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발전은 곧 "분업의 고도화'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학문에서의 "통섭"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분과학문의 분업화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현대 산업 사회 역시 정치, 경제, 언론, 시민사회 간의 철저한 분업화, 그리고 그로 인한 고도의 숙련성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안철수 현상이 기본적으로 정치의 역량 부족에 기인한다고 본다. 즉, 정치라는 행위가 하나의 분업화된 노동으로서 충분한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한 기대심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개인이 지닌 정치적 의미에 대한 백가쟁명식 해석이 있지만, 나는 기존 정치권이 보여주지 못하는 '고도의 전문성'이라는 이미지가 안철수에 대한 기대심리의 근원이라고 본다. 쉽게 말해 안철수가 정치인들보다 월등하게 똑똑하게 보이는 것이다.

물론 "기업사회"라는 말에서도 알수 있듯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민간 분야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공공 부분의 생산성 증대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권의 생산성이 관료나 전문가 집단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공공부분 내에서 조차 법조 전문가나 테크노크라트에 비해 떨어지는 정치권의 역량이 유권자의 불신을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 개혁 진영에게 더 심각한 문제인데, 한나라당은 재벌전문가 연합체와 사실상 한 몸으로서, 그들이 설정한 레일위를 그들로부터 충원한 인재를 가지고 그대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일종의 행동 대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보 개혁 진영에게는 정책적 역량을 닦을 정치적 생태계, 기반이 거의 없거나 극히 부족하다. 개혁 진영의 정책 청사진이 실행 단계에서 유난히 큰 저항에 부딪히고, 정권 후반기에 가면 급격히 보수화 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관료를 상대로 정책 논리를 관철하고, 반대 논리에 맞서는등, 상황 변화에 대응할만한 조직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최고 지도자를 구심점으로 하는 권력심부는 경제관료의 윤색된 논리에 용해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FTA가 그 전형적인 예가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