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니까, 안철수가 다자대결에서도 박근혜를 누르고 1위로 올라셨군요. 가히 태풍급 바람입니다. 그 주인공이 정치 경력이라고는 기자회견 3번한게 고작인 사람이란걸 생각해보면,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겁니다. 그런 안철수 바람속에서 야권의 이합집산이 부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엊그제는 민주당을 또 다시 둘로 쪼갤 것이 분명한 손학규의 쿠데타시도가 있었고, 오늘은 민노당 참여당 노심조의 합당 선언이 있었답니다. 일단 스타트 총성이 울렸으니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겠죠.

물론 안철수의 인기는 거품처럼 사라질 확률이 높지만, 안철수를 밀어올리고 있는 어떤 정치적 힘만은 거품이 아닙니다. 그 힘은 이미 2007년에 한차례 나타나 문국현을 밀어올린바 있고, 5년이 지난 현재는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강력해진 모습으로 안철수를 밀어올리고 있다고 봐야죠. 만약 안철수가 사라지면,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서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면 안철수를 밀어올렸던 그 정치적 힘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안쳘수 현상을 바라보면서 저는 오래전 들었던 어떤 강연의 한토막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의 정치적 정체성 안에는 국민 시민 계급이라는 상이한 정체성들이 하나로 중첩되어 있는데, 각 측면들의 상호 작용에 따라 그 사람의 정치적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것이었죠. 이를테면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남한 사회의 시민이기도 하며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때 각각의 측면은 외따로 분리될 수 없으며, 만약 어느 한 측면이 누락되거나 균형을 잃으면 저의 정치적 정체성은 매우 기형적인 모습이 될 거라는 게 요지입니다. 

어쩌면 그런 시각은 국가의 정치적 정체성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개인들은 정치적 정체성을 삶속에서 획득하고, 국가는 공동체의 역사속에서 획득하는게 다를 뿐이죠. 가령 북한에는 국민과 계급만 있고, 시민적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나라일겁니다. 북한에 시민적 정체성의 주된 내용인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인권같은 근대적인 개념이 없고 그래서 저 모양 저 꼴로 살고 있는 거겠죠.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한국은 국민과 시민적 정체성은 획득되어 있지만, 계급적 정체성은 아직 미미한 기형적인 나라라고 봐야겠죠. 저는 이것이 바로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포인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국은 4.19와 5.18과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비로소 시민적 정체성을 획득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역사는 그것을 튼튼하게 다져온 과정이겠고요. 그동안 정치판은 6월 항쟁 당시에 짜인 여야간 대립 구도가 지금까지 주욱 이어져 오고, 정권 교체 과정이 두번 있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명박정부가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고 있지만, 솔직히 대한민국은 현재 시민적 자유와 권리가 만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국민들이 더 이상 시민적 자유나 권리 쟁취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그런거에만 집중하는 기존 정치에 심드렁해하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 변화의 징조는 복지와 분배라는 계급적 요구가 정치권의 주된 담론으로 자리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즉 시민적 정체성 확립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으니, 이제 계급적 정체성을 갖추어야겠다는 신호탄인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십수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에 대한 피로감, 2008년 이후 지속되는 경제 위기, 월가 시위같은 현상들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구요.

따라서 앞으로 정치인들의 입에서는 과거처럼 자유나 민주 인권 이런 단어보다는 임금이나 재정 세금같은 말들이 더 많이 등장하게 될겁니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만 봐도 선거판을 맴도는 주요 화두는 강남과 강북이었으며, 노회찬이나 이정희같은 빨갱이(?) 정치인들이 박원순의 주변에 얼쩡거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선거였습니다.

사실 현재의 반한나라당 정서가 오로지 이명박 정부의 전횡에 대한 시민적 반감 때문만이었다면, 그것을 해소하는데는 민주당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따라서 민주당 후보가 무소속이자 안철수의 아바타인 박원순에게 패배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서울 시장 선거에 후보도 내지 못했고, 외부에서 몰아친 태풍에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당이 새롭게 등장한 국민들의 계급적 요구를 담아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정당이었던 탓이 큽니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좀처럼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민주당 부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런 민주당의 허술한 빈틈을 뜷고 안철수가 솟아오른 것이죠.

그럼 왜 하필 안철수가 그런 계급적 정체성을 담지하는 상징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간단합니다. 뭐니 뭐니해도 안철수는 사리사욕없고 착한 자본가의 이미지이거든요.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수성가했고, 이효리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수도승같은 자본가에게 열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안철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민주주의나 인권 자유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없던 현상이죠. 게다가 홍대 청소 노동자들과 한진중공업 지원으로 널리 알려진 김여진을 멘토라고 부를 수 있는 기업인은 안철수가 거의 유일할 것입니다. 그런 안철수가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정리해고하고, 비정규직 만들고, 이윤만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죠.
안철수의 이미지는 그렇듯 철저하게 계급적입니다.

물론 안철수를 고른 국민들의 선택은 시행착오이고 잘못 고른겁니다. 국민들은 이제 막 눈뜨기 시작한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을, 똘똘한 노동자 출신 정치인이 아니라 착한 자본가에게 한번 맡겨보려는 것이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겠지만 안철수는 국민들의 그런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자본가는 아무리 착해도 자본가일 뿐이죠.

그런데 말은 계급이니 뭐니 거창하게 썰을 풀었지만, 사실 국민들이 안철수를 통해 하고픈 말은 정말 간단한겁니다. 민주니 자유니 양심이니 그런건 지금으로도 충분하니까, 이제 구체적인 자신들의 삶에도 좀 관심을 가져달라는 거죠. 그 동안 정치는 여야가 두번이나 바뀌며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삶은 점점 힘들어져가고, 길바닥에서 박스 주으며 연명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같기만 하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젊은 청년들이 자식의 미래인 것만 같은 그런 사회에서 국민들이 기존 정치권에 희망을 가지면 그게 더 이상한거죠. '그 놈이 그 놈이라 찍을 놈이 없다'며 안철수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계급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밀어봐도 안되고, 이명박을 밀어봐도 안되더라는 경험이 그 안에 녹아있습니다. 

사실 안철수는 지푸라기입니다. 그런 지푸라기의 지지율이 높은 것에 놀랄게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아야만 되는 어떤 간절하고도 급박한 국민들의 요구에 더욱 놀라야만 정상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정치인일겁니다. 그리고 물에 빠진 국민들에게 지푸라기만도 못한 존재가 되버린 정치인들은 절간에 가서 백일동안 참회의 수련이라도 해야하는 겁니다.

내년 대선은 어쩌면 그렇게 안철수 현상에 담긴 국민들의 속내를 누가 더 많이 담아내는가가 승부를 가를 것입니다. 민주당이 그걸 해낸다면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요, 아니라면 정말로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겠죠. 저는 민주당이 지푸라기가 아니라 든든한 땟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들의 지지에 비명을 지르는게 아니라, 유시민 문재인등의 삥뜯기에 비명을 지르는 현재의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