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자유주의 식자들이나 자본주의, 적어도 현재의 자본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보수주의 식자들이 마르크스를 거론하는 컬럼
들이 폭증?하고 있습니다. 그것들 중 하나입니다.

이 게시판에만 머물러 있으면 좋겠습니다.

A Point of View -The revolution of capitalism (By John Gray)
하나의 관점: 자본주의의 혁명 (존 그레이)

* 출처: <BBC 뉴스 매거진> 2011년 9월 3일

Karl Marx may have been wrong about communism but he was right about much of capitalism, John Gray writes.
존 그레이는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에 관해서는 틀렸던 것 같지만 자본주의의 많은 것에 관해서는 옳았다고 쓴다.

As a side-effect of the financial crisis, more and more people are starting to think Karl Marx was right. The great 19th Century German philosopher, economist and revolutionary believed that capitalism was radically unstable.

금융위기의 부수효과로서, 점 점 더 많은 사람들이 칼 마르크스가 옳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 위대한 19세기 독일 철학자, 경제학자 그리고 혁명가는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고 믿었다.

It had a built-in tendency to produce ever larger booms and busts, and over the longer term it was bound to destroy itself.

그것은 점점 더 커지는 호황과 불황을 낳는 내재적 경향을 갖고 있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그것은 그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

He was confident that a popular revolution would occur and bring a communist system into being that would be more productive and far more humane.

그는 민중혁명이 일어나 더 생산적이고 훨씬 더 인간적일 공산주의 체제를 산출할 것임을 자신했다.

Marx was wrong about communism. Where he was prophetically right was in his grasp of the revolution of capitalism. It's not just capitalism's endemic instability that he understood, though in this regard he was far more perceptive than most economists in his day and ours.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에 관해서는 틀렸다. 그가 예언자적으로 옳았던 것은 자본주의의 혁명에 대한 그의 파악이다. 그가 이해했던 것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불안정성만이 아니다. 비록 그 점에서 그는 당대와 우리 시대의 대부분의 경제학자들보다 훨씬 더 통찰력 있지만 말이다.

Marx co-authored The Communist Manifesto with Friedrich Engels. More profoundly, Marx understood how capitalism destroys its own social base - the middle-class way of life. The Marxist terminology of bourgeois and proletarian has an archaic ring.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산주의자 선언>을 공저했다. 더 심오하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그것 자신의 사회적 토대 - 중간계급 생활양식 -을 파괴한다는 점을 이해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마르스크스주의 용어법은 철이 지난 것같이 들린다.

But when he argued that capitalism would plunge the middle classes into something like the precarious existence of the hard-pressed workers of his time, Marx anticipated a change in the way we live that we're only now struggling to cope with.

그러나 그가 자본주의는 중간계급을 그의 시대의 압박받는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존재 같은 무엇인가로 던져 넣을 것이라고 논했을 때, 마르크스는 우리가 이제야 안간힘을 쓰며 맞서고 있는, 우리의 생활양식에서의 변화를 예견했다.

He viewed capitalism as the most revolutionary economic system in history, and there can be no doubt that it differs radically from those of previous times.

그는 자본주의가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경제체제라고 보았는데, 그것이 이전 시대들의 경제체제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는 의심이 있을 수 없다.

Hunter-gatherers persisted in their way of life for thousands of years, slave cultures for almost as long and feudal societies for many centuries. In contrast, capitalism transforms everything it touches.

사냥꾼-채집자들은 수 만년 동안, 노예 문화들은 거의 동일하게 오랜 동안, 그리고 봉건사회들은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유지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자본주의는 그것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변형시킨다.

It's not just brands that are constantly changing. Companies and industries are created and destroyed in an incessant stream of innovation, while human relationships are dissolved and reinvented in novel forms.

항상 변하고 있는 것은 브랜드들만이 아니다. 혁신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회사들과 산업들이 창출되고 파괴되며 인간관계들은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들로 재창안된다.

Capitalism has been described as a process of creative destruction, and no-one can deny that it has been prodigiously productive. Practically anyone who is alive in Britain today has a higher real income than they would have had if capitalism had never existed.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으로 묘사되어 왔는데, 아무도 그것이 막대하게 생산적이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오늘날 영국에서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올릴 수 있었을 실실소득보다 더 높은 실질소득을 올리고 있다.

The trouble is that among the things that have been destroyed in the process is the way of life on which capitalism in the past depended.

트러블은 그 과정에서 파괴되어 온 것들 가운데는 과거 자본주의가 의존했던 생활양식도 끼어있다는 점이다.

Negative return
마이너스 수익

Defenders of capitalism argue that it offers to everyone the benefits that in Marx's time were enjoyed only by the bourgeoisie, the settled middle class that owned capital and had a reasonable level of security and freedom in their lives.

자본주의 옹호자들은 그것이 모든 이에게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오직 부르주아지 - 자본을 소유했고 적정한 수준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건실한 중간계급 - 만이 향유했던 이익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In 19th Century capitalism most people had nothing. They lived by selling their labour and when markets turned down they faced hard times. But as capitalism evolves, its defenders say,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will be able to benefit from it.

