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곳에만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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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 first. Demands come later (By Slavoj Žižek)

먼저 점령하라. 요구들은 나중에 하라 (슬라보예 지젝)

 

Critics say the Occupy cause is nebulous. Protesters will need to address what comes next but beware a debate on enemy turf

 

비판자들은 점령 시위의 대의명분이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시위대는 이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 는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 - 그러나 적의 홈그라운드에서의 논쟁을 조심하라.

 

* 출처: <가디언> 20111026

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1/oct/26/occupy-protesters-bill-clin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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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o do after the occupations of Wall Street and beyond the protests that started far away, reached the centre and are now, reinforced, rolling back around the world? One of the great dangers the protesters face is that they will fall in love with themselves. In a San Francisco echo of the Wall Street occupation this week, a man addressed the crowd with an invitation to participate as if it was a happening in the hippy style of the 60s: "They are asking us what is our programme. We have no programme. We are here to have a good time."

 

월 스트리트와 그 밖의 곳을 점령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 저 멀리서 시작되었던 시위는 중심에 도달했고 이제는 강화되어 세계 도처로 퍼져나가고 있는데? 시위대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험들 중 하나는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 번 주 월 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반향으로 샌 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났던 시위에서 한 남자가 군중에게 그 시위가 60년대 히피 스타일의 해프닝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다음과 같은 참여 권유 연설을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프로그램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여기 있다.”

 

Carnivals come cheap the true test of their worth is what remains the day after, how our normal daily life will be changed. The protesters should fall in love with hard and patient work they are the beginning, not the end. Their basic message is: the taboo is broken; we do not live in the best possible world; we are allowed, obliged even, to think about alternatives.

 

카니발을 즐기기는 쉽다 - 그것의 가치의 진정한 시험대는 다음 날 무엇이 남아 있느냐는 것, 즉 우리의 통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떻게 변할 것이냐는 것이다. 시위대는 힘들고 끈기를 요하는 일과의 사랑에 빠져야 한다 - 카니발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그것의 기본적 메시지는 이렇다: 타부는 깨졌다; 우리는 가능한 최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대안들에 관한 생각을 허용 받았으며 그 생각을 하도록 강요받고 있기까지 하다.

 

In a kind of Hegelian triad, the western left has come full circle: after abandoning the so-called "class struggle essentialism" for the plurality of anti-racist, feminist, and other struggles, capitalism is now clearly re-emerging as the name of the problem. So the first lesson to be taken is: do not blame people and their attitudes. The problem is not corruption or greed, the problem is the system that pushes you to be corrupt. The solution is not "Main Street, not Wall Street", but to change the system where Main Street cannot function without Wall Street.

 

일종의 헤겔적 삼 단계 운동인양, 서구좌파는 완전한 원을 돌았다: 반인종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그 밖의 투쟁들의 다원성을 위해 소위 계급투쟁 본질주의를 방기한 후에, 자본주의는 이제 분명히 문제의 이름으로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얻어야 할 교훈은 이렇다: 사람들과 그들의 태도들을 탓하지 말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당신을 부패하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해결책은 메인 스트리트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는 것이 아니다. 해결책은 메인 스트리트가 월 스트리트 없이는 기능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There is a long road ahead, and soon we will have to address the truly difficult questions not questions of what we do not want, but about what we do want. What social organisation can replace the existing capitalism? What type of new leaders do we need? What organs, including those of control and repression? The 20th-century alternatives obviously did not work.

 

갈 길은 멀고, 따라서 우리는 곧 진짜 어려운 물음들 -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물음들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에 관한 물음들 - 을 던져야 할 것이다. 어떤 사회조직이 현존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가? 어떤 유형의 새로운 지도자들을 우리는 필요로 하는가? 통제와 억압의 기관들을 포함해 어떤 기관들을 우리는 필요로 하는가? 명백히 20세기 대안들은 작동하지 않았다.

 

While it is thrilling to enjoy the pleasures of the "horizontal organisation" of protesting crowds with egalitarian solidarity and open-ended free debates, we should also bear in mind what GK Chesterton wrote: "Merely having an open mind is nothing; the object of opening the mind, as of opening the mouth, is to shut it again on something solid." This holds also for politics in times of uncertainty: the open-ended debates will have to coalesce not only in some new master-signifiers, but also in concrete answers to the old Leninist question, "What is to be done?"

