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과 문재인이라는 두 명의 영남 신사가 완전히 과메기같은 옷차림에 번쩍거리는 총을 메고, 정동영과 천정배라는 사냥개 두 마리를 데리고, 깊은 산 속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곳을 이런 얘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진짜로 이 산은 돼먹지 않았어. 새는 고사하고 짐승 한 마리도 없잖아. 뭐든지 좋으니 한바탕 쏴 보고 싶군."
   "전라디언의 누런 닝구에다 총알 두세 방을 쏘아붙이면 통쾌할 거야. 빙글빙글 맴돌다가 꽈당 하고 쓰러지겠지."
  그 곳은 매우 깊은 산중이었습니다. 길을 안내하던 박지원 포수도 갈팡질팡하다가 어디론가 가 버렸을 정도로 산이 깊었습니다. 게다가 산이 너무 험하고 무서워 깽깽이같이 생긴 그 두 마리의 사냥개도 현기증을 일으켰으며, 잠시 으르렁거리다가 거품을 토하고 쓰러져 버렸습니다.
   "나는 이백사십만 표를 손해 봤어."
  유시민이라는 신사가 천정배 개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말했습니다.
   "나도 이백팔십만 표를 손해 봤다고."
  문재인이라는 다른 사람도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유시민이라는 신사는 얼굴을 붉히고 말없이 문재인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했습니다.
   "난 이제 돌아가고 싶소."
   "나도 그래요. 날씨도 추워지고 배도 고프니 돌아가는 게 상책이겠어."
   "그렇다면 이 정도로 끝냅시다. 돌아가는 길에 민노당에 들러 이정희를 잘 꼬셔가지고 몇 표 얻어 가면 될 테니까."
   "통합연대도 있던데. 그러면 결국 본전치기지. 자, 돌아갑시다."
  그런데 아무래도 곤란한 것이, 어느 쪽으로 가야 돌아갈 수 있는지 전혀 방향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바람이 휘익 불어오자 풀은 와삭와삭, 나뭇잎은 우수수, 나무등걸은 쾅쾅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배고파 죽겠어. 아까부터 옆구리가 뒤틀리는 것 같다고."
   "나도 그래. 이젠 더 이상 걷고 싶지도 않아."
   "동감이야. 아아, 난처해졌는걸. 무엇이든 먹고 싶어."
   "나도 물론 먹고 싶다고."
  두 신사는 바람에 와삭거리는 억새풀 속에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때 문득 뒤돌아보니, 훌륭한 서양식 집 한 채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관에는

깨인 시민의 투표소
안철수 회관


이란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것 봐라? 여기 이런 데가 있어요. 들어가 봅시다."
   "어? 좀 이상한데. 하지만 무엇이든 표를 얻을 수는 있겠지."
   "그야 물론이지. 간판에 그렇게 쓰여 있잖소."
   "들어갑시다. 나는 시장해서 쓰러질 것 같아."
  두 사람은 현관 앞으로 갔습니다. 현관은 하얀 타일로 장식된 매우 훌륭한 모습이었습니다.
  유리로 된 여닫이문에 금박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들어오십시오.
  결코 사양하실 것 없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이것 봐요. 세상은 역시 살만 하다구. 오늘은 하루 종일 고생이 많았지만 이렇게 좋은 일도 생기잖소. 이 집은 투표소인데, 공짜로 표를 주겠다는구먼."
   "그런 것 같소. 결코 사양하지 말라는 것이 그 뜻인가 봐요."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쪽은 복도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유리문 안쪽에도 금박 글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특히 영남 태생이거나 노빠 출신이신 분을 환영합니다. 

  두 사람은 환영한다는 말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봐요, 우리를 크게 환영한다고 쓰여 있소."
   "우리는 양쪽을 다 겸하고 있거든."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이번에는 푸른색 페인트 칠을 한 문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한 집이야. 왜 이렇게 문이 많지?"
   "이건 러시아 식이거든. 추운 지방이나 산 속은 다 이래요."
  두 사람은 그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문 위에 누런 글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회관은 주문이 많은 투표소이니,
  부디 그 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꽤 뽐내고 있군. 이런 산 속에서."
   "하긴 그렇군. 봐요. 서울에 있는 투표소도 이렇게 큰 곳은 몇 없잖아요."
  두 사람은 말하면서 그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그 뒤쪽에, 

