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슈가 된 몇가지들에 대해 스쳐가는 생각을 적어봅니다.


1. 월가 시위

흔히 자본주의의 단점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것이 '이윤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이겠죠.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 사회가 무언가를 위해서 악행을 서슴치 않았던 것은 비단 자본주의 시대에만 그런 것은 아닐겁니다. 봉건 시대만 하더라도 군주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시대였죠. 오히려 인간 사회의 그런 야만적 특성은 자본주의 시대 이후로 상당히 완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자본주의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은 무엇일까요? 뭐니 뭐니 해도 '이윤이 없으면 생산하지 않는다' 일겁니다. 이 명제는 의심이나 반론이 있을 수 없는 자본주의 시대의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겠죠. 하다 못해 요즘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마저 이윤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사실 이 명제는 마르크스가 평생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던 화두였죠. 그가 자본론이라는 엄청난 분량의 책을 통해서 주장하고자 했던 핵심도 결국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윤율은 축소되고, 따라서 종국에는 생산이 정체되거나 감소할 수 밖에 없으며, 마침내는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다' 일겁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이런 견해는 여전히 옳다고 믿습니다.

다만 마르크스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자본 사이의 경쟁이 격화되고 이윤율이 감소하여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김없이 막대한 이윤이 새롭게 창출되는 신종 산업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해줄 먹이감이 되는, 요즘 말로 '신성장 동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대공황 이후 등장한 자동차산업과 군수산업같은 중공업이 그런 역할을 했고, 60년대 이후 등장한 전자 산업이 그랬고, 80년대에는 컴퓨터 관련 산업이,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인터넷과 통신 관련 산업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신자유주의같은 제도적 변화는 자본의 이윤율을 좀 더 높여주는 장치였을 뿐,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모순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문제는 아닙니다.

많은 진보진영의 논객들이 '현재의 양극화 문제, 비정규직 문제, 실업 문제등은 모두 탐욕스런 신자유주의 때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사실 그거 헛다리 짚은 것입니다. 만약 신자유주의가 사라지면, 그런 문제들도 해결된다는 뜻인건지 묻고 싶은거죠. 양극화 문제는 강도의 높고 낮음만 다를 뿐 자본주의 체제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고, 비정규직이나 실업 문제 역시 먹이감을 잃어버린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이지, 신자유주의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따로 이름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문제는 2000년대 초반 IT버블이 꺼진 이후로, 자본의 추락하는 이윤율을 회복시켜 줄 새로운 먹이감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과 가장 큰 관련이 있습니다. 한 때 생명공학이나 바이오산업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구세주로 등판하기는 아직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따라서 기존 산업으로는 은행 이자율 이상의 이윤을 기대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코너에 몰린 자본들이 금융 산업이라는 희안한 것을 들고 나와 돈놀이를 하다가 파국을 맞은 것이 바로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의 본질이죠. 하다 하다 안되니까 신용불량자들의 호주머니까지 노리다가 날벼락을 맞은게 서브프라임 사태의 전말아닙니까? 화폐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창출할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개무시한 댓가를 뼈아프게 치르고 있는 중인거죠. 

요즘 월가 시위 소식이 뜸해졌지만,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월가의 돈놀이꾼들이 탐욕을 버리면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될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건 월가의 그 1% 돈놀이꾼도 마찬가지죠. 펀딩받은 자본은 쌓여있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는 상황인겁니다.

만약 이 상태가 몇년 더 지속되면서, 월가의 돈놀이꾼들에게 세계 민중들이 그나마 비축해놓은 잉여까지 모두 털리고 난 이후에도 자본의 새로운 먹이감이 등장하지 못하면, 그 때에야말로 정말 위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거라 예상합니다. 더 이상 이윤이 창출되지 않는, 그래서 생산이 멈춰버린 사회. 어쩌면 수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학수고대하던 바로 그런 순간이 될텐데, 솔직히 저의 당대에 그런 상황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황우석 박사가 미친척하고 '줄기세포 임상시험 성공'이라는 뉴스라도 터트려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2. 안철수 현상

눈치빠르신 분은 대충 짐작을 하셨겠지만, 사실 한국의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도 멀리 떨어진 미국의 월가 시위와 전혀 별개의 사건이 아니고 동일한 내용 위에 떠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어떤 원인이 한국에서는 안철수 현상으로, 미국에서는 월가 시위라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지요. 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의 문제가 바로 그 것입니다. 그것들 때문에 겪는 고통이 한국에서는 안철수라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인물에 대한 정치적 열광으로, 미국에서는 월가 시위로 나타나는 거죠. 안철수 지지자들이 한국의 기존 여야 정당들을 싸잡아 비판하고, 월가의 시위대들이 공화당과 오바마 정부 모두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등 서로 닮은 꼴을 보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이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인 것이죠.

그런데 사실 기존 정치권이라 해서 이 문제에 대해 외면하고 싶어 그러는 것은 아닐겁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가카처럼 무딘 양반도 속이 타들어 갈 것입니다. 또한 안철수가 무슨 슈퍼맨이 아닌 이상,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뽀족한 수가 있을 것도 아니고요. 현대 세계 자본주의가 직면한 위기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 한국 정부나 여야 정당이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인 것이죠. 그저 가카처럼 염장지르며 생까느냐 아니면 니네 힘든거 안다고 공감을 표시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라는 거죠.

그나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안전망이 갖춰진 북유럽 복지 국가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적 무한 경쟁 체제에 완전하게 경도된 한국과 미국이 현재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자본의 먹이감이 되는, 무언가 대단하고도 새로운 성장형 산업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해결되기 어려운거죠. 그래야만 궁지에 몰린 자본이 하층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까지 탈탈 털어먹으려 안달하기보다는 시선을 돌려 조금은 관대해질 것이고, 새로운 세대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도 제공될 수 있겠죠.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