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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cial-Democratic Illusion (By Immanuel Wallerstein)

사회민주주의라는 환영 (이매뉴얼 월러스틴)

 

* 출처: <이매뉴얼 월러스틴 닷컴>, 논평 313, 2011915

http://www.iwallerstein.com/socialdemocratic-il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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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democracy had its apogee in the period 1945 to the late 1960s. At that time, it represented an ideology and a movement that stood for the use of state resources to ensure some redistribution to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in various concrete ways: expansion of educational and health facilities; guarantees of lifelong income levels by programs to support the needs of the non-”wage-employed” groups, particularly children and seniors; and programs to minimize unemployment. Social-democracy promised an ever-better future for future generations, a sort of permanent rising level of national and family incomes. This was called the welfare state. It was an ideology that reflected the view that capitalism could be “reformed” and acquire a more human face.

 

사회민주주의는 1945년에서 1960년대 말까지의 시기에 정점에 있었다. 그 당시, 그것은 다양한 구체적 방식들로 인구 다수에게 얼마간의 재분배를 보증해 주기 위해 국가자원의 사용을 찬성했던 이데올로기와 운동을 대변했다: 교육 및 보건시설의 확대; 임금-피고용집단들, 특히 아이들과 노령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프로그램들에 의한 평생 소득 수준들의 보장; 그리고 실업을 최소화하는 프로그램들. 사회민주주의는 미래 세대들에게 점점 더 나아지는 미래를, 국민소득과 가족소득의 일종의 지속적 상승을 약속했다. 이것은 복지국가라 불렸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개량될 수 있으며 더 인간적인 얼굴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반영한 이데올로기였다.

 

The Social-Democrats were most powerful in western Europe, Great Britain, Australia and New Zealand,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where they were called New Deal Democrats) in short, in the wealthy countries of the world-system, those that constituted what might be called the pan-European world. They were so successful that their right-of-center opponents also endorsed the concept of the welfare state, trying merely to reduce its costs and extent. In the rest of the world, the states tried to jump onto this bandwagon by projects of national “development.”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서유럽,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에서 - 요약하면, 세계체제의 부유한 나라들에서, 범유럽 세계라 불릴 수 있을 것을 구성하는 나라들에서 가장 강력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해당 나라들의 중도 우익 반대자들 또한 비용과 범위를 축소하려고 했을 뿐 복지국가 개념 자체는 지지했을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에서, 국가들은 민족[주의]적 발전기획들에 의해 이 시류에 동참하는 것을 시도했다.

 

Social-democracy was a highly successful program during this period. It was sustained by two realities of the times: the incredible expansion of the world-economy, which created the resources that made the redistribution possible; and United States hegemony in the world-system, which ensured the relative stability of the world-system, and especially the absence of serious violence within this wealthy zone.

 

사회민주주의는 이 시기 동안 대단히 성공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현실의 두 양상에 의해 부양되었다: 재분배를 가능하게 했던 자원을 창출했던, 세계경제의 엄청난 팽창; 세계체제의 상대적 안정성, 그리고 특히 이 부유한 지대 내에서 심각한 폭력의 부재를 보장했던, 미국 헤게모니 아래의 세계체제.

 

This rosy picture did not last. The two realities came to an end. The world-economy stopped expanding and entered into a long stagnation, in which we are still living; and the United States began its long, if slow, decline as a hegemonic power. Both new realities have accelerated considerably in the twenty-first century.

 

이 장밋빛 그림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 두 양상은 끝났다. 세계경제는 팽창을 멈추고 장기 불황에 빠져 들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장기 불황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헤게모니적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느리고 긴 몰락의 도정을 시작했다. 이 두 양상은 21세기에 들어와 상당히 심화되었다.

 

The new era beginning in the 1970s saw the end of the world centrist consensus on the virtues of the welfare state and state-managed “development.” It was replaced by a new, more rightwing ideology, called variously neo-liberalism or the Washington Consensus, which preached the merits of reliance on markets rather than on governments. This program was said to be based on a supposedly new reality of “globalization” to which “there was no alternative.”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새로운 시대는 복지국가의 미덕들과 국가주도 발전에 대한 중도주의적인 세계적 합의의 종식을 목도했다. 그것은 다양하게 신자유주의또는 워싱턴 합의라 불리는, 새로운, 더 우익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대체되었는데, 이 이데올로기는 정부보다는 시장에 의존하는 것의 장점을 설교했다.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것으로 상정되며 달리 대안이 없는세계화의 현실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했다.

 

Implementing neo-liberal programs seemed to maintain rising levels of “growth” on stock markets but at the same time led to rising worldwide levels of indebtedness, unemployment, and lower real income levels for the vast majority of the world’s populations. Nonetheless, the parties that had been the mainstays of the left-of-center social-democratic programs moved steadily to the right, eschewing or playing down support for the welfare state and accepting that the role of reformist governments had to be reduced considerably.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것은 주식시장에서는 성장수준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채무와 실업의 수준이 전세계적으로 상승하고 세계인구 대다수의 실질소득 수준이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들의 대들보였던 정당들은 복지국가에 대한 지지를 회피하거나 삭감하고 개혁주의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을 승인하면서 꾸준히 우경화되었다.

 

While the negative effects on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s were felt even within the wealthy pan-European world, they were felt even more acutely in the rest of the world. What were their governments to do? They began to take advantage of the relative economic and geopolitical decline of the United States (and more widely of the pan-European world) by focusing on their own national “development.” They used the power of their state apparatuses and their overall lower costs of production to become “emerging” nations. The more “left” their verbiage and even their political commitment, the more they were determined to “develop.”

