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번 선거 때 우연히 들렀다 재밌는 글이 많아 가입한 사람입니다. 민주당/야당 성향을 가진 분들이 많은 공론 사이트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 후에 특히 민주당 쪽 분들의 상실감이 커보입니다. 저는 당파성이 뚜렷하지 않지만 일반적인 정서를 가진터라 최근에는 한나라당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박원순을 찍었죠. 야권통합, 지역주의, 노무현과 같은 문제는 이번 제 투표에 거의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실은 전 노무현은 좋아라 하지 않거든요. 어떤 분들은 애증의 노무현이라고들 하지만 저에겐 애나 증같은 극단의 감정이 노무현에게 없습니다. 정치인에게 그런 피곤한 감정을 표출하며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고단하니까요.

이곳의 많은 민주당 지지자분들은 하지만 노무현에게 애증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애증이 요새 민주당의 흔들리는 모습때문에 더욱 커지는 것 같고요. 정당이 흔들리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때문, 지지율이 낮기 때문인데 인물 중심의 정치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인기있는 정치인이 그 정당에 없으면 정당 지지율이 낮죠. 제가 모든 글을 읽어본 건 아니어서 확언하진 못합니다만 아마도 포스트 노무현 시대의 민주당이 비리비리함과 인물난의 주 요인을 노무현 시대, 노무현과 친노(특히 유씨)의 자기 편 때리기 때문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래서 더더욱 현재의 민주당의 상황에 대해서 노무현과 친노에게 분노(애정이 분노로 바뀐 그런 분노)를 쏟아내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거의 100% 동의합니다. 아무리 정치가 감성의 언어라지만 금도가 있게 마련인데 "원칙과 상식"이라는 칼을 휘두르며 권력투쟁을 하며 라이벌을 예외와 비상식으로 선동한 점은 분명 잘못되었습니다. 내가 상식이고 원칙인데 나를 반대하는 건 그 어떤 논리도 궤변이라는 선언이니까요.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죠. 지나간 일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지만 지금 민주당에 더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입니다. 더 직접적인 문제는 당장의 지지율과 인재영입이죠. 정당도 하나의 생명체라면 끊김없는 인풋이 있어야 살 수 있죠. 어떤 조직에 새 사람이 안들어오면 조만간 끝장나죠.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어떻게 인재를 영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김대중 시절에는 김대중 개인의 카리스마가 재야의 인재를 영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김대중의 네임밸류만으로 주요 지역에서 의원 뱃지를 달아줄 수 있었고 김대중의 네임밸류가 상당한 명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정권을 쥔 후에는 정권빨로 여러 인재를 영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줄 수 있는 자리가 많으니까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곳저곳에서 많은 인재가 뜻을 품고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입니다. 야당이 된 민주당, 제1야당이지만 당장의 미래가 불안한 민주당, 제3의 세력이라 불리우는 외부 정치세력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민주당은 지금 내줄 자리도 없고 명품의 이미지도 없고 그렇다고 당선 가능성 높은 주요 지역을 맡아놓고 주인행세하지도 못합니다(제3 세력의 존재 때문).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도 위기라고들 합니다. 위기 맞습니다. 한겨레조사에서 진보정당에게 기대하는 사람들 비율이 1%더군요. 참담한 숫자입니다. 1%는 0%나 다를바없죠. 사실상 진보정당은 현재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미래는 제 생각에는 민주당보다는 암울하지 않습니다. 진보정당에겐 끝없는 인재창고가 있기 때문이죠. 그 숫자와 퀄리티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대학에서는 진보정당과 강력하게 연계된 운동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게는 노조가 있죠. 당장 심상정, 노회찬과 같은 리더가 배출되긴 어렵지만 헌신적인 활동가는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민주당에겐 이런 것도 없습니다.

한나라당은 기득권 옹호 정당이라는 별칭답게 당 자체가 기득권입니다. 나눠줄 먹거리가 많다는 말도 되기 때메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들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만큼 얻을 수 있죠. 기득권 자체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계속 져도 고정 지지율이 탄탄합니다. 돈도 많고 힘도 세고 사람도 많은 당이 한나라당이죠. 하지만 민주당은 그렇지 않죠.


제 고등학교, 대학교 지인들 중 사시에 합격해서 연수원에 들어간 친구들, 로스쿨에 들어간 친구들이 좀 있습니다. 저는 그쪽은 아니고요. 그 애들 중에 생각이 깨어있는 친구라 생각됐던 애들 상당수는 아름다운 재단/가게, 법무법인 공감에서 캠프(박원순 선거캠프X)에 참여하고 인턴쉽도 했더군요. 연수원 2년차 때 실무수습도 "공감"같은데서 많이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학때 운동권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깨어있는(마땅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개혁적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정의감이라고 하기도 그렇고요. 뭔가 깨어있다는 말로도 부족하지만 요새 유행하는 말이라 갖다 씁니다) 애들의 자그마한 정치적 발언의 모습이죠.

민주당이 런 애들을 자기 바운더리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좁디 좁은 한국 사회에서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마당에 섣불리 특정정당의 색이 짙은 뭔가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한나라당도 아니고 민주당 쪽이면 더 힘들죠. 이상한 오해받기 쉬운데다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쪽에 참여하면 생기는 든든한 지원군(진보적 시민단체, 진보적 언론, 운동권 동지??들)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지금 단지 50년 역사와 전통, 집권 경험, 당의 인지도, 기존 조직망의 힘으로 근근히 버티는 중인 것 같습니다.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색이 짙은 곳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회분위기, 특히 민주당 쪽에 참여하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이 한탄만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진보 브랜드를 가져간 진보정당들의 헌신적 이미지, 지사적 이미지, 지성적 이미지를 민주당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되찾아 와야 합니다. 수권정당답게 유능한 이미지를 추가해서 문제제기와 문제해결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을 민주당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과 더불어 특정정당색 짙은 단체 등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서 정당색보다는 정책연구소, 풀뿌리 커뮤니티에서의 사회활동(오바마를 떠올려봅시다)의 성격을 강화한 단체, 조직을 만들어서 유능한 인재들을 민주당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민주당 성향이고 민주당의 자산이 될 능력이 충분한 사라들이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나마 몇몇 유명한 시민단체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그들이 자기 정치적 목소리를 표출하지만, 정당과 연계되지 않은 비체계적이고 비조직적인 목소리는 사회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죠.

그런 점에서 저는 "일단 다 뭉쳐서 이명박을 무찌르자"는 묻지마 통합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벽돌 쌓듯이 성장하던 진보정당들이 흐지부지되어버린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튼 너무 조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