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70531142236&Section=02



지금
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하 '협정문')이 미국투자자에게 부여한 대우들, 즉 국제중재 회부권, 국제법상 최소기준 대우, 내국민 대우에 대해 해설했습니다.

연재의 마지막 주제로는 수용보상 대우에 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여기서는 공무원 여러분의 업무 처리가 '수용'으로 처리되는 법리와 외환위기 관련 대책이나 과세도 '수용'으로 취급되는 범위를 밝히려 합니다.

"한미FTA는 '탐욕과 배제의 문화'를 제도화하는 것"

이에 앞서 먼저 한미 FTA 협정문에 대한 제 관점을 밝히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법률 해석에는 해석자의 가치관과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마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한미 FTA 협정문은 법률적으로는 한국 헌법경제민주화 조항으로부터의 일탈입니다. 사회적으로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배태된 '탐욕과 배제의 문화'를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은 경제적으로는 한국이 과거 동원체제 성장방식의 성과와 문제를 성숙·심화시켜 새로운 질적 성장 경로로 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생태적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기 위한 '사회 전환'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한미 FTA 협정문을 이렇게 보는 것은 이 협정문의 기본 원칙과 특징이 재산권의 절대적 보호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광범위하게 제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많은 문제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도로 자원을 동원해 생산력을 발달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1960년대 말 제가 살던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던 때의 감격과 신기함을 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제성장은 1960년 초 '경제개발' 계획 당시 우리 내부에 강력한 재산권 기득권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철저하지 않았지만 농지개혁이 있었기에, 지주계급은 국가의 경제개발 동원 체제에 저항할 만큼 강력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경제개발 계획 초기에 국가의 동원에 저항할 강력한 재산권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국가만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상당한 생산력을 자랑하게 된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시대적 질문'은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해 사회 통합유지하는 것이 한국호에 승선한 인민들 다수의 삶에 유익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가장이 갑자기 초라한 몰골로 나타났습니다"
▲ IMF 외환위기 후 급속히 늘어난 노숙자들은 소외와 굶주림 외에 알콜중독에도 무방비로 노출돼고 있다. 이들의 '개인적인' 잘못이기만 할까? ⓒ연합뉴스

불행하게도 10년 전의 IMF 사태가 이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폭력적으로 해결해 버렸습니다. IMF 사태는 제가 경험한 최대의 경제적 사변입니다.

국가가 갑자기 초라한 몰골이 돼 나타났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집안의 가장으로 군림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옆집 부자 아줌마에게 무릎을 꿇고 돈을 빌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을 온 집안 식구들이 목격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날 이후 한국인들은 국가를 내팽겨쳤습니다. 대신 각개약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재산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백은 외국의 금융자본이 채웠습니다.

유길준은 1895년에 출간한 <서유견문>에서 "개화하는 데에서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고 설파했습니다. 그는 바른 개화란 "지나친 자를 조절하고, 모자라는 자를 권면해, 남의 장기를 취하고 자기의 훌륭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길준의 이같은 권고에 따르면, IMF 사태는 한국이 '바른 개화'의 기회를 상실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훌륭한 점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조목조목 살펴볼 여유를 가져야만 했고, 또 가질 수 있었으나, IMF 사태로 그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삼천리금수강산'이 그 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얼마나 환경적으로 고통 받았는지를 성찰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으나,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우리는 성숙할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불안한 무국적의 바다로 떠밀러 갔던 것입니다.

IMF 사태의 정신적 충격은 워낙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10년 동안 한국에서는 개인의 재산, 즉 돈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한미FTA는 '돈이 모든 사회적 가치를 압도하는 IMF 문화'를 제도화합니다"

바로 이 새로운 질서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한미 FTA 협정문입니다. 이 협정문은 한국의 자동차나 섬유를 미국에 더 팔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성격의 문서가 아닙니다.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가를 광에 가두는 것을 규정하는, 그런 문서입니다. 국가가 재산권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권이 국가의 규제를 규제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미 FTA 협정문을 미국이 우리에게 강요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협정문은 우리 내부의 탐욕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관점에서 협정문을 보고 있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의 근본적 원칙이 '재산권의 절대적 보호'이며, 재산권이 이 협정문에서 보장받는 지위는 한국 헌법에서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다음 <표 10>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조항은 협정문의 수용보상 조항을 요약한 것입니다.
<표 10>
국가가 투자자의 투자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공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적법 절차 및 국제관습법상의 최소기준대우를 해야 하며, 수용일 직전의 공정시장가격의 보상을 완전한 현금화가 가능하도록 지체 없이 신속하게 지급해야 한다. (11.6조)

