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로 호남 말아먹기

결혼과 승진, 취업과 이사에서 무수히 설움을 듣고 보고 겪어온 사람들 앞에서 별 회의주의가 다 나오는군요. 고뇌하는 지성인 척도 하고, 팩트와 데이터를 들이밀기도 하고, 특정인의 정치적 이익을 들기도 하고 투표율을 들이밀기도 하고, 영남의 선량한 시민들을 내세우기도하고, 정치권 상층부의 권력분점 비율에 근거해서 회의하기도 하네요. 처음에는 빨갱이라고 의심하고, 김대중이가 개입했다는 식으로 회의하다가, 이런 촌스런 정치적 회의주의(세상에, 빨갱이 타령도 이제는 회의주의군요!)에서, 지역총생산, 고액저축자 분포 비율로도 씨알이 안먹히자 강남지역에 사는 원적자 비율을 들어 열심히 회의하는군요. 

회의주의, 좋은거죠. 지식의 진전도, 인권의 향상도, 새로운 발명도 모두 회의주의에서 나옵니다. 근대를 가르는 사상의 분기점이 회의주의 아니겠어요. cogito ergo sum! (코지토님 어디 가셨나~)

역사적으로 이 회의주의를 유별나게 선호하는 분들이 계셨으니, 이 분들의 모토가 "의심이 바로 우리의 제품이다"였죠. 여기저기서 일관된 결과들을 제시하고 논리적 혐의가 매우 짙어짐에도 불구하고 회의적 사고와 과학적 실험을 통해 반기업적 좌파들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묵살한 혁혁한 성과를 올리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 분이 폴한(Paul Hahn)이라고 1950년대 미국 담배협회 의장님이시죠. 

담배와 각종 질병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각종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여러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그 상관관계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여러 "회의적" 결과들을 제시합니다. 물론 그 회의적 태도는 담배와 각종 질병이 단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데 <궁극적으로> 기여하기도 하죠. 

이 분들의 전략은 이렇습니다.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 여러 과학적 회의를 제기함으로써, 이 사실을 "논란거리"로 전환시켜 어떠한 결정도 못하게 하는 겁니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1950년대의 연구 결과에 맞서, 담배회사 회장님들이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입니다. 여기서 담배협회에서 담배에 대한 자체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기로 결정하죠. 그러면서 담화문을 하나 발표했으니, 그 제목이 "흡연자에게 드리는 진실된 말씀 (A Frank Statement to Cigarette Smokers)"입니다. 이후 여기서 행한 많은 연구 결과들이 담배가 폐암을 유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무수한 연구 결과들이었습니다. 진실된 연구들!

자연과학의 어떠한 지식도 회의적 사고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을 겁니다. 모든 과학자는 이렇게 사고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아무리 명백해 보이는 지식이라도 모든 실험조건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결과를 생산하지는 않습니다. 사회과학은 말할 필요도 없죠. 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회의주의를 선호하고 보편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지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점을 파고 드는 것이 바로 회의주의로 세상 말아드실려는 분들의 전략입니다. 똑같은 일을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석유회사들이 벌이고 있죠. 

담배협회의 전략은 큰 그림은 무시하고 회의할 수 있는 작은 그림을 '남'발하는 것입니다. 팩트와 데이터를 들어 호남인이 차별받고 못산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거죠. 세뇌의 첫째 전략은 반복입니다. 궁극적 목적으로 그럼으로써 큰 그림을 (적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가리는 것이죠. 

호남인들의 잘못 찔끔, 민주당의 잘못 찔끔, 몇몇 극단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 사례 찔끔, 3천만분의 1 정도의 비율로 박정희가 만들었다는 폭탄돌리기 찔끔, 지역감정극복의 정당성 찔끔... 이 찔끔거리는 사고 속에 순박한 분들은 나약한 지식인으로 남을 것이고, 목적의식을 가지신 분들은 status quo의 유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역시 지역감정은 있어도 지역차별은 없었고 호남차별은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주어진 조건에서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왔습니다. 변화는 수많은 정보 가운데 맥락을 잡고 판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회의주의는 인류를 발전시키는 근원적 사고 방식이기도 하지만, 이 방식을 이용하여 세상 말아먹어볼려는 분들로부터 자유로운 방식도 아닙니다. 당장 팩트와 데이터를 들이밀자마자, 거봐라, 호남차별은 인터넷으로 배운 허구라며 '내 고향 모욕하지 마!'를 절규하는 망둥어군이 뛰지않습니까? 데이터, 팩트 제시하면서 이러려고 한것은 아닐텐데,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를 잘도 진전시키시는 분이 어째 이 문제만큼은 '팩트'와 '데이터'만 말하며 엉뚱하게도 원대한 결론을 내리고 자위하고 있는 망둥어 영남군들의 '호남 말아먹기'에 침묵하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팩트와 데이터가 설명하는게 그것은 아니잖아요?

회의주의자들이 회의하러 잘 간다는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스파월드의 경구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나는 호남 사람들의 울분을 조롱하거나, 한탄하거나, 경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스파월드"

※이 칼럼은 바이커님의 명문장 "회의주의로 세상말아먹기"를 가져다 쓴 것으로 바이커님과 작은 데이터 하나로 원대한 결론을 내리시고 다른이들의 '편견'을 안타까워하시는 망둥어군께 헌정하는 글입니다. 

바이커님의 명문장 감상은 ----> 여기