  주문이 꽤 많겠지만 제발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유시민 신사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응, 이것은 주문이 많아서 표를 얻는 데 시간이 걸리니 죄송하다는 뜻이겠지."
   "그런가? 빨리 방 안으로 들어가 테이블 앞에 앉고 싶은데."
  그런데 성가시게도 또 하나의 문이 있었고, 그 옆에는 거울이 걸려 있고, 그 밑에는 긴 자루가 달린 옷솔이 놓여 있었습니다.
  문에는 붉은 글씨로,

  손님 여러분,
  여기서 머리를 잘 빗고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어 주세요.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옳은 말씀이야. 나도 아까 현관에서 산 속에 있는 투표소라고 업신여겼었거든."
   "예의범절이 엄한 집이로군. 아마도 영남 귀족분들이 자주 오는 모양이지."
  그래서 두 사람은 머리를 단정히 빗고, 구두의 진흙을 털어 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죠? 옷솔을 바닥 위에 놓자마자 그것이 '휙' 하고 사라지더니, 거센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왔습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몸을 붙이고, 문을 쾅 열고 다음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한시 바삐 따끈한 표를 얻고 기운을 차리지 않으면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 안쪽에는 또 이상한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총과 총알을 여기에 놔 두고 가십시오.

  보니, 바로 옆에 검은 시렁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래. 영남에서도 총을 들고 투표를 하는 예절은 없거든."
   "맞아요. 꽤 높은 사람들이 늘 찾아오는 것 같소."
  두 사람은 어깨에 멘 총을 내리고 탄띠를 풀어서 시렁 위에 놓았습니다.
  또 검은 문이 나타났습니다. 

  제발 모자와 외투, 구두를 벗어 주십시오.

   "어떡하지? 벗겠소?"
   "할 수 없지. 벗읍시다. 틀림없이 높은 양반이오. 저 안에 와 계신 분은."
  두 사람은 모자와 외투를 못에 걸고, 구두를 벗고, 맨발로 걸어서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문 안쪽에 또, 

  넥타이핀, 커프스버튼, 안경, 지갑, 그 외에 쇠붙이로 된
  물건이나 끝이 뾰족한 것은 모두 여기에 와 두고 가십시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문 옆에는 검정칠을 한 훌륭한 금고도 입을 쩍 벌린 채 놓여 있었습니다. 열쇠까지 놓여 있었지요.
   "호, 전자식 투표를 하니까 근처에 전기가 흐르는 모양이로군. 쇠붙이는 위험하고 더구나 끝이 뾰족한 물건은 특히 위험하다는 걸 보니까."
   "으흠, 맞아요."
  두 사람은 안경을 벗고, 커프스버튼을 풀어서 금고 안에 넣은 후 찰카닥 자물쇠로 잠갔습니다.
  조금 더 가자 또 문이 있는데, 그 앞에 유리로 된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지요.

  항아리 속의 크림을 얼굴과 손발에 빈틈없이 발라 주세요.

  보아하니 항아리 속에 든 것은 틀림없이 우유 크림이었습니다.
   "크림을 바르라는 건 무슨 뜻일까?"
   "이건 말야, 바깥 날씨가 춥기 때문일 거야. 방 안이 너무 더우면 피부가 건조해져서 틀 테니까 그걸 예방하려는 거겠지. 아무래도 안에 높으신 양반이 와 있는 게 틀림없어. 이거 잘하면 우리도 영남 일류와 알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두 사람은 항아리에 든 크림을 얼굴과 손에 바르고, 양말을 벗고 발에도 발랐습니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기에 둘이서 각각 얼굴에 바르는 척하며 몰래 핥아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황급히 문을 열자 그 뒤쪽에,

  크림을 잘 바르셨습니까?
  귀에도 잘 바르셨나요?

라고 쓰여 있었고, 거기에도 조그만 크림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군. 나는 귀에는 안 발랐어. 하마터면 귀가 상할 뻔 했잖아. 이 집 주인은 정말 빈틈이 없는 사람이야."
   "아, 그래. 정말 세심해. 그런데 나는 뭐든지 빨리 먹고 싶은데, 이렇게 복도에만 세워 두고 있으니 어쩌지?"
  그러자 곧 다음 문이 나타났습니다.

  투표는 이제 곧 됩니다.
  십오 분 이상은 기다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빨리 병에 든 향수를 당신의 머리에 뿌려 주십시오.

