고 싶었으나 신교도라는 이유로 좌절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몰려든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앙투안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칼라스 가족이 그를 죽인 것이라고 소리쳤고, 이 근거 없는 소문은 툴루주 시민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맹신과 편견에 사로잡힌 재판부는 가혹한 고문 끝에 칼라스 가족의 무죄항변을 무시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이런 상황을 안 볼테르는 스스로 발품을 팔아 진상을 밝히고 “광신에 눈이 멀어 죄를 범한 쪽은 재판관들인가 아니면 피고인들인가?”라고 외쳤던 것이다.
볼테르의 뒷세대인 밀은 자본저의의 진전에 따른 엄청난 빈부격차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분노로 터져나오던 시대에 『자유론』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적 불만과 고통의 해결책으로 톨레랑스를 내세웠다. 그는 톨레랑스의 이름으로 여론의 억압을 비판하고 소수의 권리를 옹호했으며 언론 ․ 사랑 ․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밀을 통해 톨레랑스는 종교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사회 속의 원리로 자리 잡았고 수동적인 방어가 아니라 적극적인 요구의 의미를 얻게 됐다. 이제 톨레랑스는 자신의 삶과 환경을 주체적으로 통제하는 자유로운 개인의 신념으로 변했다.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앵톨레랑스는 사회정의를 막는 장애물이다. 밀에게 톨레랑스는 개인의 자유 실현뿐 아니라 사회의 화합과 진보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었다.”
제1의 기본 원리는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부정’
그렇다면 톨레랑스를 구성하는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은이는 톨레랑스의 기본 원리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미국식 톨레랑스라 할 ‘톨러런스(tolerance)’의 의미를 명확히 함으로써 톨레랑스의 함의와 대립시킨다.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톨러런스는 차이를 드러내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원리가 아니라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을 가리킨다. 톨러런스는 사회윤리가 아니라 경제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톨러런스는 경쟁하는 이익들 사이의 타협을 수용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톨러런스는 갈등하는 이익을 조절하는 ‘도구’이지 공공선이나 정의를 위해 사회를 다시 짜는 원리가 아니다. 요컨대, 톨러런스는 타협을 추구하는 관용인 셈이다.
이와 달리 톨레랑스는 사회를 적극적으로 바꾸려 한다. “톨레랑스는 대립하는 주장과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주장을 위해 서로 격렬하게 논쟁한 후 도저히 상대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지면 별수 없이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톨러런스와 마찬가지로 톨레랑스도 이성적인 관용이다. 하지만 톨레랑스를 실천하는 것은 ‘냉정한 계산’이나 ‘적절한 선에서의 타협’이 아니라 ‘정의’와 ‘연대’를 강조하는 ‘뜨거운 이성’이다.” 다시 말해, 톨레랑스는 정의를 위해 서로 연대하는 관용인 것이다.
이 톨레랑스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 가운데 지은이가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이 ‘인간의 완전함에 대한 부정’이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는 명제는 톨레랑스의 전제조건이다. 신의 능력인 완전무결과 전지전능을 상정한다면 톨레랑스는 설자리가 없다. 누군가가 진리를 꿰뚫고 있다면, 필요한 것은 그 진리를 어떻게든 관철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거나 그의 불완전한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완전함을 부정하기에 톨레랑스는 회의주의를 좋은 동반자로 여긴다.” 자신의 믿음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톨레랑스가 발현되는 마음자리다. 『똘레랑스』라는 책을 쓴 20세기 저술가 헨드릭 빌렘 반 룬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귀 기울일 만하다. “세상에 있는 유용한 물건들은 모두 합성된 것들이다. 나는 신념만 예외가 돼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확신’이 그 기반에 적정량의 ‘의심’이라는 불순물을 함유하지 않는 한, 신념은 순수한 은으로만 된 종처럼 서투른, 혹은 순수한 동으로만 만든 나팔처럼 거친 소리를 낼 것이다.”
