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죽음에 이르는 병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 영국 노동당 18년 광야 생활이 남의 일이 아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정치세력이 몰락하는 것은 전쟁, 내전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개 그 세력을 지탱하는 지역, 산업의 몰락 때문이다. 미시적으로 보면 정치 지도자들의 전략전술적 아둔함())과 小我에 대한 집착()과 유달리 심한 미움() 때문이다. 인류 최고, 최대의 심리학 이론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불교에서는 이를 탐() () () 삼독(三毒)으로 정식화 해왔다. 따지고 보면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사의 가장 보편적인 실패 이유이다. 따라서 하나마나 한 진단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즈음 민주, 진보, 개혁, 평화를 팔아온, 진보로 통칭되는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 케케묵은 진단이 또 다시 생각난다. 2007년에 진보의 지리멸멸 한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층이 더 있더라고 탄식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즈음 내가 그런 심정이다. 솔직히 나는 부엉이 바위를 진앙으로 한 대지진으로 인해, 거꾸로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추었다고 생각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진보가 드디어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진보 동네의 모습을 보면 바닥 아래 지하층이 있고, 그 아래 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세의 손에 이끌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의  40년 간의 광야 생활과 영국 노동당의 18년간의 야당생활이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40 386들이 60대 노인이 되어, 사실상 정치적으로 퇴물이 되어야 비로서 진보개혁의 새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암울한 생각이든다. (내가 386을 얘기하는 것은 진보의 지리멸멸한 상황을 만든 책임이 결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상황을 타개할 책임과 힘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참여, 시민주권, 민주통합시민행동 유감


부엉이 바위 발 대지진 이후 진보 동네의 정치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몇 개의 정치(사회) 단체가 출범했다. 하나는 국민참여, 다른 하나는 시민주권, 또 다른 하나는 민주통합시민행동을 간판으로 하고 있다. 보궐선거와 지방선거 관련해서는 문재인, 한명숙, 김근태, 손학규 등이 거론된다. 물론 민주주의 위기, MB연대는 1년 이상 진보가 합창하고 있다. 진보의 변방에서는 반신자유주의 노래를 10년 이상 부르고 있다.

 

한편 이명박은 지난 1년 몇 개월 동안 오만 가지 악행을 저지르고 나서 이제는 중도실용을, 개헌과 선거법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정운찬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갈지자 행보를 끝낸 듯 이제 자신의 페이스를 찾은 것처럼 순항하고 있다. MB 국정수행 지지율이 놀랄 만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일신문 9 15() 1면 톱에 3040아줌마들 뿔났다는 표제 하에 심상찮은 여론 조사 결과를 실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남.녀간 엄청난 지지도 격차다. 30대 여성의 MB지지율은 37.9%지만 30대 남성은 59.3%. 40대 여성은 30.6%지만 남성은 58.9%. 이것을 근거로 내일신문은 1면 톱 기사를 그렇게 뽑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진짜 놀라운 것은 3040 남성들의 MB에 대한 엄청나게 높은 지지율이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남성과 여성의 지지도 격차가 이렇게 큰 경우는 별로 보지 못하였다. 실제 이 조사에서도 20대와 50대 이상 연령층은  남녀간에 큰 차이가 없다.

 

 

0.gif

 

내 기억으로 MB에 대한 국정지지율이 가장 낮게 나온 경우(전 연령 평균 10%이하)는 작년 촛불 시위가 정점에 달했을 때이다. 이것은 MB가 물렁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전통적인 MB지지층조차 낙제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MB가 촛불시위 이후 뭔가 강하고 거칠게 드라이버를 걸고, 그에 대해서 진보가 반민주적이다 고 아우성을 칠 때는 오히려 지지율이 30%대로 올라갔다. 한겨레 신문은 MB정부에 대해서 과거 조선일보가 참여정부에 했던 것처럼 해왔다. 최근에는 MB정부의 밀어붙이기 행태를 비난하는 기사를 많이 싣고 있다. 졸속이다. 설익었다. 여론수렴 안 한다. 민주적 절차를 안 지킨다는 얘기다.

