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번에 안철수씨가 '상식'에 대해 중2병 수준의 낮은 인식을 갖고 있다고 깠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닌듯 합니다. 지난 2004년에 출간된 안철수의 책에서는 '상식'에 대해 나름 명징한 인식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혹시 ‘상식’ 또는 ‘커먼 센스(common sense)’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한 분야의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생각이나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누구에게는 상식이지만 또 다른 누구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 있으며, 상식이 모든 사람에 ‘커먼(common)’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러함에도 자기에게나 상식적인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의도를 의심하거나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폄하하는 것은 대화의 단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2004년 김영사 간. 216~217페이지]


그러나 얼마전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는 상식에 대해 전혀 다른 인식을 보여주죠. 소위 '벌레론'입니다.

“시대착오적이고 소모적인 이념논쟁으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은 바로 벌레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자신과 뜻이 다르다고 좌우로 나누는 자들은 사회악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상식파일 수 있습니다. 헌법을 이야기해도 이념으로 몰아가는 벌레가 많습니다.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시대정신입니다. 벌레 같은 자들이 사라져야 상식과 원칙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주위에 시대착오적인 이념 논쟁하는 벌레 같은 자들이 있나요? 그런 자들이 있으면 벌레 보듯이 쳐다보세요”

일단 본인 스스로 사람을 벌레와 벌레가 아닌자의 이분법으로 나누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황당함은 둘째치더라도, '상식'이라는 것에 대해 절대 동일인의 것으로 볼 수 없는, 양립 불가한 가치체계를 보여줍니다.

가능성은 3가지입니다.
1. 2004년에 발간된 책은 안철수 본인의 것이 아니라 대필된 것이고, 안철수씨는 책의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른다.
2. 안철수씨는 7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상식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했다.
3. 2004년의 안철수와 2011년의 안철수 둘 중 한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1의 경우이겠죠. 사람의 가치관이 변화할 수는 있어도,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변화하는건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고, 저는 안철수씨가 설마 청산유수로 거짓말을 늘어 놓는 사람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안철수같은 사기꾼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을 보호하는 역할을 민주진보진영이 아니라 강용석 조갑제같은 자들에게 맡겨버린 작금의 현실이 참으로 기괴하고 서글플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