룬이 말한 자기 의심은 사회적으로는 타자와 소수의 목소리에 눈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우리가 억압하려 애쓰는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정도로 확신할 수 없으며, 설사 그렇게 확신한다 하더라도 그 의견을 억압하는 일은 여전히 악일것이다. ……일체의 토론을 억압하려는 것은 자기의 절대 무오류성, 곧 절대로 자기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밀은 19세기 영국 사회의 불관용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지만, 그의 경고는 국가보안법을 신주처럼 모시며 기득권 보위를 위해 발버둥치는 수구반 공주의 세력의 나라인 오늘의 한국에도 별다른 수정 없이 적용할 수 있다. 아니, 개혁이나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완고한 불관용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선을 독점한다고 믿으며 상대방을 악으로 몰아붙이고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정치행태에 톨레랑스는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억압적 앵톨레랑스와 불평등에 맞서 싸울 ‘도덕적 의무’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극단을 거부하는 태도’는 톨레랑스의 또 다른 원리다. “밀이 보기에 가장 자유로워야 할 영역은 인간 의식이었다. 의식이라는 인간 내부의 영역은 양심의 자유, 곧 사상과 감정의 자유, 사색 ․ 과학 ․ 도덕 ․ 신학의 모든 문제에 관한 의견과 감정의 절대적인 자유를 요구한다.”
더 중요한 것은 극단에 대한 앵톨레랑스(불관용)이다. 이것이야말로 톨레랑스의 역설이다. 톨레랑스해야 할 것들을 톨레랑스하지 않는다면, 톨레랑스는 그 앵톨레랑스와 싸워야 한다. 이를테면, 톨레랑스가 싸워야 할 앵톨레랑스는 이런 것이다. “네 생각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라서 네 생각을 파괴하고 네가 쓴 책을 불태우고 나아가 너를 없애겠다.”
이 극단주의의 전형을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그것은 지역(차별)주의로 나타난다. 이런 반이성적 극단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톨레랑스는 앵톨레랑스를 속에 품고 있다. 톨레랑스를 무한정 인정해주면 앵톨레랑스에도 자유를 허용하게 되어 톨레랑스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역설이 생긴다. 따라서 톨레랑스를 지키기 위해 앵톨레랑스는 필수적이다.
“톨레랑스 속에 담긴 엥톨레랑스는 이성적인 반대를 뜻한다. 이때의 앵톨레랑스는 어떤 것은 더는 받아들이면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럴 수 없음을 의미하며, 특정한 상황에서 도덕적 의무를 뜻하기도 한다.” ‘도덕적 의무인 앵톨레랑스’는 비이성적이고 근거 없는 억압적 앵톨레랑스의 확산과 활보를 저지하는 투쟁의 거점이다. 톨레랑스를 실천하는 사람은 반드시 억압적 앵톨레랑스와 맞서 싸워야 할 도덕적 의무를 스스로 진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톨레랑스의 셋째 원리는 ‘폭력을 거부하는 이성적인 토론과 설득’이다. 톨레랑스를 실천하는 방법이 토론과 설득이며, 억압적 앵톨레랑스와 싸우는 일차적인 무기도 ‘토론과 설득’이다. 톨레랑스를 실천한다면서 말과 설득이 아닌 다른 수단, 곧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믿음이 진리일 수 없음을, 남을 설득할 능력이 자기에게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톨레랑스를 잘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토론의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 톨레랑스는 광신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지식의 조건, 진보의 도구가 된다. 볼테르는 ‘우리의 부싯돌은 마찰음으로써 빛이 난다’라는 말을 통해 진리탐구가 대결을 통해서, 또 대화와 교환을 통해서도 이루어짐을 암시했다.”
그런데 이성적인 토론에는 전제가 있다. 토론을 하되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한 토론을 하려면 두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에 있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불평등한 사회조건에서는 공정한 토론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톨레랑스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공정한 토론을 위해 현재의 불평등한 조건을 바로잡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자 권리가 된다.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이 ‘비폭력의 원칙’이다. “폭력은 이성을 막기 때문이다. 폭력은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해서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는 인간 이성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폭력은 오류의 도구다.” 폭력은 ‘힘의 논리’와 연결돼 있다. 한국 사회에 판치는 힘의 논리를 톨레랑스는 거부해야 한다.