 

나는 MB에 대한 한겨레와 진보 동네의 (밀어붙이기 프레임에 입각한) 비판은 이명박 지지율의 특징과 추이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생래적으로 거친 행태나 밀어붙이기 행태를 싫어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양보, 타협, 절충, 조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너무나 잘 아는 남성들은 강하고, 과단성 있고, 저돌적이고, 조직 장악력 있고, 일을 할 줄 아는 것 같은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나는 2006년 가을 이후 지금까지 지속된 MB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추진력 있고, 일을 할 줄 아는 정치지도자에 대한 대중적 열망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폭력적인 사회, 한국


한국 사회는 대단히 폭력적인 사회다. 총기 소지가 자유화되지 않은 탓에 물리적 폭력은 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식과 정의에 대한 폭력은 대단히 심한 사회임이 분명하다. 진보든 보수든 힘센 집단은 엄청난 폭력이나 공멸의 위기가 도래하지 않으면 자신의 부당한 기득권을 결코 내놓지 않는다. 물질적 이익이 걸려있다면 설득, 대화, 타협, 조정이 상식과 정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3비층(사실상 실업자, 자영업자,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우리의 소득 수준에 비해서 형편없는 사회안전망도 극심한 폭력이다. 토건 위주의 재정 할당도, 구조적으로 양산되는 부동산 관련 불로소득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양질에 비해 형편없는 처우도 정규직/조직노동과 자본이 합작한 극심한 폭력이다. 전임교수의 높은 처우도 시간강사에게는 엄청난 폭력이다. 공무원 철밥통과 좋은 연금제도도 민간과 납세자에게는 엄청난 폭력이다. 공정 경쟁이 되지도 않는 곳에서 자유 경쟁을 부르짖는 독과점 기업, 대기업의 행태도 폭력이다. 정치적 독과점을 보장하는 선거제도도 마찬가지다. 파고 들어가 보면 한국 사회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상식과 정의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지 않는 곳이 없다.

 

나는 참여정부와 진보가 형편 없는 보수에게 몇 년째 죽도록 얻어터지고 있는 것은 상식과 정의에 대한 폭력을 너무 많이 방치, 방조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실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먼, 꽤 제한된 영역에서 상식과 정의를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당연히 일을 할 줄도 잘 모르는 선량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MB 정권을 경제성장에 대한 묻지마 열망(천박한 욕망)의 발로라고 해석하는 시각을 참 얕고 편협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보수화의 징표로 해석하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나는 MB정권은 뭔가 일 할 줄 아는 유능한 선수에 대한 열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강력하고 급진적인 현상 타파 의지의 발로라는 얘기다. 다수 국민들은 모순과 부조리가 얽히고 설켜서 옴짝달싹 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강력하고 유능한 선수라야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본다. 한마디로 다수 국민은 획기적인 개혁을 원한다. 혁명을 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8년 시점에서는 가장 과감한 개혁을 할 것 사람이 이명박이었다. 구호야 문국현과 허경영이 제일 섹시했으나 한국 대중은 멋들어진 구호에 현혹될 만큼 바보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를 떠 받치고 있는 세력도 보고, 공공 영역에서의 경륜도 본다. 정동영으로 대표되는 진보 집안은 다수 국민들의 눈에는 한마디로 콩가루 집안,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집안, 끊임없이 자신이 깨끗하다고 하는 집안이었다. 따라서 2007~8년 시점에서 MB와 한나라당은 힘있는 개혁과 진보(현상 타파)를 바라는 다수 국민들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안정희구 심리가 비등했다면 2007~8년의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

 

나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얽히고 설키고 뿌리도 깊은 강고한 모순 부조리를 일도양단 할 실력 있는 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예상보다 훨씬 실력도 없고, 인간성도 더럽다. 하지만 다수 국민들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디가 급소인지를 좀 아는 선수처럼 보인다. 국민들의 세속적인 욕망-이것이 정치가 가장 중시해야 할 것 아닌가?-을 중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현재까지는 진보개혁으로 오는 돈 줄을 막는 방식으로 진보개혁의 급소를 잘 찌르고, 재정과 규제.처벌권을 활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있어서는 선수라는 것 정도는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와 한나라당에 대해서 다수 국민들은 아직은 기대를 접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생기기 전에는 3년 정도의  임기가 남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기대를 쉽게 접지 않는 법이니까. 요컨대 MB와 한나라당에 대한 신뢰가 깊어서가 아니라, 답답한 현실에서 MB와 한나라당 아니면 기대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MB가 조금만 잘해도 지지율이 쉽게 회복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는 진보 동네가 기대를 걸어볼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진보는 데모세력