이 조항을 <표 11>에 나온, 한국 헌법의 재산권 조항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표 11>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23조)

위 두 표에는 공통적으로 '수용'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자음과 모음이 같을 뿐, 그 의미는 다른 말입니다. <표 10>의 수용은 'expropriation'이라는 영어 단어의 번역어에 지나지 않는 반면 <표 11>의 '수용(收用)'은 우리의 법률 용어입니다.

한국의 헌법과 법률에서의 '수용'은 국가가 재산권을 취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토지 수용'에서의 '수용'이 그 의미입니다. 재산권 소유 명의가 개인에서 국가로 이전되는 것이 수용입니다.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에 들어간 번역어 '수용'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협정문상 수용에는 <표 12>처럼 또 하나의 독립적 범주가 있습니다.
<표 12>
두 번째 상황은 간접수용으로서, 소유 명의의 이전은 없이 이에 동등한 효과를 가지는 경우이다. (부속서 11-나 3항)

여기서 '간접수용'이란 무엇일까요? 이 단어는 공무원 여러분의 규제 업무를 직접 겨냥하고 있습니다. 재산권의 취득이나 이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여러분의 행정 규제가 바로 이 간접수용 개념의 표적입니다.

간접수용의 의미에 대한 국제중재 판례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한미 FTA 협정문의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이라는 두 가지의 범주화 방식이 과연 한국의 헌법 질서에서도 허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표 11>에서 나온 것처럼, 한국의 헌법은 공공 목적을 위한 재산권 침해의 유형을 '수용', '사용', '제한'이라는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헌법은 이에 저촉되는 법률을 포함한 일체의 국가의사가 유효하게 존립될 수 없는 '경성헌법'입니다.'(헌법재판소 2004. 10. 28. 선고 99헌바91결정문)

한미 FTA 협정문이 한국의 헌법과 달리 용어 구조에서부터 '직접수용'과 '간접수용'의 두 개념을 사용한 것은, 이제 공무원 여러분이 보게 될 '사실상 개헌'의 서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미 FTA 협정문은 한국 헌법의 재산권 조항으로부터의 '일탈'인 동시에 미국 헌법의 재산권 절대적 보호로의 '개헌'입니다. 한국 헌법에는 <표 11>과 더불어 다음 <표 13>의 경제 민주화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표 13>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119조 2항, 122조)

아마 공무원 여러분 중 '이따위' 조항이 미국헌법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미국 헌법에는 아래의 조항 한 개만이 있을 뿐입니다.
<표 14>
(…) nor shall private property be taken for public use, without just compensation. (정당한 보상 없이, 사유재산을 공용으로 취득당하지 아니한다. (수정 5조)

이처럼 한국의 헌법 질서에서의 재산권은 국회가 입법한 법률에 의해서 비로소 그 내용이 정해지고 사회적 구속을 받게 되는 반면, 미국의 헌법에서는 이와 같은 조항이 전혀 없고 재산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공무원 여러분은 한미 FTA 협정문이 한국 헌법과 미국 헌법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여기서 잠시 미국 헌법 질서에서의 재산권 보호 기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협정문의 '조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편에서 계속>

2.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70603204201&Section=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미국의 질서를 일찍이 보여 준 사건은 19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펜실베이니아 석탄 광산 판결'입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1921년 펜실베이니아 주가 주거용 건물의 지반을 침하시키는 방식의 무연탄 채굴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한 것입니다. 이 법률은 채굴장이 주변 건물로부터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거나 혹은 광산의 소유자가 주변 건물을 소유한 경우에만 그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법률이 광산의 재산권 가치를 현저히 감소시킨, 도가 지나친 규제라고 판결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이 법률은 미국 헌법상 개인 재산권의 취득(taking)에 해당하므로, 주 정부는 광산 투자자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 <표 14> 참조)