 

시위 군중이 평등주의적 연대와 개방적 자유토론들로 수평적으로 조직화되어 있다는 점에 만족해하면서 그 만족을 즐기는 것은 스릴 있겠지만 우리는 또한 G. K. 체스터톤이 썼던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는 쓸모없다; 마음을 여는 것의 목표는, 입을 여는 것의 목표와 마찬가지로, 단단한 무엇인가 위에서 다시 마음을 닫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불확실성 시대의 정치에도 해당된다: 개방적 토론들은 몇몇 새로운 마스터 기표들로만이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옛 레닌주의적 물음에 대한 구체적 답들로도 서로 합체해야할 것이다.

 

The direct conservative attacks are easy to answer. Are the protests un-American? When conservative fundamentalists claim that America is a Christian nation, one should remember what Christianity is: the Holy Spirit, the free egalitarian community of believers united by love. It is the protesters who are the Holy Spirit, while on Wall Street pagans worship false idols.

 

직접적인 보수주의적 공격들은 응대하기 쉽다. 시위는 비()미국적인가? 보수주의적 근본주의자들이 미국은 기독교 나라라고 주장할 때, 우리는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성령, 사랑에 의해 통일되어 있는 신자들의 평등주의적 공동체. 성령인 것은 시위대이다. 반면 월 스트리트에서는 이교도들이 허위적 우상들을 섬기고 있다.

 

Are the protesters violent? True, their very language may appear violent (occupation, and so on), but they are violent only in the sense in which Mahatma Gandhi was violent. They are violent because they want to put a stop to the way things are but what is this violence compared with the violence needed to sustain the smooth functioning of the global capitalist system?

 

시위대는 폭력적인가? 사실, 그들의 언어는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점령, 기타 등등). 그러나 그들은 마하트마 간디가 폭력적이었다는 의미에서만 폭력적이다. 그들은 그들이 현상태를 중단시키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폭력적이다 - 그러나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원만한 작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되는 폭력에 비교할 때 이 폭력은 무엇인가?

 

They are called losers but are the true losers not there on Wall Street, who received massive bailouts? They are called socialists but in the US, there already is socialism for the rich. They are accused of not respecting private property but the Wall Street speculations that led to the crash of 2008 erased more hard-earned private property than if the protesters were to be destroying it night and day just think of thousands of homes repossessed.

 

그들은 루저들이라 불린다 - 그러나 진짜 루저들은 막대한 액수의 긴급구조금을 받은, 저기 월 스트리트에 있는 이들 아닌가? 그들은 사회주의자들이라 불린다 - 그러나 미국에는 이미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자가 있다. 그들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당한다 - 그러나 2008년 폭락을 야기한 월 스트리트 투기꾼들은 시위대가 온종일 사유재산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그 파괴된 사유재산보다 더 많을, 힘들게 번 사유재산을 말소시켰다 - 회수당한 수 천 채의 주택들만 보더라도 말이다.

 

They are not communists, if communism means the system that deservedly collapsed in 1990 and remember that communists who are still in power run today the most ruthless capitalism. The success of Chinese communist-run capitalism is an ominous sign that the marriage between capitalism and democracy is approaching a divorce. The only sense in which the protesters are communists is that they care for the commons the commons of nature, of knowledge which are threatened by the system.

 

공산주의(communism)가 응당하게 1990년에 붕괴했던 시스템을 의미한다면,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 그리고 아직 권력을 쥐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오늘날 가장 가차 없는 자본주의를 운영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중국에서 공산당이 운영하는 자본주의의 성공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이 이혼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불길한 신호이다. 시위대는 그들이 시스템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는 공동적인 것(the commons) - 자연, 지식, 기타 등등 - 을 염려한다는 의미에서만 공산주의자들이다.

 

They are dismissed as dreamers, but the true dreamers are those who think things can go on indefinitely the way they are, just with some cosmetic changes. They are not dreamers; they are the awakening from a dream that is turning into a nightmare. They are not destroying anything, but reacting to how the system is gradually destroying itself. We all know the classic scene from cartoons: the cat reaches a precipice but goes on walking; it starts to fall only when it looks down and notices the abyss. The protesters are just reminding those in power to look down.

 

그들은 몽상가들이라고 매도당하지만 진짜 몽상가들은 몇 가지 피상적인 조치만으로도 현상태가 무한정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몽상가들이 아니다; 그들은 악몽으로 바뀌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파괴하고 있지 않다. 다만 시스템이 점차 그 자신을 파괴해 가는 방식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한 만화[영화]의 고전적 장면을 알고 있다: 고양이가 벼랑 끝까지 도달하지만 계속 달린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나락을 알아차리고서야 고양이는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위대는 권력을 쥔 이들에게 아래를 내려다보라고 일러주고 있을 뿐이다.

 

This is the easy part. The protesters should beware not only of enemies, but also of false friends who pretend to support them but are already working hard to dilute the protest. In the same way we get coffee without caffeine, beer without alcohol, ice-cream without fat, those in power will try to make the protests into a harmless moralistic gesture.