다수 국민들의 눈으로 보면 진보는 한마디로 데모 세력이다. 데모의 성격은 크게 세가지다.첫째는 상식과 정의(민주주의, 인권, 자주권 등)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는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다. 셋째는 이익집단들이 단결투쟁으로 더 많은 물질적 이익(이권)을 취하는 것이다. 1980년대는 첫째와 둘째가 주류였고 당연히 두터운 국민적 신뢰를 얻었다. 국가와 자본의 전횡이 만연하던 상황에서는 셋째 흐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르면서,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기에는 셋째 흐름이 주가 되었다. 대기업, 공기업 노조의 투쟁이 데모의 상징이 되었다. 거기다가 국민적 공감대가 얕은 반미연북적 흐름도 가세하였다. 이는 진보의 연성 이미지 및 수박 겉핥기 이미지와 결합하여 데모 세력 전체의 사회적 신뢰를 많이 떨어뜨렸다. 요컨대 다수 국민들의 시각으로 보면 데모(진보) 세력의 이미지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그런데 보수도 그렇지만 진보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자아도취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라는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진보는 노조세력과 이미지가 비슷하고, 보수는 경영.관리자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노조는 회사 전체를 책임지지 않는다. 시야도 좁고, 추구하는 가치도 단순하며, 대체로 방어(딴죽)투쟁이 본령이다. 경영.관리의 전횡이 극심할 때만 임직원 전체의 사랑을 받을 뿐이다. 아무리 저 놈들은 부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한다고  비난해도 수많은 빈자들이 민노당, 진보신당 등 진보를 외면하는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회사를 경영.관리 능력이 없는 노조세력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김영삼은 데모 세력의 무능을 증명했다면, 김대중은 탁월한 국가경영 능력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 하에서는 노무현, 열린우리당, 민노당, 노조 등 거의 모든 진보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욕망 전체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자신들이 중시하는 몇개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선수 이미지를 좀 탈색시켰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가 2007~2008년의 양대 선거 결과가 아닐까 한다.


선수로 인식되는 것이 관건


진보의 이런 이미지로 보나, MB와 한나라당에게 국정 운영을 맡긴 민심의 흐름으로 보나,   진보가 국가경영권을 다시 쥐려면 보수보다 훨씬 더 국가와 지자체를 잘 경영할 수 있을 것 같은 선수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모순부조리 구조)를 더 잘 알고, 창조적 파괴와 건설을 더 잘 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존재이며, 거기에 더하여 높은 도덕성과 고귀한 이상까지 겸비한 정치세력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기회가 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재 진보의 머리에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건설, 창조, 경영 리더십을 강조하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깨끗한 사람, 착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민주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끊임없이 쟤들은 나쁜 놈,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기를 잘하는 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2010년의 주제곡


2006년 지방선거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짜증, 환멸, 응징이 주제곡이었지만, 2010년 선거에서는 MB와 여당에 대한 짜증, 환멸, 응징과 더불어 다른 주제곡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자체를 잘 지지고, 볶고, 삶고, 데치고, 양념쳐서 주민들이 원하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리더십에 대한 선호이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 개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국민들이 MB에게 기대한 파괴, 건설, 창조, 경영(디자인)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리더십에 대한 선호가 상당히 강할 것이라는 얘기다. 내가 아는 한 한나라당은 이런 컨셉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진보는 지자체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없고, 그런 가치를 별로 중시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중시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긴 하지만 선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가진 한명숙과 문재인과 김근태에 그렇게 매달릴 리가 없다. (단적으로 이들이 철밥통에 전문성을 가진 거대한 공무원 조직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또한 지금 국민참여시민주권이니, 민주통합시민행동 같은 노무현의 가치 내지 민주화 운동의 가치만을 주구장창 강조하는 짓을 할 리가 없다.

 

(나는 진보 정치지도자들이 국가와 지자체 경영의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약간의 '선수' 층과 선수를 중시하는 문화(aura)가 형성 되어있다면, 한마디로 실력있는 정치세력으로 인정 받는다면, 이들을 딛고 깨끗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사람이 후보로 설 수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수층과 문화와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후보만 덜렁 올라가면 필패의 카드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진보의 발전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문재인과 한명숙 같은 아름다운 사람을 잊어야  필요한 시기에 이런 분들이 역사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지금 한국민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적어도 국민참여, 시민주권, 민주수호, MB연대, 반신자유주의 보다는 이병완이 용감하게 얘기한 '정치혁명', '교육혁명', '고용혁명', '농업혁명', '에너지혁명' 같은 희망과 비전이다. 이는 실력이나 경륜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 혁명이나 획기적인 개혁이라는 구호는 가능만 하다면 각각 (전문가들과 선수들이 높이 평가하는 책 한 권 분량의) 튼실한 Back data와 알아주는 선수 네트워크가 뒷받침해야 한다. 여기에는 참여정부의 성과, 한계, 오류가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김대중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그것이 허황된 것이 아니라고(일리가 있다고) 보증해야 설득력이 배가된다. 이것 없이 참여정부의 핵심들이 혁명이나 획기적인 개혁을 외치면 당신들이 정권 잡고 있을 때는 왜 못했느냐고 힐난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오죽 사람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이해도 가지만 어쨌든) 이병완과 천호선이 신당의 간판이 된 것은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다. 새로운 세력이 나서서 튼실한 back data를 기반으로 혁명을 외치고, 참여정부 요직에 있던 사람들은 그것에 신뢰성을 더하는 식으로 가면 훨씬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새로운 세력, 새로운 아이디어도 살고, 참여정부의 경륜도 산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죽여야 진보가 산다.