19세기 자본주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그들은 노동[력]을 팔아 생활했고 시장이 거절하면 고생했다. 옹호자들에 따르면,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Fulfilling careers will no longer be the prerogative of a few. No more will people struggle from month to month to live on an insecure wage. Protected by savings, a house they own and a decent pension, they will be able to plan their lives without fear. With the growth of democracy and the spread of wealth, no-one need be shut out from the bourgeois life. Everybody can be middle class.

출세는 더 이상 극소수의 특권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불확실한 임금에 매달려 한 달 벌어 한 달 버티는 생활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저금, 소유하고 있는 집 그리고 적정한 연금의 보호를 받아, 그들은 두려워할 것 없이 그들의 삶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성장 및 부의 확산과 더불어, 아무도 부르주아적 생활을 차단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In fact, in Britain, the US and many other developed countries over the past 20 or 30 years, the opposite has been happening. Job security doesn't exist, the trades and professions of the past have largely gone and life-long careers are barely memories.

사실, 영국, 미국 그리고 많은 다른 선진국들에서 지난 2-30년 동안 그 반대가 일어나고 있다. 직업 안정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의 업종들과 직업들은 대체로 사라지고 평생직장은 한갓 추억일 뿐이다.

If people have any wealth it's in their houses, but house prices don't always increase. When credit is tight as it is now, they can be stagnant for years. A dwindling minority can count on a pension on which they could comfortably live, and not many have significant savings.

사람들이 얼마만큼이든 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주택 정도인데, 주택가격이 언제나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신용대출이 여의치 않을 때, 주택가격은 몇 년 동안이나 정체되어 있을 수 있다. 점점 더 줄어드는 소수만이 연금에 기대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많지 않은 이들만이 큰돈을 저금해 두고 있다.

More and more people live from day to day, with little idea of what the future may bring. Middle-class people used to think their lives unfolded in an orderly progression. But it's no longer possible to look at life as a succession of stages in which each is a step up from the last.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전망도 갖지 못한 채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생활을 한다. 중간계급 성원들은 그들의 생활이 질서정연한 진보로 펼쳐질 것이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생활을 단계들의 연속적 상승으로 보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In the process of creative destruction the ladder has been kicked away and for increasing numbers of people a middle-class existence is no longer even an aspiration.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사다리는 걷어차여 왔으며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중간계급의 삶이라는 것은 더 이상 열망의 대상조차 아니다.

As capitalism has advanced it has returned most people to a new version of the precarious existence of Marx's proles. Our incomes are far higher and in some degree we're cushioned against shocks by what remains of the post-war welfare state.

전진하면서 자본주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의 불안정한 생활의 새로운 버전으로 되돌려놓았다. 우리의 소득은 훨씬 더 높고 어느 정도로는 전후 복지국가의 유물에 의해 충격으로부터 보호받고 있기도 하다.

But we have very little effective control over the course of our lives, and the uncertainty in which we must live is being worsened by policies devised to deal with the financial crisis. Zero interest rates alongside rising prices means you're getting a negative return on your money and over time your capital is being eroded.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의 경로에 대해 거의 아무런 유효한 통제권도 지니고 있지 못하며 우리의 삶이 처해있는 불확실성은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들에 의해 악화되고 있다. 상승하는 물가들과 나란히 제로 이자율은 당신들의 화폐의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의 자본이 잠식될 것임을 의미한다.

The situation of many younger people is even worse. In order to acquire the skills you need, you'll have to go into debt. Since at some point you'll have to retrain you should try to save, but if you're indebted from the start that's the last thing you'll be able to do. Whatever their age, the prospect facing most people today is a lifetime of insecurity.

많은 청년들의 상황은 심지어 더 열악하다.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당신은 빚을 져야만 한다. 어떤 시점에서 재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은 저금을 시도해야 하지만 당신은 이미 처음부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저금은 마지막 순위로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연령대에 속하든,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의 미래 전망은 불안전한 일생이다.

Risk takers
리스크 감수자들

At the same time as it has stripped people of the security of bourgeois life, capitalism has made the type of person that lived the bourgeois life obsolete. In the 1980s there was much talk of Victorian values, and promoters of the free market used to argue that it would bring us back to the wholesome virtues of the past.

사람들에게서 부르주아적 생활의 안전함을 박탈함과 동시에 자본주의는 부르주아적 생활을 했던 인간 유형을 폐기처분했다. 1980년대에 빅토리아적 가치들에 대한 많은 얘기가 있었고 자유시장을 판촉하는 이들은 자유시장이 우리를 과거의 건강한 미덕들로 되돌아가게 해줄 것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For many, women and the poor for example, these Victorian values could be pretty stultifying in their effects. But the larger fact is that the free market works to undermine the virtues that maintain the bourgeois life.

많은 이들에게, 예를 들어 여성들과 빈자들에게, 이 빅토리아적 가치들은 대단히 유해한 효과들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사실은 자유시장이 부르주아적 생활을 부양하는 미덕들을 잠식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When savings are melting away being thrifty can be the road to ruin. It's the person who borrows heavily and isn't afraid to declare bankruptcy that survives and goes on to prosper.