톨 레랑스의 넷째 원리는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한국 사회에서 톨레랑스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차이와 다양성 준중’이다. 『왜 똘레랑스인가』를 쓴 필리프 사시에는 “다양성은 세계의 본질 자체”라고 말한다. 그만큼 차이와 다양성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차이를 무차별로 용인하면 모든 폭력적인 행위마저 차이의 표현으로 인정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극심한 빈부격차도 차이의 이름으로 용인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차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빠기지 쉬운 함정은 평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인의 부자유에 눈을 감는 사람이 차이를 주장하는 것은 불평등한 현실을 지키려는 위선이다.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 외치는 차이의 존중은 공허할 뿐이다. 톨레랑스는 평등의 바탕 위에서 차이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차별’없는 ‘차이’야말로 톨레랑스의 본령이다. 또한 차이의 존중은 환대의 원리로도 나아간다. 낯선 것과 이질적인 것까지 포용하며 미지의 것에 손을 내미는 행위가 환대다. 이 환대의 원리는 서로가 상대를 의심하며 무장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먼저 무장을 해제할 것을 요구하는 원리다. 이를테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적대해온 남한과 북한이 이 환대의 원리로 만날 때 통일은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서구인들만의 것 혹은 사회적 강자에 유리한 게임
이렇게 보면 톨레랑스는 사회의 개선과 진보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자 일종의 보편원리로 받아들여질 만한 개념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톨레랑스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톨레랑스가 형성되어온 과정에서 제국주의와 싸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한다. 톨레랑스는 서구인들끼리 또는 기독교인들끼리 통하는 원리였을 뿐, 비서구인이나 비기독교인에게 까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톨레랑스는 원리상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체제의 규칙을 따르는 이데올로기’ 노릇을 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이다. 이성에 기반한 토론과 설득이라는 톨레랑스의 무기는 이미 짜인 규칙의 질서를 깨지 못한다. 이 규칙을 짜는 자는 누구인가. 당연히 기득권 세력이다.
가령,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토론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하는데, 합리적 설득 수단인 언어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사람들, 그런 능력을 갈고 닦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다. 사회적 강자들이 유효한 지식과 논리를 동원해 만든 언어의 망치를 난타할 때, 그런 무기는 없고 오직 날것의 진실만 있는 사람들은 어찌 해야 하는가. 토론과 설득의 기술을 요구하는 톨레랑스는 자칫 잘못하다간 나쁜 엘리트주의로 흐를 수 있다. 이 점을 지은이도 강조한다.
“체제의 규칙은 분노의 폭발, 야유, 절규, 같은 감정적인 비판을 톨레랑스하지 않는다.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지식과 교양으로 말하지 않으면 듣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그래서 노점상이나 철거민, 장애인의 목소리는 무관심 속에 묻힌다. 이는 법을 모르는 사람, 이용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법대로 하자’고 말하는 것처럼 공허하고 폭력적이다. …… 짜인 규칙에 대한 톨레랑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억압적인 앵톨레랑스와 다를 바 없다.”
기득권 세력을 차별하고 저항 세력에 우호적인 톨레랑스!
지은이는 톨레랑스의 전도사 홍세화가 이런 한계 안에 갇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톨레랑스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가 이야기한 ‘차별하는 톨레랑스’를 제시한다.
“마르쿠제는 한쪽 편을 들지 않는 비정파적인 톨레랑스를 ‘추상적’ 또는 ‘순진한’ 톨레랑스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현재의 차별과 억압을 감춘다고 비판했다. 공정하지 않고 평등하지 않은 조건에서 모두가 똑같이 톨레랑스해야 한다는 주장은 속임수라는 얘기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선전할 수단을 갖지 못한 채 기성 사회의 규칙을 따르는 것은 패배가 예정된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톨레랑스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기득권 세력을 차별하고 저항 세력에게 더 우호적인 톨레랑스여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하는 톨레랑스’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현재의 잘못된 조건을 바꾸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고 투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어 지은이는 이렇게 묻는다. “압도적인 화력과 병력으로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제 집 드나들 듯 수시로 드나들며 짓밟는 이스라엘, 그 압도적인 적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테러리스트일까, 투사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무장하지 말라고, 이스라엘을 톨레랑스하라고 설득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너무나 정당해서 굳이 답이 필요하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질문으로 이은이가 홍세화의 톨레랑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조금은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거의 틀림없이 홍세화도 팔레스타인의 무장과 저항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는 홍세화가 토론과 설득을 대단히 중요한 톨레랑스의 요건으로 강조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톨레랑스가 이미 그 안에 앵톨레랑스를 포함하고 있음은 지은이가 되풀이 이야기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홍세화도 ‘극복대상’과 ‘경쟁상대’라는 나눔을 통해 톨레랑스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조선일보』나 수구정당은 극복대상으로서 앵톨레랑스해야 할 상대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억압적 앵톨레랑스 세력을 극복하는 가운데 토론과 설득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꽃필 수 있다고 홍세화는 보는 것이다. 또한 그가 톨레랑스의 이름으로, 차별받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것도 사실이다.
