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긍정적인 면들에 대해 몇 가지 더 써보겠습니다.


1.
안철수, 박원순의 긍정적인 면은 무엇일까요. 아직 이 두 사람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섣불리 말하기는 좀 꺼려지긴 합니다만, 첫 번째 긍정적인 점은 이들이 영남출신이지만 노무현, 유시민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강준만이 영남개혁세력의 한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만, 저는 노무현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고향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라고 보았습니다. 노무현의 경우는 차남 콤플렉스와도 연관된 듯한데, 지역주의 타파라는 노무현과 유시민의 구호와 노력에는 나름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고 보지만, 동시에 고향에서 인정받으려는 심리도 작용했다고 보는 겁니다.

만일 노무현과 유시민이 영남인들의 선택을 조금만 더 존중했더라면, 영남인들을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더라면, 영남의 사랑을 받기 위해 호남에 냉담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무리하고 조급하게 영남구애전략을 펴지 않았더라면, 호남과 민주당을 존중하고 인정해주었더라면... 지금처럼 이른바 닝구와 노유빠들의 대립구도가 심화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화학적 결합이 촉진되었을 겁니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이런 노무현, 유시민과는 달라 보입니다. 특히 안철수는 고향에 목매지도 않고 고향의 인정을 받을 필요를 느끼는 사람 같지 않습니다. 아내가 호남사람인 걸 보면 호남에 대한 반감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민주당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 역시 아직은 불확실합니다. 적어도, 민주당을 비토하면서 그 이유를 댈 게 없어 정당민주주의를 대는 유시민 정도의 수준은 아닌 듯합니다. 민주당에 대한 불만은 있을지 몰라도 유시민과 같은 악감정은 없는 듯하다는 겁니다. 

또 하나 긍정적인 점은, 그가 노빠는 아닌 것 같다는 점입니다. 노빠도 아니고, 노무현이나 누굴 추종하지도 않고, 집권을 위해 노유빠에게 기댈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노유빠라는 맹목적 광신도들, 노무현 중심적인 친노 정치인들에게 질린 저로서는 안철수가 우선 노유빠가 아니라는 점만 해도 안심이 됩니다. 

이번에 박원순은 민주당 중심으로 선거를 치렀고, 민주당에 큰 빚을 졌다고 말했고, 제3당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발언했습니다. 이 발언의 진심을 믿을 수 없다는 분들이 계신 듯한데, 저는 일단 믿어주고 싶습니다. 적어도 유시민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유시민은 경기도지사나 김해을 선거 때 자신이 독식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지금 다시 유시민이 단일후보로 나선다면 그 정도로는 못하겠지만, 유시민에게는 웬지 자신이 공과 권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박원순은 좀 달라 보이더군요. 다른 걸 다 떠나서, 민주당의 능력과 필요성,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며 협력하는 태도를 보였고, 민주당의 공로를 충분히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지금 긍정적인 면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2.
안철수와 박원순이 제3당을 추진할까봐 염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이들이 독자적으로 제3당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규모 있는 정당이 성립되려면 충분한 지지기반과 유능한 정치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박찬종과 이인제는 일시적으로나마 대단한 지지세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충분한 정치인들을 규합하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문국현과 유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야권에서 쓸 만한 정치인들은 거의 다 민주당 내에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제3당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당에 소속될 쓸 만한 정치인의 다수는 민주당 출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일, 최악의 경우, 지난 번 열린우리당처럼 민주당이 브랜드 가치를 완전히 잃고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안철수 등이 신당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은 그 신당에 들어가서 접수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안시성 전투에서 당태종이 거대한 흙산을 쌓자 고구려군이 쳐들어가서 점령해버린 것과 같은 전략을 쓰면 되는 겁니다. 

민주당으로 가든, 통합신당으로 가든 민주당은 "얼굴마담" 전략을 구사하면 됩니다. 실질적인 당권은 민주당이 쥐고 안철수나 박원순 등을 얼굴마담으로 쓰는 겁니다. 자, 민주당은 다 있는데 인기 있는 얼굴마담만 없습니다. 이건 그동안 민주당이 새로운 인물을 적극 영입하지 않은 책임이 큽니다. 그러면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 얼굴마담을 고용하면 되는 겁니다. 