저금해둔 돈이 녹아 없어지고 있을 때 근검절약한다는 것은 파멸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살아남고 계속 번영하는 이들은 거액을 차용하고 파산을 선언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 이들이다.

When the labour market is highly mobile it's not those who stick dutifully to their task that succeed, it's people who are always ready to try something new that looks more promising.

노동시장이 고도로 유동적일 때 성공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직무에 충실한 이들이 아니다. 성공하는 이들은 언제나 더 전망 있어 보이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In a society that is being continuously transformed by market forces, traditional values are dysfunctional and anyone who tries to live by them risks ending up on the scrapheap.

시장의 힘에 의해 계속 변형되어 가는 사회에서, 전통적 가치들은 작동불능이 되며 그 가치들에 따라 살려는 어느 누구도 폐기처분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Looking to a future in which the market permeates every corner of life, Marx wrote in The Communist Manifesto: "Everything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For someone living in early Victorian England - the Manifesto was published in 1848 - it was an astonishingly far-seeing observation.

시장이 생활 구석구석에 침윤되어 있는 미래를 예견하면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단단한 모든 것은 대기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그것은, 빅토리아조 초기 잉글랜드를 살고 있는 이가 한 관찰치고는 - 그것은 1848년에 출판되었다 - 놀라울 정도로 멀리 내다보는 관찰이었다.

At the time nothing seemed more solid than the society on the margins of which Marx lived. A century and a half later we find ourselves in the world he anticipated, where everyone's life is experimental and provisional, and sudden ruin can happen at any time.

그 당시 마르크스가 그 가장자리에서 살았던 그 사회보다 더 단단해 보였던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후 한 세기하고도 반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자신들이 그가 예견했던 세계 - 모든 이들의 생활이 실험적이고 임시적이며 언제라도 급작스러운 파산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 -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A tiny few have accumulated vast wealth but even that has an evanescent, almost ghostly quality. In Victorian times the seriously rich could afford to relax provided they were conservative in how they invested their money. When the heroes of Dickens' novels finally come into their inheritance, they do nothing forever after.

극소수는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것조차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거의 유령같은 성질을 지닌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큰 부자들은 보수적 방식으로 자본을 투자했기에 느긋하게 살 수 있었다. 디킨즈의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마지막에 가서 유산을 물려받으면 그 후에는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Today there is no haven of security. The gyrations of the market are such that no-one can know what will have value even a few years ahead.

오늘날에는 안전지대란 없다. 시장의 요동은 아무도 무엇이 가치를 갖게 될 지에 대해 단 몇 년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고 격렬하다.

This state of perpetual unrest is the permanent revolution of capitalism and I think it's going to be with us in any future that's realistically imaginable. We're only part of the way through a financial crisis that will turn many more things upside down.

영속적 불안정 상태는 자본주의의 영구혁명이며 나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어떤 미래에도 지속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뒤집어 엎어놓을 금융위기의 도정의 한 국면에 처해 있을 뿐이다.

Currencies and governments are likely to go under, along with parts of the financial system we believed had been made safe. The risks that threatened to freeze the world economy only three years ago haven't been dealt with. They've simply been shifted to states.

우리가 안전해졌다고 믿었던 금융제도 일부들과 나란히 통화들과 정부들은 실패할 것이다. 불과 3년 전에 세계경제를 동결시킬 뻔 했던 리스크들은 처리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단순히 국가들로 자리가 옮겨졌을 뿐이다.

Whatever politicians may tell us about the need to curb the deficit, debts on the scale that have been run up can't be repaid. Almost certainly they will be inflated away - a process that is bound to be painful and impoverishing for many.

정치가들이 적자에 재갈을 물릴 필요에 관해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든, 계속해서 쌓여온 대규모의 채무들은 상환될 수 없다. 거의 확실히 그것들은 부풀어 올라 터질 터인데, 이것은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빈곤하게 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The result can only be further upheaval, on an even bigger scale. But it won't be the end of the world, or even of capitalism. Whatever happens, we're still going to have to learn to live with the mercurial energy that the market has released.

결과는 오직 훨씬 대규모의 또 한 번의 격변일 수만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종말이 아니거나 자본주의 종말조차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여전히 시장이 풀어놓은 변덕스러운 에너지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Capitalism has led to a revolution but not the one that Marx expected. The fiery German thinker hated the bourgeois life and looked to communism to destroy it. And just as he predicted, the bourgeois world has been destroyed.

자본주의는 혁명을 야기했지만 그 혁명은 마르크스가 기대했던 혁명이 아니었다. 그 열정 넘치는 독일 사상가는 부르주아적 생활을 증오했고 공산주의가 그것을 박살내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가 예측한 바로 그대로, 부르주아적 세계는 파괴되었다.

But it wasn't communism that did the deed. It's capitalism that has killed off the bourgeoisie.

그러나 그 일을 해낸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부르주아지를 살해한 것은 자본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