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두 편의 글과 그 글에 달린 수 많은 댓글들을 보십시오.

 

<『스티브 잡스』 오역 논란을 촉발한 초보 번역가 이덕하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4910&RIGHT_DEBATE=R5

 

<번역가 노승영입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665073&RIGHT_DEBATE=R6

 

 

 

노승영 씨의 글 <번역가 노승영입니다>에는 제가 비판하고 싶은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한 가지가 저와 노승영 씨가 생각이 갈리는 핵심 지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노승영 씨의 의견을 읽어 보십시오.

 

이제, ‘컴퓨터 권력을 민중에게로 돌아가봅시다. 우선, ‘권력을 민중에게60년대 민권 운동의 대표적 구호이며 존 레넌의 히트곡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가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역자주를 달아서 설명해야겠지요. 독서의 흐름을 끊는 것은 책의 중요한 금기 사항입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동안 단기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가 날아가버리니까요. 주석이 많이 달린 책은 두고두고 정독하며 연구하는 책이지 한 번만에 통독하는 책이 아닙니다.

여기서 선택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Computer power to the people’이라는 표현이권력을 민중에게라는 구호에서 왔다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독서 흐름을 끊는 것이 효과적인가, 라는 판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번역자의 판단이 적절했느냐, 부적절했느냐는 차후에 따질 문제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번역자에게 그런 선택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러한 선택은 번역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원문에서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의도하는 모든 정보를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번역자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책을 내놓을 것입니다. 아니, 번역을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켄 키지가 LSD 연구의 동료 피험자였다는 정보가 한국 독자에게 필요한가를 선택하는 것은 번역자 재량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Computer power to the people’민중에게 권력을이라는 구호를 연상시킨다는 정보를 한국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는 번역자 재량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독자가 보기에, ‘fruitarian’과식주의자로 옮기면 바로 이어지는 “I will on-ly eat leaves picked by virgins in the moonlight”와 모순됩니다. fruitarian채식주의도 식물을 죽이는 문제가 있다라며 식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 열매나 씨앗 등만 먹습니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대부분과식주의자/과일 상식주의자의 이러한 의미를 모를 것입니다. 저는 번역자의 선택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역가들이 댓글에서 노승영 씨의 이런 생각에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독자를 편안하게 해 주겠다는 문제 의식은 아주 좋습니다. 번역 초보자일수록 문장력이 부족해서 읽기 불편한 번역문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번역가의 부단한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번역가일수록 같은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훨씬 읽기 편한 한국어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되도록 번역투 문장이나 비문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번역가는 없어 보입니다. , 되도록 읽기 편한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부인할 번역가는 없어 보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노승영 씨가 독자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노승영 씨는 “이건 한국의 평범한 독자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겠군. 그러니까 이런 정보는 빼고 번역해야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독자들이 그런 번역가의 생각을 안다면 “뭐? 나 같은 독자는 무식하니까 그런 것들은 몰라도 된다고?”라는 식으로 항의할 것 같습니다.

 

원저자들도 “아니 내가 언제 어려운 것들을 빼 먹고 번역하라고 허락했나?”라고 항의할 것 같습니다.

 

 

 

저는 번역자가 원문에 담긴 정보를 자기 마음대로 빼 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원저자의 글에 대한 모독입니다. 또한 독자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번역자는 원저자와 독자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즉 자기 마음대로 원문에 담긴 정보를 삭제하고 번역해서는 안 됩니다. 번역자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습니다. 책에 들어가는 정보의 내용을 결정하는 권한은 오직 원저자에게 있을 뿐입니다. 번역자는 그 정보를 최대한 충실히 독자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독자가 그것을 얼마나 이해하는지는 번역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 원저자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불친절하게 설명해서 대부분의 독자가 거의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번역자는 그대로 충실히 번역해야 합니다(물론 번역자 각주 등으로 이해를 도울 수는 있겠지요). 원저자가 설명을 친절하게 못 해서 번역서를 읽은 독자가 불만을 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가 원저자에게 항의할 문제입니다. 책의 내용을 정하는 권리는 원저자에게 있으며 당연히 원저자는 그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은 직역/의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직역/의역 스펙트럼은 그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반면 지금 노승영 씨가 하는 이야기는 독자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보를 빼 먹고 번역하자는 것입니다.

 

편하면 장땡입니까? 원서가 어려우면 당연히 원서의 독자든 번역서의 독자든 낑낑대며 읽어야 정상 아닌가요? 원서가 어려우면 원서의 독자든 번역서의 독자는 자신이 아는 만큼만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원서가 어렵다 하더라도 고급 독자 또는 끈기 있는 독자는 원서를 읽든 번역서를 읽든 거의 모두 이해할 수 있습니다(물론 번역서의 경우 번역을 충실히 했다고 가정할 때).

 

 

 

노승영 씨가 말하는 번역은 번역이라기보다는 축역(축약 번역)이나 편역(편집 번역)이나 번안입니다. 저는 축역, 편역, 번안의 가치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번역이 아닙니다. 책 표지에 축역이나 편역이나 번안이라고 쓰지 않고 번역이라고 썼다면 번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원문의 정보를 100% 옮기는 것이 늘 가능하다고 믿을 만큼 순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번역자의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번역자는 충실성(원문의 정보를 100% 옮기는 것)과 자연스러운 문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번역이 어렵습니다.

 

만약 어렵다는 이유로 정보를 이것 저것 빼 버리면 번역자는 상당히 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책이 그대로 번역되기를 바라는 원저자의 욕망과 원서의 정보를 최대한 얻으려는 독자의 욕망이 희생됩니다. 원서의 내용을 최대한 정확히 이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마냥 책을 쉽게만 읽으려는 독자에게는 그런 번역이 좋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런 독서가 바람직한 독서입니까?

 

 

 

이것이 저만의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국의 저명한 번역가 안정효 씨의 생각이 이런 면에서는 저와 거의 똑 같습니다. 『번역의 공격과 수비』를 참조하십시오.

 

 

 

한국의 번역가들이 무능력하거나 비양심적인 것도 안타깝지만 잘못된 번역관 때문에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헷갈리는 것 역시 안타깝습니다. 원서의 내용에 그렇게 간섭하고 싶으면 번역을 하지 말고 번안을 하거나 아예 (원서의 내용을 소개하는) 책을 쓰십시오.

 

 

 

번역자가 독자의 편의를 위해 이것 저것 빼도 된다는 생각은 번역자를 위한 참으로 편리한 변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원서와 번역서를 대조해 본 후 중요해 보이는 정보의 탈락에 항의하는 독자에게 “무식한 당신의 편안한 독서를 위해 일부러 뺀 것입니다”라고 답변할 수 있으니까요.

 

 

 

이덕하

2011-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