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서의 정치"는 풀뿌리 대중운동을 말하는 게 아닌가싶다. 풀뿌리 대중운동은 지역자치가 발달된 미국에서 활발하다 할 수 있다. 풀뿌리 대중운동은 기존의 정치쟁점인 경제적 문제, 이념적 문제, 외교적 문제보다는 비경제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문제들을 정치쟁점화함으로써 다수 대중을 동원하는 형태를 띤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 우위의 정당구도가 점차 약화되면서 공화당이 보수적인 풀뿌리 대중운동을 통해 약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 주 등 주로 서부 지역에서 일어났던 세금저항 운동(Tax Revolt), 1980년대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 1990년대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 2000년대 복음주의(Evangelical) 개신교도 단체들과의 연대 강화 등이 바로 공화당의 지지기반을 강화시킨 대표적인 풀뿌리 대중운동이다.

2010년 미 중간선거에서는 이러한 풀뿌리 대중운동 흐름의 연장선 상에서 티파티운동(Tea Party movement)이 공화당의 압승에 큰 도움을 주었다. 티파티운동은 미국 사회의 주류의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에서 태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티파티운동지 지지자들의 사회경제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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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티운동 참여자들의 관심사>
제목 3.JPG(출처: http://www.washingtonpost.com/wp-srv/special/politics/tea-party-canvass/)

티파티운동은 기존의 보수적 풀뿌리 운동들보다는 훨씬 재정축소와 감세같은 경제적 문제에 집중한 특성을 띤다. 2008년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그 원인으로 생각되는데, 아마 그래서 금융위기에 큰 타격을 받은 미국의 주류인 백인, 대졸자, 중산층 이상의 미국민들이 티파티운동의 주축인 거 같다.


오바마를 미국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힘이 된 '무브온'이나 민권운동처럼 진보적 운동의 영향력도 여전하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사회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보수주의를 통한 광범위한 대중동원에 성공한 쪽은 공화당과 연계된 보수적 풀뿌리 대중운동이다.

이러한 풀뿌리 대중운동은 공화/민주 양당구도가 고착화된 미국의 정당정치의 틀로는 해내기 힘든 광범위한 대중동원을 가능하게 한다. 고착화된 양당구도가 미처 반영하지 못하던 비경제적, 비정치적 문제들인 낙태, 동성애, 종교, 총기소지 따위의 문제들을 정치쟁점화 함으로써 사회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해 편가르기와 대중동원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현재 심각한 미국의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미숙함과 이것을 당장 보완하지 못하는 공화/민주 양당의 무기력함은 '미국 건국정신', '미국 헌법정신' 따위의 추상적이지만 간결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메세지를 전하는 티파티운동을 불러왔다.


난 운동으로서의 정치는 이러한 미국의 풀뿌리 대중운동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정치구도, 정당정치가 미처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쟁점을 발굴해서 대중동원을 통해 기존의 정치구도나 정당정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균열을 꾀하는 것이 바로 운동으로서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운동이 대중을 동원하기 위한 간결한 메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실제로 그 메세지를 통해 상당한 정도의 대중동원에 성공하여야 하며, 일정한 조직적 형태를 띤 대중동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 정치구도에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우리나라에 아직 운동으로서의 정치는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참여연대의 낙선/낙천운동이 유사한 형태지만, 실제로 대중이 동원된 대중운동이 아니었고 시민단체'조직'만 있었지 조직적 형태를 띤 대중동원의 모습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도 운동으로서의 정치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유시민의 정당개혁운동은 운동으로서의 정치의 요건을 일정하게 충족시키기는 한다. 그런데 그의 정당개혁운동의 모습은 개혁'당'의 창당, 열린우리'당'의 창당, 국민참여'당'의 창당처럼 지나치게 단시간 내에 기존의 정치구도의 일부분으로 편입되면서 스스로 기존 정치구도, 정당정치의 틀에 자신을 가두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조직된 대중동원에 성공했지만 '노무현 탄핵'같은 돌발상황이 없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 규모의 한계를 보여줬다. 심지어 내가 느끼기엔 정당개혁운동이 동원하는 대중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일반대중과 괴리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운동이 과하게 온라인에서만 집중되는 경향을 띠다보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게 된 거 같다.


양당제 구도 속에선 제3 세력의 등장이나 양당제의 공백을 이용한 대중동원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양당제의 한 축인 민주당이 이러한 제3 세력이나 대중동원의 물결에 자칫 휩쓸려갈 수 있을 정도로 허약하고 제3 세력이나 (아직 제대로 있어본 적 없는)대중운동도 민주당을 대체하거나 독자적인 세력화, 조직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마 그래서 민주당과 제3 세력이나 대중운동(시민운동)세력이 지금 일시적으로나마(일시적일 거라는 게 나의 예상) 통합을 꾀하는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