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팀이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약간 편집을 했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글은 인용표시와 함께 파란색으로 강조했습니다.

1.jpg

읽은 지 조금 되긴 했지만, 머리 속에 그나마 남아 있을 때 좀 정리를 하자는 생각으로 제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을 위주로 간략하게나마 글을 좀 쓰려고 합니다.  미뉴에 님처럼, 저도 몇몇 부분에 대한 간단한 감상 정도의 느낌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경제학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물론 다른 것도 없...-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가차없는 지적 부탁드립니다.
 
장하준은, 아시다시피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최근에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학자입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경우에는 무려 촘스키가 극찬을 하기도 했죠. 이 책은 2007년에 전문 인터뷰어인 지승호 씨가 장하준 씨와 했던 세 차례의 인터뷰와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한, 장하준 씨와 정태인 씨가 한미 FTA에 대해 나눈 대담으로 이뤄져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장하준 씨랑 정태인 씨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거 같더군요. 일단 한미 FTA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본문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들 위주로.. 


"미국의 복지정책은 도리어 유럽보다 더 좌파적인 데가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미국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사회안전망 개념이거든요. 그러니까 돈 있는 사람들한테 돈을 걷어다가 돈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예요. 그런 의미에서 더 좌파적이라고요. 유럽은 누구나 돈을 내고(물론 많은 버는 사람이 더 많이 내지만) 누구나 다 혜택을 받거든요. 누구나 대학도 공짜로 가고, 병원도 공짜로 가고 하는데, 미국은 가난하지 않으면 그런 거 공짜로 안 해주거든요. 도리어 좌파적, 재분배적인 성격은 (워낙 복지국가 규모가 작아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미국식 복지국가가 더 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의 복지제도는 모두에게 거둬서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국민보험이라는 개념이 있는 반면에, 미국의 그것은 (재분배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돈을 내는 사람에게 혜택이 안 돌아가는 구조이다보니까, 저거 왜 멀쩡한 중산층에서 세금 걷어다가 흑인 미혼모한테 돈 대주냐,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있죠. 그래서 복지제도를 유럽 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더 지속가능성이 있고, 미국식으로 만들어버리면 구조적으로 중산층 이상에게는 복지에 대한 거부심리를 심어주는 거거든요. 자기들이 혜택을 못 보니까요."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27p~28p 중에서


이런 걸 '보편적 복지'라고 하죠? 미국 의료제도의 문제점이나 그런 걸 생각해봤을 때, 미국이 사민주의 노선을 채택한 유럽의 국가들보다 복지국가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건 상당히 의외라서 흥미롭더군요.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인 거 같네요. 현실적인 측면에서 더 가진 사람들이 더 힘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고, 복지정책이 '가진 자들 걸 뺏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의 수준에서만 그친다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겠죠. 그런 점에서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건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일 거란 생각입니다. 


"영국 같은 경우에는 다른 계급들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사는 거예요. 제가 처음에 가서 사회계급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요. 탄광촌에서 광부 출신이 노부부를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사람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우리 같으면 틀림없이 "그 놈 자식 잘 먹어지도 못했는데......"하면서 앞치마로 눈물 찍고 할 텐데, 그게 아니에요. 아들이 자신들을 배반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자식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32p 중에서


 이 이야기도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뭐, 외국의 경우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실현된다 이런 이야기 많이 하는데, 저런 식으로 아예 다른 계급은 다른 계급에 사는 것도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네요. 계급간의 이동도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을 거고, 일종의 세습제 같은 느낌도 들고...뭐든지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는 걸까요. 


"미국을 포함해서 어느 나라나 특허법에 특허권이 공공이익과 배치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정부가 무시할 수 있다는 공공이익 보호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도 써먹었어요. 2001년 9.11이 난 다음에 탄저병 균이 든 가루를 편지봉투에 넣어 보내서 세 명인가 죽고 그래서 한참 그것에 대해서 공포가 있었는데요. 미국 정부가 탄저병 약(싸이프로)를 비축해서 비상시에 쓰겠다고 했어요. 그 약의 특허를 갖고 있는 곳이 아스피린을 만든 독일의 바이에르 그룹인데, 미국이 바이에르 그룹한테 "그 약을 많이 살 테니 깎아달라"고 했더니 바이에르에서 "50퍼센트 깎아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미국 정부에서 "시중가격 4.5달러, 인도에서 수입하면 20센트인데, 더 안 깎아주면 특허 취소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바이에르가 울며 겨자 먹기로 80퍼센트 깎아줬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네도 써먹는 거거든요."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66p 중에서



장하준이 말하는 '사다리 걷어차기'의 좋은 예일 듯 합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지적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적 활동에 대한 동기 유발이 안 되므로 지적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야기인데, 장하준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2000년 미국의 의약 관련 연구 자금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영리 조직(미국 정부, 민간 자선 단체, 대학 등)에서 투자한 것임을 예로 들며 그들의 이야기가 과장되었다는 주장을 하는데요.