 

인구 다수에게 미친 부정적 효과들은 부유한 범유럽 세계 내에서도 감지되었지만 나머지 세계에서는 훨씬 더 예리하게 감지되었다. 그곳 정부들은 무엇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정부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집중하는 것에 의해 미국의 (그리고 더 광범위하게는 범유럽 세계의) 상대적인 경제적 및 지정학적 몰락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정부들은 자신들의 나라들을 부상시키기 위해 그것들의 국가장치들의 권력과 그것들의 전반적으로 저렴한 생산비용을 이용했다. 그것들의 말투는 물론이고 그것들의 정치적 참여마저 점점 더 좌경화되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그것들은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더 확고히 했다.

 

Will this work for them as it had once worked for the pan-European world in the post-1945 period? It is far from obvious that it can, despite the remarkable “growth” rates of some of these countries particularly, the so-called BRICs (Brazil, Russia, India, China) in the last five to ten years. For there are some serious differences between the current state of the world-system and that of the immediate post-1945 period.

 

이것은, 한때 1945년 이후 시기에 범유럽 세계 내에서 작동했던 것처럼, 그 나라들에서도 작동할까? 이 나라들 일부 - 특히, 소위 브릭들 (브라질, 러시아, 인디아, 차이나) - 의 지난 5년에서 10년 사이의 주목할 만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지 여부는 결코 분명하지 않다. 세계체제의 현재 상태와 1945년 직후 시기의 세계체제의 상태 사이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차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One, the real cost levels of production, despite neoliberal efforts to reduce them, are in fact now considerably higher than they were in the post-1945 period, and threaten the real possibilities of capital accumulation. This makes capitalism as a system less attractive to capitalists, the most perceptive of whom are searching for alternative ways to secure their privileges.

 

첫째, 실질적 생산비용 수준이, 하락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실상 1945년 이후 시기보다 상당히 높아서 자본축적의 실질적 가능성들을 위협한다. 이는 하나의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를 자본가들에게 덜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는데, 그들 중 가장 통찰력 있는 이들은 특권들을 확보할 대안적 방도들을 탐색하고 있다.

 

Two, the ability of the emerging nations to increase in the short run their acquisition of wealth has put a great strain on the availability of resources to provide their needs. It therefore has created an ever-growing race for land acquisition, water, food, and energy resources, which is not only leading to fierce struggles but is in turn also reducing the worldwide ability of capitalists to accumulate capital.

 

둘째, 그 부상하는 나라들이 갖고 있는, 단기적으로 그것들의 부 획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능력이 그것들의 필요를 충족할 자원들의 가용도에 압력을 가한다. 그것은 그러므로 토지 획득, , 식량, 그리고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경합이 점점 더 커지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 경합은 심각한 충돌들을 초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으로 자본가들의 전세계적 자본축적 능력을 감소시키고 있기도 하다.

 

Three, the enormous expansion of capitalist production has created at last a serious strain on the world’s ecology, such that the world has entered into a climate crisis, whose consequences threaten the quality of life throughout the world. It has also fostered a movement for reconsidering fundamentally the virtues of “growth” and “development” as economic objectives. This growing demand for a different “civilizational” perspective is what is being called in Latin America the movement for “buen vivir” (a liveable world).

 

셋째,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의 막대한 팽창은 세계가 기후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정도로 세계의 생태계에 심각한 압박을 가해왔는데, 이 위기의 귀결들은 세계 도처에서 삶의 질을 위협한다. 그것은 또한 경제의 목표들로서의 성장발전의 미덕을 근본적으로 재고하자는 운동을 촉진하기도 했다. 하나의 다른 문명적 퍼스펙티브에 대한 이 증대하고 있는 요구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위한 운동이라 불리고 있다.

 

Four, the demands of subordinate groups for a real degree of participation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es of the world has come to be directed not only at “capitalists” but also at the “left” governments that are promoting national “development.”

 

넷째, 세계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들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종속 집단들의 요구들은 자본가들에게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발전을 촉진하고 있는 좌파정부들에게도 제기되어 왔다.

 

Fifth, the combination of all these factors, plus the visible decline of the erstwhile hegemonic power, has created a climate of constant and radical fluctuations in both the world-economy and the geopolitical situation, which has had the result of paralyzing both the world’s entrepreneurs and the world’s governments. The degree of uncertainty not only long-term but also the very short-term has escalated markedly, and with it the real level of violence.

 

다섯째, 모든 이 요인들의 결합에 더해 이전의 헤게모니적 권력의 가시적 몰락은 세계경제와 지정학적 상황 양자 모두에 하나의 항구적이고 급진적인 변동의 풍토를 창출했다. 이 변동은 세계의 기업들과 세계의 정부들 양자 모두를 마비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왔다. 불확실성 - 단기적인 불확실성만이 아니라 매우 단기적인 불확실성 또한 - 의 정도는 가파르게 상승해왔으며 이와 함께 폭력의 실질적 수준 또한 가파르게 상승해 왔다.

 

The social-democratic solution has become an illusion. The question is what will replace it for the vast majority of the world’s populations.

 

사회민주주의적 해결책은 하나의 환영(幻影)이 되었다. 문제는 세계인구의 대다수를 위해 무엇이 그것을 대체해야 하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