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처음 등장할때 충격은 굉장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인터넷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혁명으로 여겨졌다. 정치 분야에서는 소위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장미빛 전망이 있었다. 요새 말하는 "깨어있는 시민"담론의 뿌리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러한 기술 결정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열렬한 기술 결정론자는 대개 올드 미디어의 세뇌를 받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즉, 올드 미디어 세대는 흔히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로 양극화 되는 경향이 있는데, 열렬한 기술 결정론은 올드미디어의 포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보주의자의 세대 부정의 몸부림이라고 할수 있다. 이것은 뉴미디어 세대의 뉴미디어에 대한 심드렁하고 실용적인 태도와 대비된다.

특히 기술 결정론의 진원지가 제도권인 경우 과도한 목적의식이 개입되어 뭐가 뭔지 분간이 안되는 형국이 된다. 변화하는 세태에 뒤쳐질수 없다는 관리자들의 조급함, 계속 이익을 내고 싶은 경영진(혹은 표를 얻고 싶은 지도부)의 열망이 한데 모여 전통적인 방식의 프로파간다와 뉴미디어의 불편한 조합이 이뤄진다.

깨어있는 시민 담론의 출발점인 2002년 대선에 대한 실용주의자와 기술 결정론자의 의견은 갈린다. 실용주의자는 승리의 원인을 전통적인 정치적 맥락에서 찾으려고 한다. 기술 결정론자는 노사모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적극 참여층이 대선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 뜨거운 선동(?)의 기억이 아마 참여정부라는 작명을 짓게된 계기일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인터넷 문화는 넓어지고 깊어졌지만 인터넷이 만든 참여정부는 쫄딱 망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흔히 있는 승리와 패배의 흐름이지만 기술 결정론자들에게 이것은 당혹스러운 사태다. 그래서 "국개론'같은 일종의 현실부정의 레토릭을 만들어 도망치고자 한다. 국개론을 되뇌이며 고개를 쳐박고 현실을 부정하던 세력들이 '깨어있는 시민'을 들고 다시 기어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그들 스스로 기술결정론의 오류를 시인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