이 판결 이후 미국에서는 사유재산을 직접 '취득'한 것은 아니지만, 이와 동등한 효과를 갖는다고 판단될 수 있는 규제의 범위를 놓고 치열한 법리 논쟁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논쟁의 결과로 나온 법리는 '취득은 아니지만 취득과 동등한 규제'라는 뜻을 지닌 '규제의 모습을 한 취득(regulatory taking)'이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규제는, 비록 직접적인 취득이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 헌법에 따라 보상해야 합니다 (☞ <표 14> 참조)

바로 이 미국 헌법의 법리가 한미 FTA 협정문에 반영된 것이 '간접수용' 조항인 것입니다. (☞ <표 12> 참조)

케이블TV 연결 장치, 건물에 연결하면?… 재산권 침해!

그런데 저는 단지 이 판례 하나만 가지고 한미 FTA 협정문이 한국의 헌법 질서를 미국의 헌법 질서로 변경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부득이하게 미국 헌법의 판례를 몇 개 더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2년 '로레토 사건'에서는, 뉴욕 주가 지역 주민의 정보 접근과 케이블 방송의 발전을 위해 제정한 법률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법률에 따르면,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는 건당 1달러의 사용료만 건물 소유자에게 지불하면 그 건물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세입자들을 위해 그 건물에 텔레비전 연결 장치를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금속판, 연결 선, 상자 등의 연결 장치를 건물의 지붕외벽에 직접 부착하는 것은 해당 공간을 전면적으로 차지하는 것으로서, 이런 규제는 재산권의 취득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이에 따라, 케이블 텔레비전 회사는 건물 소유자에게 보상을 해야 된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1987년 '놀란 사건'에서는 캘리포니아 주가 공공 해변 2곳의 중간쯤 위치한 해안가 주택의 증축을 허가하면서, 그 허가 조건으로 공공 해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주택 앞의 해변을 지날 수 있도록 하는 공중 통행권을 붙인 것이 발단이 됐습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런 규제는 재산권의 취득(taking)이며, 주 정부는 토지 소유자에게 통행권 인정에 대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1994년 '돌란 판결'에서는 오리건 주 티가드 시가 파노 하천의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그 주변의 개발을 제한하는 한편 지역 교통량 증가를 억제하는 정책을 도입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티가드 시는 파노 하천 지역에 있는 상가 건물 증축과 주차장 포장을 허가하면서, 그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토지 일부를 파노 지류의 산책로와 인도 및 자전거 전용도로로 기부·체납하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이 규제에 대해서도 미 연방대법원은 재산권의 취득에 해당한다고 선고했습니다.

'규제인지 취득인지' 여부에 대한 미국의 판정기준

이처럼 '규제의 모습을 한 취득'의 법리가 미국 헌법질서에 정착되는 과정에서는, 과연 그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 수십 년 간 법리 논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미국 헌법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판단 기준은 1977년 '펜센트럴 사건'에 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입니다.

이 사건은 뉴욕 시가 1965년 역사 유적 건축물 법률을 제정한 데에서 비롯했습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뉴욕시는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유적으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건물의 소유주는 건물을 잘 관리해야 하며, 건물의 외형을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사전에 뉴욕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뉴욕 시는 이 법률에 따라 1913년 건축된 펜센트럴 역사를 유적 건축물로 지정했습니다. 추후 이 건물의 소유자가 건물 위로 50층의 현대식 고층건물을 증축하겠다고 뉴욕 주에 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뉴욕 주는 이 법률을 근거로 허가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건물 소유자가 뉴욕 시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국가의 규제가 규제의 차원을 넘어 재산 취득으로 나아갔는지 여부에 대한 세 가지 판정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판정기준은 ① 정부 규제의 성격이 무엇이고 ② 그 규제가 재산권의 경제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③ 재산 구입의 동기였던 합리적 기대가 이 규제로 인해 어느 정도로 장애를 받았는지 등입니다.

연방대법원은 이 기준을 적용해 뉴욕 시의 규제가 재산권 취득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뉴욕 시의 규제는 역사성과 미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문제의 역사 건물의 현재 사용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고, 건물 이용으로 적정한 수익을 얻는 데에 지장이 없으며, 건물 소유자가 건물 위의 공중 공간을 활용할 권리를 현저히 제약하지도 않았고, 만일 50층보다 낮은 층수의 건물 증축을 신청했다면 허가가 날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한국 공무원이 왜 미국 판례까지 시시콜콜 알아야 하나요?