나는 진보가 살려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는 더 많아야 하고, 더 활성화/합리화 되어야 하지만 그 철학, 가치, 관성은 진보 정치영역에서는 몰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진보 동네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노동(조합) 운동이나 시민(사회)단체 운동-학생운동 포함-에서 잔뼈가 굵어졌다. 당연히 이 철학, 가치, 관성이 몸에 배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조합의 생명은 쪽수, 참여, 단결이다. 민주주의 혹은 민주집중제가 핵심 운영원리다. 또한 노동조합은 방어 투쟁기관이다. 기업 경영과 기업 생태계에 대한 책임은 제한적이다. 당연히 그 시야도 제한적이다.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인권, 환경, 생태, 노동, 여성 등 한 두 개의 가치를 추구한다. 국가경영 자체를 고민하지 않는다. 국가, 자본 등 힘있는 존재들의 전횡, 일탈, 과속, 무시 등을 견제하고 감시한다. 이상적인 잣대를 가지고 현실의 미진함을 고발하고 항의한다. 수많은 가치 중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사회 발전의 관건이라고 믿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의 문제로 보인다고, 노동조합이라는 무기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자본의 전횡과 노동의 단결력의 문제로 보이고, 시민(사회)단체의 눈으로 보면 많은 것이 민주주의, 참여, 환경의 문제로 보인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크게 보이지만 현명한 정치인/경영자의 리더십(통찰, 결단, 추진력)과 전문가의 컨텐츠는 대체로 작게 보인다. 하지만 보수는 정반대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 둘 다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노조 지도자나 시민단체 지도자에게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압도적으로 중시하는 사고 틀이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불의와 싸울 때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국가나 지자체 경영(정치)은 복잡한 경영환경을 살펴 정치.경제적 자원을 잘 운용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노조와 시민단체의 관성을 갖고 있으면 국민들의 세속적 욕망 등 수많은 욕망을 균형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중시하던 가치만 강조하기 십상이다.(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국가와 지자체를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삶고 데쳐서 좋은 요리를 만들 것인가라는 관점도 잘 체화되지 않는다. 당연히 정무나 마키아벨리즘도 백안시 하기 십상이다. 진보가 다시금 기회를 잡으려면 대중적 힘(참여, 민주주의)을 잘 조직하는 것과 더불어 건설, 창조, 경영을 잘 할 것 같은 리더십과 전문성을 결합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지금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성과를 낸 '선수'(시장, 군수, 도지사, 장관, 관료, 시민단체 지도자, 기업CEO, 학자/연구자 등)들의 모임이다. 이들이 국가와 지자체 경영을 지속적, 체계적으로 논하고 그럴듯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창조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여기서 무기와 에너지를 공급받은 수많은 시민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노조운동, 시민운동, 정치운동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체현한, 진보 승리의 관건인 가치를 구현하는 조직/운동/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를 한국 최고 최대의 시민단체로 만든 박원순은 몇 년 전부터 희망제작소를 통해서 희망과 구체적인 대안을 말해왔다. 박원순의 정세인식, 행보, 성과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박원순은 그 누구보다도 새로운 시대정신의 한 자락을 분명히 움켜쥐고, 앞장서서 체현해 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진보 정치 지도자들은 흘러간 옛 노래(참여, 민주, 반MB연대, 시민주권 등)만 부르거나,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노래(이병완의 5대 혁명론)를 부른다. 여기까지가 진보의 아둔함에 대한 얘기다.

 

소아에 대한 집착


그런데 이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진보를 대표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소아에 대한 집착, 즉 탐욕이다.

 

내가 아는 한 가난한 소수파들이 승리하는 비결은 지도자들의 희생(대아를 위해 소아를 버리는 풍모)과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전술과 지지자들의 열정이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진보 동네는 지지자들의 열정은 변함이 없는데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는 졸렬하고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그 어디서도, 그 누구도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전술을 하는 것 같지가 않다. 10월 재보선 공천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특히 그렇다. 참여니 시민주권이니 하는 노무현의 몇 마디 말은 차용해서 쓰는 사람은 좀 있어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노무현의 정신-대의를 위해 대통령직을 던지고, 목숨까지 던지는-과 방법은 그 1/10도 계승한 정치지도자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형편없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지고 있는 더 형편없는 진보의 지리멸멸한 꼴이 통탄스럽다. 광주항쟁, 6월항쟁,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아시아 최고의 자유민주 국가를 만든 한국 진보가 이 정도 밖에 안되나!!! 부엉이 바위의 굉음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은 어디 갔나!!  18년 아니 40년 광야 생활이 남의 일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