최소한 의약품 같이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부분에서는 지적소유권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건 잘못된 거란 생각이 듭니다. 법리적으로도 그런 경우를 위한 조항이 있다면 더더욱...



"스미스 말씀하시니까 하는 얘긴데, <국부론>이 있지만 <도덕감성론>도 있거든요. 스미스는 그책(<도덕감성론>)에서 "인간의 어떤 도덕적인 게 없으면 시장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얘기를 했어요. 이른바 자유 시장경제의 아버지도 그런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그냥 돈만 많으면 되지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안 되죠."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114p 중에서


아담 스미스야 워낙 유명한 사람이지만 <국부론>은 들어봤어도 <도덕감성론>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대명사로만 알려진 현실도 생각나고...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드네요.



"말하자면 영어로는 '인라이튼드 셀프인트레스트 enlightened self-interest'라고 하죠. 계몽된 이기주의, 다시 말해 자기 이익을 추구하되 말하자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말고 키워서 계속 알도 받아먹으라는 겁니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130p 중에서


장하준은 선진국들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그만 두는 것이 도덕적인 면에서도 옳지만,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후진국들이 성장함에 따라 시장이 커지므로 선진국들에게도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하는데요. 계몽된 이기주의라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선진국들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으며, 그게 바로 마셜플랜이었다고 하는데...마셜플랜은 공산주의와의 체제 경쟁이라는 측면이 워낙 컸기에 현재에 과연 마셜플랜과 같은 식으로 선진국들이 행동할지는 좀 회의적입니다만, 한번 생각해볼만한 주장임에는 틀림없다고 봅니다.
 

"이처럼 우리가 지금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옛날에는 권력투쟁이었거든요. 결국 그것을 누가 어떤 것들을 "여기부터는 시장, 여기부터는 정치논리" 이렇게 긋는 것 자체가 권력투쟁이었거든요."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151p 중에서


제가 비록 아는 게 짧지만, 정치나 경제나 따지고 보면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엄밀하게 딱 구분지어질 수 있는지 좀 의심스럽습니다. 따지고 보면 경제가 경세제민의 준말인데, 경세제민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이란 말이죠.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의 영역에 훨씬 가까운 말인데...그런 점에서 정치와 경제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영역은 아닌 것 같고, 필요에 따라 그런 식의 '정치논리'를 생산, 확대시키는 이데올로그들이 존재하는 거 같네요.


"제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얘기하는 게, 결국 정부가 할 수밖에 없다는 거거든요. 국민의 대표로서의 정부를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 스웨덴은 노조가 주체가 되어서 사회적 대타협을 했어요. 우리나라는 노조가 조직률도 낮고 정당성 문제도 있기 때문에 (스웨덴처럼) 노조가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 하기는 힘듭니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168p 중에서


장하준 교수의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회적 대타협'인데, 사회적 대타협이란 건 재벌들과 타협해서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대신 더 많은 투자 와 고용 창출, 복지국가 같은 것들을 얻어내자는 거죠....근데 재벌과 반대편에 서있는 '사회적 대타협'의 주체의 문제는 상당히 어렵지요. 전 개인적으로 노조가 좀 강력해져서 노조가 주체가 돼서 하는 게 좋다고 보는데. 여하튼, 한성대 김상조 교수 같은 경우에는 '장하준 교수 같은 경우에는 영국에서 사는 사람인데, 영국 정부는 그래도 기본적으로 국민을 위해 일을 한다는 그런 신뢰 같은 게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정말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솔직히 말하면, 국민의 대표로서의 정부...란 게 별로 신뢰가 안 가고요; 여하튼, 사회적 대타협에 있어서 주체 문제라는 건 꽤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네요. 국가가 딱히 신뢰가 가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노조가 주체가 될 수 있을만한 상황도 아니고...

  
일단, 이책은 인터뷰집이라서 쉽게 읽힌다는 게 장점이고, 제가 경제학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장하준 교수의 이야기는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는 거 같습니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관심이 있으면 이책부터 시작하시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ps. 편집을 잘 못하겠네요. 읽기 불편하시면, 그냥 제가 죽일놈...[....]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