노무현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을 데리고 청와대와 정부를 접수했지만, 곧 관료들에게 포섭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안철수와 박원순이 독자적인 힘으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선거도 제대로 치를 수 없습니다. 민주당에서 얼굴마담으로 쓰면 되는 겁니다.


3.
일부 영남노유빠들의 행태 때문에 분노하는 (특히 호남출신)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이야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오늘도 이 글 쓰기 전에 프레시안의 어느 기사에 달린 댓글을 몇 개 읽었는데, 민주당을 저주하는 인간들의 말에 화가 나서 다 때려칠까 했습니다.^^ 하지만 아크로의 몇몇 호남인들이 8백만 호남인을 대변하는 게 아니고, 아크로의 몇몇 민주당 지지자들이 천만 민주당 지지자를 대변하는 게 아니듯이, 그런 몇몇 인간들이 영남개혁세력이나 지지층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요. 영남인들 중에서도 누구 못지않게 민주당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 영남인들은 그동안 세뇌된 게 있어 호남이나 민주당에 꺼리는 마음이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심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글들은 그냥 스킵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괜히 영남인 전체에 대한 반감만 생기니까...)

그런데 길게 보면, 영남의 개혁적 지지자들이 민주당 지지자들과 연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겁니다. 지금 발생하는 이런 갈등과 부작용들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많은 분란을 일으키고 갈등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나 할까요. 김영삼의 3당 합당 이후 거의 한나라당을 찍던 동네, 민주당을 지지하면 왕따당하다시피 하는 까닭에 지지를 드러내기도 힘든 동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들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부 흡사 정신병자 같은 사람들은 제외하고...^^)

그래서 이상적으로는 그들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들과 화학적 결합을 하면 좋은데, 노무현과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들은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박원순과 안철수는 노유빠나 친노정치인들에 비해 이들을 더 연착륙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에 박원순이 민주당에 대해 보인 태도 정도만 꾸준히 보여도 지지자들끼리 서로 싸울 일은 줄어들겠지요. 


4.
민주당의 입장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최악은 박원순이 독자적으로 당선되거나 나경원이 당선되는 것이었습니다.  

박원순의 당선보다 나경원의 당선이 민주당에 더 낫다고 볼 수 있는 면도 없지는 않으나, 비유하자면, 그건 마치 암환자의 암을 없애기 위해 항암치료를 하는데 너무 독한 약을 써서 환자까지 무력하게 만들어버리고 회생할 생명력을 고갈시켜버리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참여정부 시절을 거치면서 민주개혁진영은 분열되고 이탈했으며 정치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무력해져 버렸던 거지요.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을 거치면서 서서히 지지자들이 다시 결집하고 다시 살아나고 있는 추세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번에 민주당이 후보도 내지 못한 터에 박원순까지 패배해버리면, 어렵게 결집된 지지자들이 패배주의에 빠져 다시 무관심층으로 돌아설 여지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만일 민주당이 박원순을 돕지도 않았다면, 민주당에 대한 혐오와 저주는 훨씬 심해졌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년 총선마저 민주당은 꽤 힘들어졌겠지요.

그래서 이번에 이긴 게 잘한 일이고, 기세를 올린 게 좋은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뭉친 지지자들은 민주당의 잠재적 지지자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하기에 따라 상당수는 지지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현재 박원순, 안철수를 지지하는 무당파 중에서는 전 민주당 지지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박원순과 안철수 지지자들을 민주당의 잠재적 지지자들로 보고 그들을 끌어올 궁리를 하면 됩니다.

아쉬운 마음이야 많지만,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이 박원순을 대대적으로 밀고 박원순이 당선된 것은 최선은 아니라도 차선은 된다고 봅니다. 이후 어떻게 하느냐는 민주당 하기 나름입니다. 민주당에 기회의 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