요컨대, 그는 오랫동안 바깥에서 살아왔던 사람의 시선으로 한반도에서 지난 50여 년 동안 횡행했던 극단의 앵톨레랑스가 야기한 비극을 보면서, 한반도에 우선 필요한 것이 톨레랑스임을 강조했던 것이고 그 톨레랑스를 거부하는 세력에 대해 앵톨레랑스의 태도를 취해야 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톨레랑스가 만능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톨레랑스를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적용해야 하는 보편원리로 취급할 때의 문제점은 지은이가 이미 지적한 대로 경계를 요하는 부분이다. 톨레랑스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도정에서 빌려 쓰는 지팡이일 뿐, 금과옥조의 진리는 아닌 것이다. 톨레랑스 스스로가 완전한 진리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http://www.dbpia.co.kr/view/ar_view.asp?arid=544284#
* 출처는 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club_history 입니다. 요약과 번역은 제가 단 것입니다.
이 름: 묵이
제 목: 관용의 오용
관용의 오용
관용 혹은 똘레랑스라고 하는 말은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한 마디만 보탤까 합니다. 관용을 이야기하는 사람중에 종종 관용은 관용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며 불관용에 대해서는 불관용으로 대처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관용을 불관용의 구실로 쓰게되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관용인지 불관용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는군요. 그러나 이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관용과 불관용의 동거도 관용이란 개념이 등장하게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게 되면,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관용은 원래 권력과 지배의 논리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용의 의미를 다양성 혹은 차이의 존중으로 이해하고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다양성과 차이의 존중이라는 것이 그들 사이의 의미있고 생산적인 상호관계로 이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서로 다른 것 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도 역시 관용이 취할 수 있는 형식입니다. 무관심으로서의 관용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인정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차이를 드러낼 때 생길 수 있는 분쟁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것입니다. 즉 말을 바꾸면 싸우기 싫어서 타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부러 무시하는 동시에 그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용은 소신과 원칙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논리이기에 안정의 제공자 보호자로서의 국가권력의 강화를 지지하는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관용은 역사적으로는 유럽의 절대주의 국가의 등장과 궤를 같이하며 그 밑에 홉스적인 리바이어던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배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논의만을 정당한 공적 논의로 인정하며, 그렇지 않은 논의는 사적 개인의 양심의 영역으로 그 범위를 축소시킴으로 해서 그 위협을 근원에서 차단하며, 허용되는 논의와 금지되는 논의를 구분할 권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 근대적 관용의 논리이며 절대주의와 그 현대적 계승자인 정치적 자유주의의 논리입니다.
근대적 관용의 개념은 원래는 종교적 관용으로부터 출발하며, 유럽의 종교전쟁기에 나왔습니다. 16세기 종교전쟁에 시달리던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인 장 보뎅이 '영혼의 구원보다는 왕국과 가정의 안녕'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신교와 구교로 갈라져 싸우던 제 당파들에게 내전을 중지하고 국왕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자고 호소하면서 프랑스 절대주의의 이론적 정당성을 제공합니다. 17세기 영국의 홉스는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부자연적이고 폭력적인 죽음이라고 전제하면서 리바이어던이 자연상태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극복함으로 해서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다고 하면서 그 정당성을 설파합니다.
홉스가 리바이던에서 하고자하는 것은 죽음의 공포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인간의 보편조건으로부터 합리적 정치체제를 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홉스의 전제, 즉 죽음의 공포가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라는 주장은 당시의 역사적 경험이 충분히 반박하고 있습니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쓰고 있는 당시에도 전 유럽은 종교동란에 휩싸여있었고, 그것이 증명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당파성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홉스가 진정으로 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보편조건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는 우선순위를 바꾸고자하는 정치적 설득작업이었고. 종교적 신념에 대신하여 생명의 보호를 정당성의 근거로 삼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건설하고자 하는 정치공학적 선전 선동이었습니다.