  과연 문 앞에는 번쩍거리는 향수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향수를 머리에 훌훌 뿌렸습니다. 그런데 향수에서는 아무래도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향수 냄새가 이상하군. 식초 냄새가 나는 것 같소."
   "뭔가 잘못된 거요. 가정부가 감기라도 걸려서 실수를 한 모양이지."
  두 사람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 뒤쪽에 커다란 글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여러 모로 주문이 많아 귀찮으셨을 테죠?
  미안합니다. 이것으로 마지막입니다.
  제발 항아리 안에 든 소금을 잘 비벼서 온몸에 뿌려 주십시오.

  과연 푸른 사기로 된 소금 항아리가 놓여 있었는데, 이번만은 두 사람 다 깜짝 놀라며 크림을 바른 얼굴을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나도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
   "주문이 많다고 하는데, 저쪽에서 우리한테 주문을 하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투표소라고 하는 것이, 내 생각에 의하면 표를 모아다가 찾아온 사람에게 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찾아온 손님을 자기 표로 만들어서 직접 먹어 주는 집이다 그 말씀이야. 즉 이것은 우, 우, 우리가..."
  두 사람은 온몸이 와들와들 떨려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 우리들이... 와악!"
  더 이상은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 도망치자!"
  한 신사가 떨면서 뒤에 있는 문을 열려고 밀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있고, 커다란 열쇠 구멍이 둘 있는데, 은빛 포크와 나이프 모양으로 잘려 있는 거기에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요리가 잘 되었습니다.
  자아, 뱃속으로 들어와 주시지요.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열쇠 구멍으로는 두리번거리는 두 개의 푸른 눈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지 않겠어요?
   "으악!"
  와들와들.
   "으악!"
  부들부들.
  두 사람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문 안에서 소곤소곤 이런 말이 들려 왔습니다.
   "틀렸어. 벌써 알아차렸다구. 소금을 비벼 바르지 않은 것 같아."
   "당연하지. 박경철 그 병신이 각본을 잘못 썼다구. 주문이 많아서 귀찮으셨을 거라느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문구를 써 놓았으니..."
   "알게 뭐야. 어차피 우리에겐 뼈다귀 하나 돌아오지 않을 텐데."
   "그건 그래. 하지만 녀석들이 만약 이쪽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 우리들 책임이라구."
   "부를까? 불러 보자. 여보세요. 손님들. 빨리 오세요. 어서 오십쇼. 접시도 씻어 놓고 채소도 소금에 잘 절여 두었습니다. 다음에는 여러분과 채소 잎을 하얀 접시에 잘 담는 일만 남았습니다. 빨리 오십시오."
   "여보세요. 혹시 야채는 싫어하세요? 그러면 그냥 프라이로 튀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빨리 들어오세요."
  두 사람은 너무나 겁에 질려 얼굴이 마치 구겨진 휴지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덜덜덜 떨다가 소리도 없이 울었습니다.
  안에서는 껄껄대며 웃더니 또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어서 오십쇼. 이게 보세요! 그렇게 울면 모처럼 바른 크림이 흘러내리지 않습니까. 잘 오셨습니다. 이제 곧 잡숴 드리지요. 자, 빨리 오십쇼."
   "빨리 오세요. 안철수 님이 벌써 냅킨을 목에 걸고, 나이프를 들고, 입맛을 다시면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때 뒤에서 갑자기  "윙, 윙, 워엉!"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까 그 깽깽이 같은 사냥개가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열쇠 구멍의 눈들은 순식간에 없어졌고, 개들은 으르렁거리며 얼마동안 방 안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컹!" 하고 큰 소리로 짖어대며 다음 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문이 열리자 개들은 빨려 들어가듯 그 속으로 덤벼들었습니다.
  그 문 저켠의 어둠 속에서는, "V3, V3, 그르릉!" 하는 소리가 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방은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두 사람은 추위에 덜덜 떨면서 풀밭 속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보아하니 저고리와 구두, 지갑, 넥타이핀 따위는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걸려 있거나 그 밑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휘몰아쳐서 풀은 와삭와삭, 나뭇잎은 우수수, 나무는 쾅쾅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개들이 으르렁대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주인 어른, 주인 어른!"
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갑자기 생기가 도는지,
  "이봐! 이쪽이야, 이쪽. 빨리 오라구."
하고 외쳤습니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한 박지원 사냥꾼이 풀숲을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사람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이 가져온 홍어회를 먹고, 도중에 민노당 표를 십만 표 정도만 꼬불쳐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까 휴지처럼 구겨진 두 사람의 얼굴만은 서울에 온 다음에도, 그리고 목욕을 해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