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데 없이 웬 스승 이야기? 요즘 교실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상한 실랑이들이 벌어진다는 보도를 보고
오래 전에 생각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볼까 한다.
교육이 죽었다. 스승다운 스승이 사라졌다. 이런 말들이 떠돈지가 꽤 오래 된다. 한때 교육이민이 유행해서
어떤 방송에서는 교육재건 켐페인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 이후 상황은 호전되었을까? 도리어 악화된 감마져 없지 않다.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초년시절 교단에 수삼년 서본 짧은 경험 외에는 아는 것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갖게 되는 스승에
대한 몇가지 경험과 추억들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유월항쟁 직후라고 기억된다. 논현동 작은 오피스텔을 작업실로 빌려 쓸 때인데 교육신문사에서 내게
스승의 날을 맞아 <잊지 못할 스승 한분>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해왔다. 그런데 응락을 하고 막상 쓸려고
하니 딱 한사람의 스승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누굴 써야 하나?
스승이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그 숫자가 적지 않다. 비록 내가 고교과정은 제대로 못다니고 독학으로 때우긴
했지만 그래도 스승 숫자는 만만치가 않다. 기준도 모호하고 막연했다.

초등학교 때 담임 몇 사람을 떠올렸다. 맨 먼저 교실 유리창 바퀴가 구르는 쇄막대기로 내 머리통을 때려 정수리에서
피가 나오게 만든 여선생님을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창 바깥 풍경에 눈을 팔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피가 나서 몹시 아
프긴 했지만 기분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여선생님은 수업도 야무지게 잘 가르치고 배구경기 할 때 보면 선수처럼 매
서운 스파이크를 넣을 줄도 알고 무엇보다 고운 피부에 예쁜 얼굴을 지닌 미혼여성이었던 것이다. 초등 4학년 주제에
내심 그 선생님을 흠모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불과 몇달 담임을 맡다가 어느 눈 밝은 도시 총각이 신부로 스카웃해
가는 바람에 그만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그날 나는 교정 화단가에 앉아 해질녘까지 이 돌발적인 작별의 슬픔에서 헤
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두번째 떠오른 스승은 초등 이학년 때인가 담임을 맡았던 남자 선생님. 이분은 말수가 적은 대신 표정이 근엄해서
그가 교실에 들어서면 실내가 금방 찬물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그는 늘 어두운 표정이고 뭔가 고민을 안고 있는 사
람 같았다. 그가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겨울방학 기간에 자기가 당직이라며 나를 교무실로 불러낸 일 때문이다.
교무실에는 톱밥을 태우는 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혼자 그 큰 학교를 지키고 있었는데 무료하고 심심해
서 나를 불러낸 것이다. 난로를 사이에 두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었으나 별다른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
기 복도에서 참새 날개짓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복도로 나갔는데 참새 한마리가 길을 잘 못 들어 복도로 들어와
서 밖으로 탈출하려고 유리창에 자꾸 부딫히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선생님도 뒤따라 나왔다. 나는 참새를 잡아 구
어먹으면 고기맛이 천하일품이란 말을 들은 바가 있어서 어떻게든 독 안에 들어온 참새를 사로잡을 궁리를 했다. 내
가 참새를 잡으러 쫓아다니는 걸 본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꾸짖었다.
빨리 창문을 열어 참새가 자유의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게 하지 않고 뭘 하느냐는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유리창을 열러주었고 참새는 날개야 나 살려라! 외치며 바깥으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참새를 내보낸 뒤에도 우리는 종일 난로를 사이에 두고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이 선생님은 나를 불러냈으면 뭐 재미있는 얘기라도 들려주시던가 하다 못해 세수를 자주 하지 않는 나를 꾸짖기라
도 할 것이지, 종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는 건 뭐람? 게다가 참새 구머먹는 것도 못하게 했잖아.
 저녁 때 선생님과 헤어져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무뚝뚝한 선생님을 몹시 원망했다.

 겨울 방학이 지나고 새 학년이 되기 직전에 그 선생님은 학교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의 부친은 당시 군의
장학사-요즘으로 치면 교육감에 해당?-였는데 나는 부친을 통해 그 선생님이 좌익사상자로 몰려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부친은 거기까지만 얘기했지만 당시 정황으로 볼 때 그는 그때쯤 어느 차가운 감방에서
몸을 떨고 있을 것이 거의 분명했다. 몇해 뒤 육이오가 발발했는데 잠시 공산치하가 된 읍내의 어느 집회장에서
나는 언듯 그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잘 못 본 것 같기도 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뒷날 그가 참새에게 자유를 주라고 내게 갑자기 큰소리로 호령하던 이유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 선생님을 유독 기억하는 것은 그가 말수도 적고 뭐 특별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준 것도 아니지만 웬지 그가 풍
겨주던 묵직한 인품을 생각해볼 때 만약 그가 시대를 잘 만났더라면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만한 인물이 아니었
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두웠던 시대의 희미한 잔영으로 남았을 뿐이다.

 나는 불행히도 중학교를 네 군데를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서 다니는 바람에 중학시절 스승에 대한 뚜렷한 기억
이 별로 없다. 게다가 고등학교는 완벽하게 건너 뛰어버렸으니 고교때의 스승이란 게 있을 턱이 없다. 남들 얘기
를 들어보면 한창 때인 고교시절에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좋은 선생님도 만나서 고교시절 추억담들이 아주 풍
성한 걸 볼 수가 있는데 그런 시절이 없었으니 그런 얘기 들을 때면 그냥 손가락이나 빨고 남들 얘길 들을 수 밖
에 없는 처지이다. 그렇게 보면 초등학교에서 바로 대학으로 이야기가 건너 뛸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대학에서 나는 어떤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대학에 들어갈 때 나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될 여러 스승들
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처럼 높았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중학,고교 6년을 본의 아니게 건너 뛰는 바람에 스
승에 대한 갈증이 누구보다 심했던 것이다.
 부모와 스승과 좋은 친구, 이것을 인생의 세가지 복이라고 말하지 않던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