도대체 왜 이런 30년 전 미국의 판례까지 알아야 하냐고요?

이 판례에서 정한 세 가지 판단기준이 이제 대한민국 공무원 여러분의 업무처리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기준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래 <표 15>의 한미 FTA 협정문 조항입니다.
<표 15>
간접수용을 구성하는 지 여부의 결정은 정부 행위의 경제적 영향, 정부 행위가 투자에 근거한 분명하고 합리적 기대를 침해하는 정도, 그리고 정부 행위의 성격을 포함하여 관련 요소를 고려한다. (부속서 11-나 3항)

이처럼 협정문에 들어간 '간접수용(間接收用)'의 개념과 판단기준은 미국 헌법이 반영된 것입니다. 재산권의 절대적 보호라는 원칙을 따르는 미국 헌법은 국가의 규제마저도 헌법상의 취득 행위로 판단하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국의 헌법은 어떤가요?

물론 한국의 헌법도 어떤 규제의 효과가 헌법상의 '수용(收用)'과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은 한국의 헌법 조항과 한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결정합니다. 미국 헌법 질서와 미국적 환경에서 나온 위 세 가지 판단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결코 동일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표 15>의 세 가지 기준과는 달리 '토지 재산을 건축이나 개발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가능성이나 신뢰는 헌법이 보호하는 재산권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또 헌법재판소는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기존의 토지 사용을 할 수 없게 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국가가 보상을 해야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토지 소유자는 보상 조항이 입법되는 것을 기다려 그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89헌마214, 90헌바16, 97헌바78(병합)) (연재의 끝부분에서 그린벨트 제도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 대해 따로 쓰겠습니다.)

미국인은 한국에서도 모국의 헌법을 맛봅니다

미국 통상법은 '투자 조항 협상의 목적이 수용 및 그 보상 기준을 미국법 원칙에 부합하도록 설정함으로써, 외국에서 사업하는 미국인이라도 미국의 법과 관행에 따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2102(b)(3)(D)조).

소르나라자흐 스코틀랜드 던디 대학 교수가 그의 저서 <해외투자 국제법>에서 '미국은 국제조약에서 재산권의 절대적 보호를 조문화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입니다(<해외투자 국제법> 2판, 354쪽).
▲ 지난 4월 개헌 철회를 선언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철회했다. 하지만 한미 FTA를 통해 한국 헌법을 미국 헌법으로 바꾸는 엄청난 개헌은 이미 마친 후였다. ⓒ연합뉴스

'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에서도 모국의 헌법을 맛보게 하는 길이 바로 한미 FTA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은 미국의 헌법 질서가 한국에 적용되는 제도적 통로이자 한국 헌법으로부터의 일탈입니다.

그러므로 공무원 여러분은 미국인 투자자의 민원을 처리할 때에는 한국 헌법의 재산권 조항을 떠올리지 마십시오. 한국 헌법을 잊으십시오. 한국 헌법을 믿지 마십시오.

공무원 여러분은 이제 한국 헌법 대신 미국 헌법과 한미 FTA 협정문을 책상에 놓고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국인 투자자는 만족할 것이고, 여러분의 신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미국인 투자자의 민원에 대해 한국 헌법에 나온 재산권의 사회적 의무성 조항과 경제민주화 조항을 적용하려 한다면, 미국인 투자자는 매우 불쾌해집니다.

미국인 투자자가 국제중재 회부권을 행사할 때, 국제중재센터(ICSID)의 검색대에선 한국 헌법은 반입금지 품목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과 국제법만이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 투자자만 기뻐할까요?

여러분이 이렇게 '국제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면 기뻐할 사람은 미국인 투자자만이 아닙니다. 한미 FTA 협정문이 한국 헌법의 재산권 조항과 경제민주화 조항을 광에 가두면, 한국의 부동산 부자들도 그로 인한 혜택을 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10년 사이에 형성된 기득권이 한국 헌법의 재산권 규제 조항으로부터 해방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미 FTA 협정문을 '한국 헌법의 개헌'이라고 부릅니다. 안 그래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부동산 기득권 집단이 한국 헌법과 같은 거추장스런 허물을 집어 던지고 정부 정책에 맞설 수 있게 된 이 역사적 순간에 공무원 여러분과 함께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IMF 사태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 나온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들은 판결문에 근거해 설명한 것입니다. 일부 판결문에 대한 검토 과정에서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의 '간접수용 법리의 합헌성 연구'(<저스티스> 2007. 2월호)를 참고했습니다.)