홉스의 논의가 죽음의 공포를 들이대는 위협조인 것에 비하면 쟝 보뎅의 주장은 훨씬 점잖습니다. 홉스처럼 죽음의 공포를 먼저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선택의 대안을 제시하죠. 하나는 소신대로 살지만 혼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소신을 양보는 하지만 대신 안녕을 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똑 같은 말이라도 보뎅은 안녕이라는 긍정적이 표현을 썼으며 홉스는 죽음이라는 부정적이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비록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둘이 지향하는 바는 똑같습니다. 즉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신념이 아니라 생명의 보호와 안녕, 번영이라는 세속적인 가치에 둠으로 해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시킵니다. 공적 영역에서는 이런 세속적 가치에 근거한 논의만 허용되며, 신념의 문제는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 개인의 양심으로 추방됩니다. 그러한 신념이 공적 영역으로 침투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금지되지만, 신념이 개인의 양심의 영역에 남아있는 한 이에 개입하지 않으며, 그 신념을 바꿀 것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정치의 탈종교화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은 종교적 분란의 주체였던 제 집단을 사적 영역으로 몰아 넣어 정치적으로 거세시키는 것이며,세속적 공공성의 유일한 담지자로서의 국가의 강화와 중앙집권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사적 영역의 자유와 관용은 탈정치화라는 대가를 치르고 주어진 것이며 그 이면에는 공사의 경계를 눈에 불을 켜고 지키는 국가권력이 존재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정치 연극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보뎅과 홉스의 시대에 나온 이 연극은 언뜻 보기에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풋사랑을 다룬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군주권의 강화를 주장하는 정치적 선전선동극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모두 두 가문간의 싸움을 꾸짖는 군주의 설교로 끝납니다.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몬테규라는 성을 버리면 우리 사랑의 장애가 없어질 것이라고 호소하며 읊는 구절,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는 변하지 않을 걸요!"라고 하는 대사는 가문에 대한 충성이 국가에 대한 충성에 우선하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정치적으로 혁명적인 발언인 것입니다. 몬테규와 캬푸렛의 두 가문이 서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그들이 그 만큼 정치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연인의 비극적 죽음을 핑계로 그들의 싸움을 중지시키자는 것은 결국 그들의 정치적 자율성을 포기하고 군주에 복종하라는 설교인 것입니다. '연애 마음대로 하려면 임금님의 말씀을 잘 들어'라는 이야기인데, 결국 셰익스피어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사랑이라는 사탕발림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용의 개념에 내재된 배제와 지배의 논리는 근대적 자유주의의 논의에서도 그대로 재생산됩니다. 오직 타협가능하고 합의 가능한 논의만이 공적 영역에서 허용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이데올로기, 근원주의, 허무주의는 사적 영역으로 추방되어야만 한다는 논의는 하버마스, 롤스, 칼 포퍼, 이사야 벌린 같은 현대 자유주의의 사도들에 의해 그대로 복창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런 비합리적인 논의가 배제되지 않으면 무질서와 혼란 그리고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세계대전 같은 대재앙이 오리라고 겁을 주는 점에서 홉스의 진정한 계승자들입니다. 계몽주의와 과학의 시대를 지배하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20세기의 대참사(대공황, 양차대전, 홀로코스트,파시즘, 스탈리니즘)을 겪으면서 비관주의로 전환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자유주의는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하며 안정과 기본질서 유지를 무엇보다도 우선합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관용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것이 안정과 질서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독재와도 충분히 양립가능한 것입니다. 19세기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군주정은 민주주의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자유주의적인 정권이었으며, 지금 문제가 되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의 바트당 정권도 독재이기는 하지만 자유주의적 정권입니다. 중국 반환 이전의 홍콩이 홍콩주민의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영국 여왕이 임명한 총독에 의해 통치되었지만 충분히 자유주의적 통치를 하였습니다.
자유주의적 관용이 궁극적으로는 혼란과 투쟁에 대한 공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공포에 토대를 둔 권태의 왕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안정을 위해 공포를 강조하는 것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겁에 질린 사람입니다. 자유주의적 안정을 위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지나치게 되면 그 공포는 타협과 공존 못지 않게 공포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성으로 언제라도 전환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9.11 테러 이후 아프간을 침공할 때, '우리가 싸워야할 이유'라는 제목으로 전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미국 지식인들의 논지가 자기들의 자유주의적 관용을 보호하기 위해 불관용한 상대에 대해서는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진 것 같군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 드리며 마지막으로 제 얘기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용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며, 국가권력의 강화를 지지하는 논리입니다. 또한 관용이 불관용의 핑계가 될 때는 어느 것 못지 않게 편협한 배제의 논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관용은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며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변해나가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상대방이 관용적 세력인지 비관용적 세력인지를 미리 따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쉬운 문제도 아닐뿐더러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투쟁과 화해가 교차하는 상호관계속에서 변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호작용속에서 투쟁이 지나쳐 도를 넘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의 대재앙들이 그 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두려움을 삶과 사회를 조직하는 최우선 원칙으로 삼는 것이 건강함 삶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문제는 예속속의 평화와 자유속의 투쟁과 불안정중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할 것인가일 것입니다. 아마 영원히 풀리지 않을 화두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이차대전후 정치적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해주던 공포도 이제 그 약발이 떨어질 시간이 되고 있는 것 같군요. 부시의 제국주의 모험이 그 강력한 예일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다시 한번 탈 정치화된 자유주의적 관용의 시대를 끝내고 질풍노도의 시대로 다시 진입하는가 봅니다.