 

이것은 쉬운 부분이다. 시위대는 적들을 조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채 하지만 진작부터 시위를 약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짓 친구들 또한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카페인 없는 커피, 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얻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쥔 이들은 시위를 무해한 도덕주의적 제스처로 변질시키려 할 것이다.

 

In boxing, to clinch means to hold the opponent's body with one or both arms in order to prevent or hinder punches. Bill Clinton's reaction to the Wall Street protests is a perfect case of political clinching. Clinton thinks that the protests are "on balance a positive thing", but he is worried about the nebulousness of the cause: "They need to be for something specific, and not just against something because if you're just against something, someone else will fill the vacuum you create," he said. Clinton suggested the protesters get behind President Obama's jobs plan, which he claimed would create "a couple million jobs in the next year and a half".

 

권투에서, 클린치한다는 것은 펀치를 예방하거나 방해하기 위해 한 팔이나 양 팔로 상대의 신체를 끌어안는 것을 의미한다. 월 스트리트 시위에 대한 빌 클린턴의 반응은 정치적 클린치 하기의 완벽한 사례이다. 클린턴은 시위가 모든 것을 고려 해 보면,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대의명분의 불분명함을 우려한다: “당신이 그저 어떤 것에 반대만 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당신이 만드는 공백을 채울 것이니 그저 어떤 것에 반대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어떤 것을 찬성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클린턴은 시위대가, 그가 “16개월 안에 2백만 개의 일자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일자리 계획을 지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What one should resist at this stage is precisely such a quick translation of the energy of the protest into a set of concrete pragmatic demands. Yes, the protests did create a vacuum a vacuum in the field of hegemonic ideology, and time is needed to fill this vacuum in a proper way, as it is a pregnant vacuum, an opening for the truly new.

 

이 단계에서 우리는 시위의 활력을 바로 그런 식으로 일단의 구체적인 실용주의적 요구들로 신속히 번역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맞다, 시위는 하나의 공백을 -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장에 하나의 공백을 만들어 냈고, 따라서 그 공백을 적절히 채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공백은 풍요로운 공백, 진짜 새로운 것을 위한 빈터이기 때문이다.

 

The reason protesters went out is that they had enough of the world where recycling your Coke cans, giving a couple of dollars to charity, or buying a cappuccino where 1% goes towards developing world troubles, is enough to make them feel good. After outsourcing work and torture, after the marriage agencies started to outsource even our dating, they saw that for a long time they were also allowing their political engagements to be outsourced and they want them back.

 

시위대가 뛰쳐나온 것은 콜라 캔들을 재활용하기, 몇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또는 후진국의 궁핍한 이들에게 수익금의 1%가 가는 카푸치노를 구매하기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세계를 그들이 겪을 만큼 겪었기 때문이다. 노동과 고문이 하청되자, 결혼 에이전시들이 우리의 데이트마저도 대행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오랫동안 그들이 그들의 정치적 참여의 위탁 또한 허용해 왔음을 깨달았다 - 따라서 그들은 그것을 돌려받기를 원한다.

 

The art of politics is also to insist on a particular demand that, while thoroughly "realist", disturbs the very core of the hegemonic ideology: ie one that, while definitely feasible and legitimate, is de facto impossible (universal healthcare in the US was such a case). In the aftermath of the Wall Street protests, we should definitely mobilise people to make such demands however, it is no less important to simultaneously remain subtracted from the pragmatic field of negotiations and "realist" proposals.

 

정치의 기술은 또한 철저히 현실주의적이면서도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의 중핵을 교란시킬 하나의 특수한 요구를 고수하는 것이다: 즉 명확히 실행 가능하고 정당하면서도 사실상 실현 은 불가능한 요구(미국에서는 전국민 공공 의료보험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월 스트리트 시위에 뒤이어, 우리는 확실히 그러한 요구들을 행하도록 사람들을 동원해야 한다 -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동시에 협상들과 현실주의적제안들의 실용주의적 장과 거리를 둔 채 남아 있는 것이다.

 

What one should always bear in mind is that any debate here and now necessarily remains a debate on enemy's turf; time is needed to deploy the new content. All we say now can be taken from us everything except our silence. This silence, this rejection of dialogue, of all forms of clinching, is our "terror", ominous and threatening as it should be.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어떤 논란도 필연적으로 적의 홈 그라운드에서의 논란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내용을 채워 넣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모든 것은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침묵만은 예외이다. 이 침묵, 대화들에 대한, 클린치하기의 모든 형식들에 대한 이 거부가, 응당 그것이 그래야 하는 만큼 불길하고 위협적인, 우리의 테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