3. 간접수용과 토지규제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70604161422&Section=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 연재에서 공무원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싶은 주제는 외국인에 대한 배척이 아닙니다.

제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가운데는 외국인 회사들이 있습니다. 제 형제들 가운데는 외국인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에서 교육방송 영어회화를 들으면서 출근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거듭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균형을 잃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정 업무와 규제는 법률적으로는 근거 법령에서 정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규제는 '공익'을 위해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공익과 재산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국민 통합을 유지하는 것이 여러분의 업무가 지닌 성격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길준의 <서유견문>(허경준 옮김)을 다시 인용하자면 "법률과 권리가 인간 세상의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평등하고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커다란 기강을 세우"기를 기대합니다.

<표 11>의 헌법 조항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되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하며,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 것은 공익과 재산권 사이의 균형에 대한 한국호의 합의를 표현한 것입니다. (☞ <표 11> 보기)

한국 헌법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생활의 조화와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유재산을 보장합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88헌가 13 판결)

오늘날 한국인의 욕망은, 적어도 제도적 차원에서는. 이런 원칙을 기준으로 서로 조화를 이룰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한국 헌법 "토지는 다른 재산권보다 더 강한 공익 관철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지난 회에서 '규제의 모습을 한 수용(regulatory taking)'이라는 개념, 즉 '간접수용'이 하나의 어엿한 독자적인 법적 개념을 획득했음을 목격했습니다. (<표 12>, 부속서 11-나 3항) (☞ <표 12> 보기)

이런 법적 제도화가 한국의 재산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제도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토지 재산권과 공공 이익 사이의 균형을 판단하는 기준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나라마다 토지와 관련된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한국의 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용 토지 면적이 인구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에, 모든 국민이 생산 및 생활의 기반으로서 토지의 합리적인 이용에 의존하고 있는 정황을 고려하면, 토지는 국민경제의 관점에서나 그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 다른 재산권에 비하여 보다 강하게 공동체의 이익을 관철할 것이 요구된다." (88헌가 13 판결 등)

헌법 재판소는 바로 이같은 입장 때문에 개인의 재산권을 그린벨트로 묶어 일체의 개발을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미 FTA에서 간접수용 개념을 법제화하는 것은 바로 이 그린벨트 제도를 존폐의 기로에 서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표 15>의 간접수용 기준에서 본다면, 한국식 그린벨트 제도는 토지 소유자가 가지는 토지 이용과 개발의 합리적 기대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 <표 15> 보기)

그린벨트 제도, 미국 헌법 아래선 불가능합니다

한국의 그린벨트는 습지나 멸종 위기 생물, 혹은 천연기념물 등 구체적인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한국 정부는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라는 추상적인 목적을 내세워 사유지를 그린벨트로 지정하고선, '아무런 보상 없이' 토지 소유자의 토지 개발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도시민의 아파트를 짓는다는 이유로 토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다음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 토지 소유자에게 불쑥 던져주는 보상금은 애초 그린벨트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낮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가격입니다.

다시 말해, 애당초 '도시' 경계가 넓어진다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그 어떤 개발 행위도 금지시키다가 바로 그 곳에 다름 아닌 '도시'를 짓겠다면서 땅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한국식 그린벨트가 없습니다. 특정 습지 보전 지역 등이 아닌, 농촌 일반의 광활한 지구를 도시화를 막겠다며 아예 개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 자체가 미국의 헌법 질서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보존할 필요가 있는 사유지를 공적으로 매입할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국가가 세금을 더 거두거나, 민간이 모금을 해서 사유지를 매입합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공유지가 사실상 그린벨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런 과정은 지방 차원에서 진행됩니다.