2003/03/17 (12:30:48) IP Address : 69.3.11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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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관용은 역사적으로 상대도 나에게 관용적이라고 생각될 때만 실천되어 왔을 뿐 아니라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인정과 이해로서의 관용이기보다는 타자와의 차이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로서의 관용이었다. 즉 타자와의 차이가 드러날 때 생길 수 있는 혼란과 분쟁에 대한 두려움에서 타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부러 무시하는 동시에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는 소신과 원칙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논리인데, 그러한 안정의 제공자로 출현한 것이 근대 절대주의 국가였으며(홉즈, 보댕 등의 정치사상은 바로 그러한 절대주의 국가에 대한 정당화였다) 이후의 자유주의 국가도 그 기능면에서 볼때 절대주의 국가와 별로 다르지 않다. 국가는 타협가능하고 합의가능한 논의와 그렇지 않은 논의를 구분할 권리를 독점하며 타협가능하고 합의가능한 논의만을 공적 영역에서 허용하고 그렇지 않은 논의는 사적 개인의 양심의 영역으로 그 범위를 축소시킴으로 해서 그 위협을 근원에서 차단한다.
번역
타자와의 차이가 드러난다고 해서 그 차이가 언제나 혼란과 분쟁을 야기하는 것도 아닐테고 야기한다고 해서 언제나 신경써야 할 정도로 크게 일어나는 것도 아닐테지요. 그 차이가 대립이나 모순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 차이가 대립이나 모순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 차이를 동일화하거나 그 잠재력을 억압할 힘이 차이들의 주체들 가운데 어느 한편에게 주어져 있는 한 말입니다. 그 힘이 바로 공적 영역에서 논제를 제한하는 국가의 권력으로 나타는 것이겠지요. 결국 혼란과 분쟁을 야기할 만하지 않은 차이들은 번창하게 해서 자유주의의 다원주의적 및 개인주의적 가치를 뽐내고 혼란과 분쟁을 야기할 만한 차이들은 '실은 차이가 아니야'라고 재해석해주는 이데올로기나 '너의 차이는 다른 사람들의 차이와 똑같이 중요하다니 너의 차이가 다른 사람들의 차이에 대해 함축할 수 있는 거친 행동을 자제하라'는 법에 복종시키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지요.
요약
상대의 나에 대한 비관용이 그에 대한 나의 비관용의 핑계가 될 때는 어느 것 못지 않게 편협한 배제의 논리가 될 수도 있다. 상대가 관용적 세력인지 비관용적 세력인지를 미리 따질 필요는 없다. 그것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쉬운 문제도 아닐뿐더러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투쟁과 화해가 교차하는 상호관계 속에서 변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진정한 관용은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며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화해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변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 투쟁이 지나쳐 도를 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두려움을 삶과 사회를 조직하는 최우선 원칙으로 삼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문제는 예속 속의 평화와 자유 속의 투쟁과 불안정중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할 것인가일 것이다. 아마 영원히 풀리지 않을 화두일 것이다.
번역
좋은 생각입니다. 한자 한자가 표현 그대로 제 생각과 일치해서 굳이 번역할 필요가 없군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진정한 관용의 예를 본 적이 없다. 진정한 관용이란 용어모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관용된다는 사실은 그가 비난받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실로 관용이란 세련된 형태의 비난일 뿐이다. 사실 그들은 관용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그들은 자신들의 본성을 따를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그들이 소수에 속한다는 사실은 아주 조금도 열등성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차이' - 혹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남들과 다르다는 범죄'- 는 그들을 관용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나 그들을 비난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나 동일한 것으로 남아있다. 어떤 다수도 그 의식으로부터 소수의 '차이'에 대한 느낌들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외적으로, 불가피하게 이 사실을 의식하게 될것이다."
파졸리니는 이것을 더 이상 의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을 쓴 이후 얼마 안지나서 단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 더글러스 크림프

그런것들에 비한다면 파졸리니의 소설 '폭력적인 삶'은 훨씬 더 소박하고 투박하며 애정에 넘치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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