<표 15>의 판정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식 그린벨트는 '규제의 모습을 한 수용', 즉 간접 수용에 해당하기 쉽습니다. (만일 IMF 위기가 아니었다면, 한국은 그 동안의 생산력 발전이 낳은 결실을 그린벨트에 대한 보상금 지급에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상당히 많은 녹지대가 공유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장기간 그린벨트 토지 소유자의 희생을 요구하다가, 도시민의 아파트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갑자기 그린벨트를 해제하고선 이를 싼 값에 수용해버리는 식의 그린벨트 제도에는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자리에서 그린벨트를 예로 들어 설명하려는 것은, 땅에 대한 '간접수용' 개념을 하나의 독립적 법적 범주로 제도화하는 것이 바로 그린벨트와 같은 거대한 토지 규제의 존립 여부를 좌우할 정도의 중대한 사회적 제도를 도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간접수용'의 법제화는 그린벨트로 묶인 토지의 소유자를 포함해 규제의 대상이 된 토지 소유자에게 국가를 상대로 그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법적 장치를 제공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국가의 토지 규제에 대한 보상은 보상 법률에 근거해야

이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법률적인 내용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땅 소유자에게는 '수용'(한미 FTA 협정문 식으로 말하면 '직접 수용')의 모습을 띄지 않은 국가 규제 일반, 즉 '땅을 직접적으로 수용하는 형태가 아닌 규제'에 맞서 국가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수단이 사실상 없습니다.

아마 이 부분도 이해하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에서 본 그린벨트의 예를 다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땅 소유자가 자신의 땅이 적법하게 그린벨트로 묶이는 바람에 애초 원했던 개발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표 11>의 한국 헌법은 재산권의 수용·사용·제한 및 그 보상은 '법률'로 할 것을 규정했기 때문에, 그린벨트 법률에 명시적인 보상 조항이 없으면 이 땅 소유자는 원칙적으로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그린벨트 법률에는 땅을 애초에 사용하던 용도로도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특별한 경우에만, 토지 소유자가 원할 경우, 국가에게 땅을 사가라고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또 그린벨트 규제는 소유 명의자를 변경하는 수용이 아니기 때문에, 토지 수용에 관한 법이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결국 땅 소유자는 보통의 그린벨트에 대해 국가에게 보상을 요구할 아무런 법적 장치가 없습니다.

토지 소유자가 국가의 토지 규제에 대해 보상을 청구하려면, 그 보상 신청의 근거 법률 조문을 특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토지 규제에 관한 법률은 보상 조항이 없습니다. 그린벨트에 관한 법률에서도 앞에서 설명한, 아주 제한적인 보상 규정(매수청구권)이 2000년에야 만들어졌을 뿐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헌법 질서에서는 토지 수용이 아닌 토지 규제에 대해서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아주 제한적으로, 명시적 보상 근거 조항은 없지만, 다른 법률에서의 비슷한 보상 규정 조항을 '유추 적용'해서 보상을 신청하는 것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토지 규제, '간접수용'의 소용돌이로

그러나 이제 한미 FTA 협정문을 통해 땅에 대한 '간접수용' 개념이 하나의 독립적 법적 범주로 제도화됨으로써, 이제 토지 소유자는 해당 규제 법률에 보상 조항이 없더라도 국가에 보상을 요구할 법적 장치를 갖게 됩니다.

즉, 토지 소유자는 국가의 규제로 인해 '간접 수용'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제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간접수용 개념과 그 보상을 일반적 차원에서 법제화하는 것이 한국 헌법상 허용되느냐는 중요한 문제, 즉 협정문이 한국 헌법 23조 3항의 수용 및 그 보상의 법률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협정문은 외국인이 소유한 땅이나 외국인이 투자한 국내기업이 소유한 땅만을 보호한다고요?

땅은 인간의 관념에서만 분리돼 있을 뿐, 자연적으로나 물리적으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한국의 땅을 한미 FTA 협정문의 적용을 받는 땅과 그렇지 않을 땅으로 나눠 '헤쳐모여' 시킬 수 있습니까? 서로 인접한 지역의 땅에 대해 규제하면서, 외국인 소유자의 것과 아닌 것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상하는 것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미국인 투자자, 한국 기업 대리로 한국을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어

이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의 공무원 코리아 씨의 민원창구에 어느 날 미국인 샘 씨가 찾아 왔습니다. 이 사람이 투자한 한국 기업 샘 코리아는 동탄에서 적절한 공장 부지를 찾아 시세보다 비싸게 샀습니다.

그런데 동탄이 신도시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향후 5년간 일체의 개발이 금지됐습니다. 게다가 토지수용법('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 회사 소유의 땅은 "장차 수용 시 상환기간 5년 미만의 채권으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보상 방식이 적용됐습니다.

샘 씨는 자신에게 의견을 구하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자신이 투자한 샘 코리아가 소유한 땅의 개발을 전면 금지시키고, 게다가 수용 시 채권으로만 보상금을 받게 하는 규제는 협정문의 투자자 대우 기준을 위반한 것이라며 '샘 코리아를 대리해' 한국을 국제중재에 제소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선, 5년간의 개발 금지가 간접수용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협정문이 외국인 소유의 땅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일 공무원 여러분이 동탄 시의 코리아 씨라면 샘 씨의 민원에 대해 무어라고 답변하겠습니까? 한국 법대로 하겠다고 하겠습니까? 건설교통부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라고 하겠습니까? 샘 씨에게만 보상금을 주고 해결하겠습니까?

"한미FTA 협정문의 폭탄은 한국에서 터집니다"

'간접수용' 개념의 법제화는 땅의 욕망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땅에 대한 탐욕을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토지 소유자에게 국가의 규제 일반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는 법적 무기를 장착해 주는 것입니다.

그 무기는 한국 헌법의 '토지 공개념' 조항에 명중할 것입니다. 한미 FTA 협정문에서 간접수용 개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공익과 재산권 사이의 균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표준 자체를 변경하는 엄청난 행위입니다. 저의 해석이 과장인가요?
▲ 안개 낀 서울 도심은 '땅의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헌법재판소의 판례들을 굳이 다시 보지 않더라도, 한국은 대표적인 인구 밀집 국가입니다. 이런 곳에서 땅에 대한 욕망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행위는, 한국인을 땅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전쟁터로 만드는 일입니다.

협정문의 폭탄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터집니다. 한국인은 이미 일상의 삶에서 더 없이 충분히 땅을 둘러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가 자가용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땅의 공간을 놓고 다른 차와 사람들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삶을 매일 매일 요령 있게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집과 직장이 전철로 쉽게 닿을 수 있고, 제 업무에 차량이 필수적이지 않는다는 조건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간접수용' 개념의 제도화는 땅의 욕망을 국제법적으로 끌어 올려줍니다. 땅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퇴각케 하는 통지서입니다. 땅을 많이 가진 소수로 하여금 헌법재판소 판례의 단어인 '공동체의 이익'이 관철될 불안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선언서입니다.

한국은 이미 부동산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찢겨 있습니다. 협정문은 그 경계에 국제법이라는 강력한 철제 울타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무원 여러분은 함부로 토지 공개념일랑 입에 담지 마십시오. 그럴 시간이 있거들랑, 땅의 욕망을 국제법적으로 보호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십시오.

또 다른 인구밀집 국가 싱가포르는 어땠을까요?

한국이 진실로 한국 헌법의 토지 공개념과 국가의 부동산 정책 권한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려고 했다면, 최소한 토지와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한국의 특수성을 충분히 설명해 처음부터 토지 규제에 대한 간접수용 적용을 거부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 예를 싱가포르에서 봅니다. 싱가포르도 땅이 좁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부동산 정책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싱가포르는 한국과의 FTA에서 <표 16>과 같이 토지와 관련된 수용 조치는 협정문이 아니라 국내법이 정의하는 바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표 16>
협정문의 수용 보상 조항에도 불구하고 토지에 관한 모든 수용 조치는 협정 발효일 현재의 수용국의 국내법에서 정의한 바에 따르며, 보상금의 목적과 액수의 면에서도 이 법에서 정한 대로 한다. (10.13조 5항)

이 조항의 의미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의 토지 관련 규제가 토지 수용이라며 국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때, 그 규제가 토지 수용인지 아닌지 여부는 싱가포르 국내법에서 정의된 토지 수용 개념으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싱가포르 의회가 싱가포르의 현실을 반영해 제정한 법률에 따르라는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2003년 미국과 맺은 FTA에서는 토지 수용 문제에 있어서는 협정문 발효 후 3년 동안 협정문의 수용 보상 조항이 적용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2003년 5월 6일자 부속서한 4항) 갑작스런 충격이 닥치기 전에, 내부 정비 기간을 확보하려 했던 것입니다.

싱가포르는 2005년 인도와의 FTA에서도 토지 수용에 대해서는 국내법을 적용한다는 조항을 두었습니다. (<표 17>)
<표 17>
Notwithstanding paragraph 1 and 2, any measure of expropriation relating to land, which shall be as defined in the existing domestic legislation of the expropriating Party on the date of entry into force of this Agreement, shall be for a purpose and upon payment of compensation in accordance with the aforesaid legislation (…). (1항과 2항이 있지만, 토지에 관한 모든 수용조치는 협정 발효일 현재의 수용국의 국내법에서 정의한 대로 따라야 하며, 보상금의 목적과 액수의 면에서도 위 법에 맞게 해야 한다.) (6.6조 3항)

탁류를 구멍 뚫린 바가지로 막겠다고요?

어떤 분들은 한미 FTA 협정문에도 <표 18>와 같은 추가적인 간접수용 판정 기준이 있으니 안심하자고 말합니다.
<표 18>
규제가 그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엄격하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의 예와 같은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저소득층 주거 여건 개선을 위한 경우의 예와 같이 이를 통해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그런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을 보호하기 위한 비차별적 규제는 간접 수용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부속서 11-나 항)

그러나 이 실로 난해한 조항으로 거센 탁류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간접수용이란 물꼬를 터버린 이상, 그 거센 물살을 이 몇 조각의 자음과 모음으로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 조항은 간접수용의 소용돌이치는 물줄기에서 바가지로 물 몇 모금을 퍼내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이 바가지는 처음부터 구멍이 뚫린 것입니다. <표 16>을 보면 '목적 또는 효과에 비추어 극히 엄격하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규제와 같은 경우를 '드문 상황'이라는 이름의 구멍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구멍의 크기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본디 간접수용이란 개념 자체가 '직접적인 수용은 아니지만, 규제가 너무 엄격하거나 균형이 맞지 않아 그 실제 효과가 수용과 같게 되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표 18>처럼 간접수용에서 제외되는 범위를 정하는 자리에서 '규제가 극히 엄격하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간접수용으로 봐야 한다고 규정하면, 도대체 제외되는 것으로 무엇이 남을까요?

그래도 부동산 정책은 제외되지 않느냐고요?

더욱이 부동산 가격 안정화 규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 가운데 한 부분일 뿐입니다.

만일 도시민의 아파트 가격이 더 오르지 않고 '안정화' 되면, 토지 공개념을 확대하는 정책은 필요 없는 것인가요? 중산층의 아파트 값만 안정되면 한국 국민은 모두 행복한가요? 여러분의 아파트 값만 안정되면, 지금 이 비싼 땅값 위에 놓인 한국호의 장래는 상관없습니까? 한국 농업과 공업이 감당해야만 하는 비싼 토지 비용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표 18>의 조항은 매우 애매하고 불확실한 용어들을 진열한 창고입니다. 예를 들어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공공복지 목적 앞에 왜 '정당한'이라는 제한이 필요합니까? '부당한' 공공복지 목적도 있습니까?

더욱이 <표 18>의 적용을 받으려면 국가의 규제가 '비차별적' 규제이어야 하는데, 이는 결코 호락호락한 요건이 아닙니다.

세계무역기구(WTO) 판례는 '사실상의(de facto)' 차별, 즉 서로 다른 경쟁 환경이 조성되는 경우도 차별로 보고 있습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마이어스 사건'에서도 국제중재부는 실제적인 효과를 따져서 내국민 기업과 외국인 기업 사이의 이익이 서로 균형이 맞지 않는 결과가 발생하면 이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습니다.

공무원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 <표 18>의 조항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더욱이 이 조항의 원형은 미국이 만든 것입니다. ('2004년 투자협정 표준안' 부속서 B의 4항) 한국의 투자협정 표준안에는 이런 조항이 없습니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의 토지·부동산 정책을 국제중재에 회부했을 때, 한국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결코 이 조항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는 그 누구도 공무원 여러분을 안심시켜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땅의 욕망 앞에 고개를 숙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